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
곽효환 편저|153×224|양장|224쪽|값 17,000원|
근대 문학의 거장 구보 박태원 그의 새로운 면모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그리고 천변풍경의 작가 구보 박태원은 시인이었다.
편저자인 곽효환이 근대 문학의 거장인 박태원의 새로운 면모를 접하게 된 계기를 2009년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준비하면서였다고 한다. 1909년에 태어나 우리 근대문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많은 문인 중에 단연 구보 박태원이 눈에 띄었다고 말하는 편저자는 어쩌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의 작품을 통해 문학의 형식적 특질과 기법의 새로움에 의미부여하며 다양한 실험을 함으로써 근대 모더니즘 소설의 꽃을 만개시킨 그를 주목하는 것은 당연했다고 말한다.
그는 그해 이른 봄 무렵, 구보 박태원의 장남 박일영, 차남 박재영 두 분을 만나며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혹은 알려지지 않은 구보의 낯선 면모를 발견하였다. 두 분이 보여준 여러 자료 가운데 한동안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것은 구보가 발표한 시들을 모아놓은 자료뭉치였다. 대표적인 근대 모더니즘 소설가로만 알려졌던 구보 박태원이 시를 발표했었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가 소설가이기 이전에 시인이었다는 점, 다시 말해서 그의 문학적 출발이 시에 있었다는 사실에 한동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자료를 검토한 결과 구보는 1925년 9월 7일자 〈조선일보〉에 시 「할미꽃」을 발표하며 지면에 시를 처음 선보였고 이듬해인 1926년 3월 『조선문단』에 시 「누님」이 당선됨으로써 불과 17세의 나이에 공식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당대 최고의 문인이라 할 춘원 이광수가 있었다는 사실도 새롭고 신기했다.
“내가 춘원선생의 문을 두드린 것은 아마 소화 2년인가, 3년 경의 일이었던가 싶다. 두 번짼가 세 번째 찾아뵈었을 때 나는 두어 편의 소설과 백여 편의 서정시를 댁에 두고 왔다. 그중 수 편의 시와 한 편의 소설이 동아일보 지상에 발표되었다”(「춘향전 탐독은 이미 취학이전」,『문장』, 1940. 2.)
그는 이미 십대 후반에 1백여 편 이상의 시를 왕성하게 창작한 문학청년이었고 춘원에 의해 동아일보를 비롯한 여러 지면에 시를 발표했다. 그 후로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접어들기까지 구보는 몇 년 동안 꾸준히 시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구보가 춘원에게 건넸다는 백여 편의 시와 그 후로 구보가 썼을 것으로 생각되는 시편들 가운데 남아있는 것은 지면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19편이 전부이다.
하지만 편저자는 그런 아쉬움보다 구보의 시를 건네받던 그날 너무 흥분한 나머지 덥석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하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시인으로서의 구보의 면모와 구보의 시세계를 연구해서 공론화하겠다고 호언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듬해인 2010년 가을,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로부터 의뢰받은 학술논문발표에 「구보 박태원의 시(詩) 연구」를 발표함으로써 어렵게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소설가가 아닌 시인으로서의 구보의 면모와 그의 시세계 그리고 그의 시론을 살핀 논문은 기대 밖으로 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를 받게 되었고 마침내 구보의 시와 시론 등을 한데 묶은 한 권의 책을 내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단지 한국 근대문학을 풍미한 큰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새로운 면모를 살핀다는 새로움 차원의 의미를 갖는데 그치지는 않는다. 한 시인이나 소설가의 초기작이 그의 문학적 방향이나 지향점을 인식하고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조타 기능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생각해 볼 때 박태원의 문학적 출발점인 시와 시론을 살핌으로써 그의 초기 문학적 인식과 방향성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박태원의 문학적 인식과 흐름을 총체적으로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는 면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특히 구보의 시가 호사적인 취미나 장식품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상당히 진지한 시론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상당량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구보 시론의 핵심에는 ‘진(眞)과 미(美)와 열(熱)을 아로새긴 성명(性命)의 시’가 자리해 있으며 이것은 ‘아무 허식이 없는 인생/생활의 기록’으로 발현된다. 이러한 시론은 그의 여러 편의 산문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다른 이의 시를 논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또한 박태원의 시는 이러한 시론을 바탕으로 시대적 인식과 문학적 성숙에 따라 ‘상실과 그리움 그리고 공허함의 세계’ → ‘식민지 청년으로서의 시대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희망찾기’ → ‘심상을 짧은 시행에 형상화한 서정시’의 순으로 나타나고 변모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시론과 시세계를 박태원 문학세계 전체에 넣어서 볼 때 리얼리즘 중심의 식민지 소설을 부정하고 모더니즘의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선구자였으나 종국에는 자신이 부정했던 현실재현의 리얼리즘소설로 돌아온 작가라는 지금까지의 통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소박한 리얼리즘을 품은 시인’ → ‘새로운 기법과 형식으로 모더니즘의 새 장을 연 소설가’ →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아우르며 자신만의 세계를 추동해 나간 소설가’로 더 크고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즉, 그동안 구보 박태원의 문학세계를 논하는데 있어 간과되었던 시와 시론을 그의 문학세계 전체에 넣어서 조망함으로써 더 크고 새롭게 구보의 문학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틀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총 3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구보의 시 19편 전편을 수록하였고 2부에는 구보의 시에 대한 생각과 시론 등을 담은 산문들을 모았다. 3부 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해설「진과 미와 열을 아로새긴 성명(性命)의 시」에서는 구보의 시론을 정리하고 이에 입각해서 그의 시 19편 전편을 분석하고 그 문학적 의의를 정리하였다. 부록에서는 구보의 생애연보와 작품연보 및 연구 서지를 정리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구보의 장남 팔보 박일영 선생이 자신과 가족 친지의 기억을 종합하고 직접 북을 방문하는 등의 검증을 거쳐 집필한 「구보, 남조선문학가동맹 평양시찰단 일원으로 북에 가다」를 실었다. 이 글은 한국전쟁이 난 1950년 구보와 가족들에게 일어난 일들과 구보가 북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생생하게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순수문학진영을 대표한 당대의 모더니스트 박태원이 북으로 가게 된 경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면에서 귀한 자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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