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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간행도서

이찬옥 소설집, <마릴린 먼로가 좋아>

by 푸른사상 2022. 10. 11.

 

분류--문학(소설)

 

마릴린 먼로가 좋아

 

이찬옥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39|146×210×14mm|224쪽

16,900원|ISBN 979-11-308-1956-3 03810 | 2022.9.30

 

 

■ 도서 소개

 

새롭고 강렬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이야기들

 

이찬옥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마릴린 먼로가 좋아』가 <푸른사상 소설선 39>로 출간되었다. 이 소설집에는 심해를 동경하는 아쿠아리스트, 마릴린 먼로와 이미지가 닮은 여자, 방황하는 청소년 등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소통 문제와 복잡다단한 심리를 정밀하고도 섬세하게 풀어내어 독자에게 새로운 세계를 안겨주고 있다.

 

 

■ 작가 소개

 

이찬옥

용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문학나무』에 단편소설 「집」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티파니에서』 『메종』이 있고, 함께 지은 책으로 『네 여자 세 남자』가 있다. 2020년 직지소설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 목차

 

▪ 작가의 말

 

그랑블루

마릴린 먼로가 좋아

프랑스어 연극처럼

새벽에 사과 먹는 여자

그 눈부신 새벽에

그녀가 무심천으로 간 까닭은

투견

K네 집

 

작품 해설:과거와 현재가 상호 조응하는 소설적 묘사의 세계 _ 김종회

 

 

■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 같은 삶을 꿈꾸었고 소설을 잘 쓰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한참을 가다가 돌아보면 늘 그 자리인 것 같아 아득했다. 지금까지 간신히 소설가로서 연명하기 위해 소설을 쓰고 작품집을 낸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런 나를 변명하느라 느리게 소설 쓰는 작가라고 말했다. 그래도 스스로 위안하는 것은 오랜 세월 소설의 길을 걸으며 아예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때로 위축되고 두렵고 아득했지만 그 길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물이 빠진 길을 지나는 환희의 순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길을 지나며 함께 환호성을 질렀던 벗들도 있었다.

세 번째 소설집이다. 이번 작품집은 유난히 나의 궤적들이 많은 것 같아 부끄럽다. 어느 평론가는, 고인이 되신 박완서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남의 것처럼, 남의 이야기를 마치 내 것처럼 가장 잘 쓰는 작가라고 했다. 크게 공감했고 나도 그렇게 소설을 쓰고 싶었다. 독자들이 부디 그런 혼동 속에서 사랑으로 작품들을 읽어주시길 바란다.

 

 

■ 작품 세계

 

전반적인 독후 감상으로는, 이 작가의 내부에 다양다기하고 백화난만한 이야기의 화원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마치 실타래를 풀듯이 하나하나의 담화들이 소설의 표면 위로 떠오르기도 하고 행간에 숨죽이고 있기도 하다. 이 숱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그의 내면은 견디기 어려운 갈등을 잉태했을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이 작가는 이야기를 편안하고 재미있게 수용자에게 전달하거나, 때로는 독자로 하여금 청신과 후감과 소설에 의지한 소망을 갖도록 하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사건의 서술과 극적인 전개 또는 순조로운 마무리가 그의 관심 사항이 아니라는 뜻이다. 대신에 한 인물이나 사건의 경과 과정에 주의를 집중하여, 이를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전후 문맥을 값있게 하는 데 익숙하고 또 그 역량이 수발(秀拔)하다. 당연히 이 묘사 중심의 문체는 단단하고 매끄럽다. 소설적 이야기의 결말이 불명확하거나, 사건의 원인 행위에 대한 서술이 불친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반대급부일 수도 있다. 우리 작가 가운데 오정희의 문장이, 서구의 소설 창작 방식 가운데 누보로망의 창작 유형이 그의 소설에 겹쳐져 보이는 이유다.

이찬옥은 그와 같은 소설적 접근법을 통해 이미 단단한 자기 세계를 구축했다. 그것은 어쩌면 견고한 성채와 같아서 수정하기가 힘들지도 모르고, 또 그것 자체로서 충분히 소설 미학적 가치가 있다.

― 김종회(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

 

 

■ 추천의 글

 

의미심장하고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독일 신고전주의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이 소설가의 공부의 깊이를 말해준다. 이즈음 우리 소설은 새로운 모색으로 몸부림치고 있으나, 앞날은 모호하기만 하다. 다만 이 소설같이 정도를 지키는 문학을 보여주는 소설가가 있기에 우리는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재미를 말한 부분은 앤디 워홀 이래로 마릴린 먼로의 대중적 증폭이 여기서도 새롭고 강렬하여 ‘깊이’와 함께 거론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다룰 수 있는가? 살짝, 의혹과 함께 안도감이 안겨지는 까닭이다. 성실한 글쓰기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이 작가의 모습이 이 소설에서 여실하기에 기쁜 독후감을 보낸다.

― 윤후명(소설가)

 

 

■ 출판사 리뷰

 

이찬옥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마릴린 먼로가 좋아』에는 심해를 동경하는 아쿠아리스트, 마릴린 먼로와 이미지가 닮은 여자, 방황하는 청소년 등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작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복잡다단한 심리와 그들의 소통 문제를 단단하고 섬세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표제작인 「마릴린 먼로가 좋아」는 교회 청년부원들 사이에서 백치미의 대명사인 ‘마릴린 먼로’라고 불리는 한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별명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며 치마를 걷어 올려 영화 <7년 만의 외출> 속에 나오는 환풍구 장면을 흉내 내던 그녀는, 화자인 ‘나’가 연모하던 남자와 결혼한다. ‘나’는 그녀와 조금은 어색하고도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녀의 행복하지 못한 결혼 생활과 조금씩 정상에서 비껴가는 듯한 그녀의 정신 상태를 지켜본다. 작품은 결국엔 이단 종교에 빠져드는가 하면 노숙자로 전락해버린 그녀의 비극을 통해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맺어지고 부서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방황하는 청소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그린 「그 눈부신 새벽에」는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독특한 소설이다. 그 외에도 프랑스어 연극을 접하며 청춘의 열정과 사랑을 회상하는 「프랑스어 연극처럼」, 불법 투견 세계에 들어간 남자의 심리와 삶의 변화를 그린 「투견」 등의 작품들도 주목할 만하다.

여덟 편의 작품으로 꽉 차 있는 이 소설집은 일상적인 삶 가운데 드리워진 어둠의 그림자들을 찾아내며 실타래를 풀듯이 이야기를 펼쳐내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 작품 속으로

 

그녀는 교회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그곳은 청년부 자매들의 아지트였다. 오전에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청년부 자매들은 오후 청년부 예배가 시작되기 전 틈이 생기면 그녀의 방에서 잠깐 몸을 뉘였다. 때로는 우르르 몰려가기도 했는데 그녀는 팔을 걷어붙이고 각종 야채를 버무려 부침개나 새콤한 비빔냉면을 해줬다. 그녀는 우리가 뭘 먹고 싶다고 하면 뚝딱 금방 해내 왔다. 음식 솜씨가 훌륭했다. 자매들은 그녀 집에 있으면 식사할 때 감사기도 정도는 했지만 신앙적인 의식에서 많이 벗어났다. 어느 날, 은이가 장난스럽게 이름 대신 그녀를 ‘마릴린 먼로’라고 불렀다. 그녀는 뜻밖에도 예의 그 미소를 짓고 치마를 걷어 올리며 영화 <7년 만의 외출> 속에 나오는 환풍구 장면을 흉내 내었다. 청년부 자매들은 박장대소하며 뒤로 넘어지는 시늉을 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교회에서도 공공연히 ‘마릴린 먼로’라 불리었다. 특히 청년부 형제들이 그 이름을 반기는 것 같았다. 교회 청년부는 마릴린 먼로가 된 그녀로 인해 더 환해지고 소란스러워졌다. 어쩌다 그녀의 진짜 이름을 부르면 더 어색했다. (「마릴린 먼로가 좋아」, 41~42쪽)

 

정말 많은 사람이 모였군요. 엄마, 울지 마세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러 왔잖아요. 3월에 눈이 내렸어요. 눈의 무게에 나뭇가지가 휘어질 것만 같아요. 온 세상이 하얗게 되었어요. 눈이 부셔요. 사람들은 나를 만나러 오는 길이 조금 힘겨웠어도 그렇게 불평은 안 했을 거예요. 그렇게 환한 거리를 보며 화내거나 투덜댈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내가 세상을 떠난 슬픔에 대해서도 잠시 잊을 수도 있었겠네요. 어, 심술이 고모가 왔어요. 고모가 내 영정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무너지듯 주저앉아 울고 있어요. 아니 이토록 멋진 모습의 나를 보면서 우는 것은 안 되죠. 그 사진은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모 기획사 관계자가 모델 제의를 해 왔을 때 찍은 사진이잖아요. 그때 심술이 고모는 내가 곧 연예인이라도 될 것처럼 들떠서 하늘색 남방과 스트라이프가 있는 갈색 재킷을 사주었어요. (「그 눈부신 새벽에」, 115쪽)

 

주인에게 충성스런 종의 개들은 목숨을 내걸고 싸웠다. 아니 투견으로 만들어진 개들은 그게 본능이 되었다. 약한 개는 정해진 시간 전에 만신창이가 되어 나자빠졌다. 승리한 개의 몰골 또한 볼썽사나웠다. 견주를 비롯한 투견에 돈을 건 사람들, 심지어 나 같은 구경꾼 등 링을 에워싼 열댓 명의 사람들은 온 정신을 곧추세우고 눈을 번뜩였다. 어느 한쪽의 개라도 기세를 올리면 사람들은 더 열광했다. 마치 자신이 싸우고 있는 것처럼 눈에 살기가 서렸다.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개싸움 한 방에 걸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서서히 개싸움에 중독되었다. 내가 언제 한번 죽기 살기로 싸워본 적 있었던가? 처음에는 투견 판에 갔다 오면 하루 이틀 밥도 못 먹고 며칠 동안 사나운 꿈에 시달렸는데 그런 증세도 차차 없어졌다. 지독하게 앓고 난 뒤의 시원함 같은 게 느껴졌다. 나의 근육이 더 단단해진 것 같기도 했다. (「투견」, 177~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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