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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시선

나를 두고 왔다 - 푸른사상 시선 9

by 푸른사상 2011. 10. 6.

 

나를 두고 왔다

 

 

 

 

한하운의 시세계 이후 가장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신승우의 시편들은 우리에게 삶의 진정성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가 현관문을 못 열어 동생과 함께 불타 죽은 사건 등을 자신의 처지로 삼고 아파하는 마음이 절실하기 때문이고, 어머니가 밥할 때 쌀을 씻고 버린 물이 목련꽃을 피운다고 여기는 마음이 극진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발톱을 깎다가 죽음을 만지작거리고 소금이 바다뿐만 아니라 자신의 눈물에도 들어 있다고 좌절하다가도 매미들의 울음소리를 응원의 함성으로 듣고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화려한 철쭉꽃에게 이 세상에 부디 사람으로 오지는 말기를 바라다가도 자신이 이 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적으로 여기고 기뻐한다. “바람 부는 언덕에 동생을 두고 온 것이다/나도 사람이었다. 언덕 쪽으로는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나를 두고 왔다」)라는 시인의 슬픔과 죄의식과 간절한 사랑이 인연들에게 속죄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우리를 이끈다.                                                           - 맹문재(시인, 안양대 교수)

승우의 시는 골목에서 발효된 시이다. ‘쉬어터지도록 사랑해도, 죽어 잊혀지고’야 말 이 별의 어두워지는 골목에서 이제 다시 먼 여행을 떠나기 위해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걸어 나오는 저녁의 문장이다. 그런 그(꽃)의 ‘생채기’투성이 발을 어루만져보면, ‘B612의 광속’으로 ‘뼛속을 달리는 사랑’의 맨 질주가 느껴진다. 엄격히 우리는 모두 다 아프다. ‘감기약이라는 게, 먹어봐도 아플 것 다 아프고, 낫는 것’처럼 그의 시에 등장하는 주변인들과 사물들은 삶(사랑)에 묘약이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싱거운 감기약을 털어 넣을 수밖에 없는 환우들이다. 그 가운데 신승우는 추상화된 언어 합병증에까지 시달려서 매끼니 때마다 약 대신 시를 상습 복용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젖은 연탄 냄새 자욱한 골목에 사르락사르락 아스피린처럼 내리는 눈발을 이윽히 내다보다가, 문득 ‘노루가 바다로 도망쳐, 잉어로 헤엄치’ 것을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따스한 시선은 바로 견딜 수 없이 아픈 풍경에 대한 시인의 지극한 위로인 셈이다.                               - 이덕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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