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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시선

거룩한 그물 - 푸른사상 시선 10

by 푸른사상 2011. 10. 21.

 

거룩한 그물

 

 

 

 

 

 

 

그의 시 속에는 속도가 들끓는다. 그 속도는 사랑의 속도가 아니라/낯선 풍경이 어디론가 데려가는 질주의 생활에서 비롯된다. 자본을 좇아 맹렬하게 질주하는 현재의 쾌속은 동반과 소통에 기여하기보다 분열과 단절을 조장하는 데 더욱 골몰한다. 암묵적 대세를 등에 업은 속도가 개인의 삶을 압도할 때, 개인은 무명자(無名者)’ 혹은, 순 욕망을 거세당한 욕망 실패자로서의 본분을 뼈저리게 앓는다. 이 극복 불능의 시간 속에 그가 살고 그의 시가 존재한다. 그는 속도의 요구에 부역한 강제 질주자이며 따라서, 욕망 실패자이다. 그의 이번 시집은 그것에 대한 회한과 자기부정의 한 정수(精髓)로 읽힌다. 어제와 오늘이 다름없고 내일 또한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임을 예언할 때, 요지부동의 일상을 무명자로 살아내기란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가 세월에 대한 회한과 분노로만 끝나지 않은 것은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환멸하는 일상의 나날들이 그에게 준 선물 같은 것이다. 그는 아무도 말 걸지 않는 불굴의 가장으로서 성실한 복사와 표절의 생애를 묵묵히 수행한다. 그는 라이프아파트곧 인생아파트(!)에 사는 소박한 가장이며, () 가족을 위해 날마다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지는 굳센 가장이기도 하다.                      - 정병근(시인)

 

 

그의 은밀한 비밀을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는 무서운 시인이다. 무서운 그가 쓰는 시가 무섭다. 겉으로 보기에 그의 시는 잔잔한 물결 같은데, 속을 들여다보면 칼날을 시퍼렇게 물고 있는 형국이다. 조악(粗惡)과 비문(非文)이 높이 대접받는 이 시대에 그의 문장은 정밀하고 섬세해서 오히려 외곽에 머문 듯한 인상을 받는 게 아닌가 싶다. 그의 시를 혹 처음 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가슴이 칼을 품은 줄알고 화들짝 놀랄 게 틀림없다. 그는 무리를 거느리지 않은 무림(武林)의 고수다. 홀로 무예를 익히며 무림을 천천히 거니는 고수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무리를 거느린 고수는 당대에 제 지닌 능력보다 더한 능력자로 착시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나, 진정한 고수는 사후(死後)에 평가받는다. 시단의 그 어떤 충동질에도 흔들리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를 일구는 그의 시가, 나는 물론 당대에 우뚝하기를 바라고 있으나, 현실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그는 앞으로도 더 외롭고 고독한 고수로 지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는 오늘도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 어둠 속에/저 혼자 외로움만 숙성시키고 있는 중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등 뒤의 검은 절벽을 견디며 그가 세상에 내놓은 시편들이 진짜 보석임을 나도 알고 당신들도 모두 알고 있다. “소걸음으로 만 리를 걸어온 그가 아닌가. 무릎 아래 철벅이는 망망대해에 던져진 그의 그물은 두려움을 모른다.”                                           - 김충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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