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얼굴
김석환 시인의 시를 읽으니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시란 무엇인가라는 케케묵은 문제들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어쩌면 삶이란 “주인 노파는 보이지 않는데/삐걱거리는 나무의자/누가 보내는 경고음일까/새벽안개 지우며/은방울꽃 흔드는 소리”(「밤골 자동음료판매기」)요, 인간이란 “지나던 구름이 놀라 성급히 산 능선을 넘자” “새순을 키우고 보랏빛 꽃을 피워 이 흉물스러운 주검을 덮어 가리고 있는” 칡덩굴(「어떤 소멸」)같은 존재요, 시란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면 늪처럼 질척거리는, 한 움큼 꺼내자마자 손금만 남기고 손가락 사이를 빠져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지하도 곳곳에 잠복해 있다가 앞을 가로막는”(「어둠에게」) 도깨비 같은 물건인가. 물론 이와 같은 고민을 주제로 다룬 시인은 김 시인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왜 유독 눈에 띌까. 아마도 시 한 편 한 편이 지나치리만큼 깊고 진지해서일 것이다. 어느 한 구석 장난기도 재주 부린 흔적도 없다. 그렇다고 재미가 덜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가령 시 한 편 한 편의 디테일은 실생활에서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것이면서도 아무나 쉽게 포착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의 오랜 시력을 엿보게 해주는 것이면서 원칙에 충실함으로써 요즘 우리 시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시의 고전적인 맛을 되찾아주는 것이다. 시의 시대가 갔다고 아쉬워하는 많은 독자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시집이다.
- 신경림(시인, 동국대 석좌교수)
묵묵히 시의 본령을 지켜온 김석환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을 내놓으니 시단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시어를 선택하고 다듬어 부리는 능력을 가졌으니 일상 중에 흔히 쓰는 언어도 그의 시에서는 정교하게 연마된 보석처럼 새로운 빛을 낸다. 그리하여 자아와 세계의 어두운 형상 뒤에 숨어 있던 실재, 그 진정한 어둠의 얼굴을 만나게 한다. 독자들은 그의 시를 읽는 동안 소외되어 있던 참된 자아를 돌아보며 굳어진 세계의 허상을 깨뜨리는 신선한 충격을 경험할 것이다. 나아가 고독으로부터 벗어나 신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유로워지는 희열을 맛보며, 시의 고급화로 빛나는 시의 길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 홍문표(시인, 명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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