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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시선

파랑도에 빠지다

by 푸른사상 2011. 10. 6.

 

파랑도에 빠지다

 

 

 

심인숙의 시는 역동적이다. 형용사보다 동사를 훨씬 많이 구사하는 이유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애착 때문일 것이다. 아니, 살아 있지 않는 자연 대상물일지라도 심인숙의 시에서는 살아 숨 쉰다. 그러니까 시인이 파악하고 있는 이 세계의 모든 사물은 움직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들이다. 늦깎이로 시단에 나와 그 누구보다 활발히 시작 활동을 전개하여 첫 시집을 내는 심 시인의 부지런함은 미세하기 이를 데 없는 원자 속의 전자와 저 태양의 움직임과 다를 바 없다. 어떤 것들은 일사분란하게, 어떤 것들은 충동적으로 움직인다. 아기를 업은 그녀가 오르자 기차는 달려 나가고, 수많은 배추흰나비가 열차를 끌고 간다. 계속 움직여라! 움직이는 것들은 다 살아 있는 것이니. 악착같이 살아라! 살아 있는 것들은 다 움직이는 것이니.
                                                                                                      -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심인숙의 시를 나오게 하는 힘은 '가벼움의 본능'이다. 그의 시어들은 뒤꿈치에 날개를 달고 있어서 날아오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 같다.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일상에서 마주친 것이든 그의 혀에 닿는 것들은 모두 달ㆍ별ㆍ햇빛ㆍ공기ㆍ구름ㆍ새ㆍ나비ㆍ공 등의 이미지로 변하여 제멋대로 솟구치고 튀어 오르고 날아다닌다.
바슐라르는 '삶의 가장 깊은 본능의 하나인 가벼움의 본능'이 우리에게 내재한다고 말했다. 날아다니는 꿈을 꾸게 하는 것은 성적 리비도가 아니라 '전존재의 가벼움, 가벼움 자체로서의 가벼움'의 본능이라고 한다. 꿈에서는 날개가 있어서 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비상이 있고 그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나중에 날개가 달린다는 것이다.
가벼움의 본능은 어린 시절에는 잘 발휘되지만 어른이 되면 억눌리고 잠재된다. 심인숙 시인은 시를 통해 이 본능을 마음껏 해방시킨다. 끓어오르는 분노나 권태조차도 그의 언어에 닿으면 체중계 위에 발을 얹은 달빛처럼 무게 없는 가벼움이 된다. 이 가벼움은 일상과 시간 속으로 침투하여 먹고 사는 고역을 즐거운 놀이로 만들고 늙음과 아픔과 고단함 속에서 천진난만한 어린이를 찾아낸다.       -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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