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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간행도서

김민혜 소설집, <기억의 바깥>

by 푸른사상 2022. 10. 7.

 

분류--문학(소설)

 

기억의 바깥

 

김민혜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38|146×210×14mm|224쪽

16,900원|ISBN 979-11-308-1955-6 03810 | 2022.9.27

 

 

■ 도서 소개

 

자아를 응시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

 

김민혜 작가의 소설집 『기억의 바깥』이 <푸른사상 소설선 38>로 출간되었다. 현대 사회에 자리한 짙은 그늘에서 부단히도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8편을 담은 소설집이다. 각자 인물들이 내면의 깊은 곳을 응시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백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어 독자들에게 따스한 온기를 전해준다.

 

 

■ 작가 소개

 

김민혜

부산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2015년 『월간문학』 및 『동리목월』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명랑한 외출』, 장편소설 『너의 우산』, 앤솔러지 『모자이크 부산』 『그녀들의 조선』 등을 펴냈다. 금샘문학상을 수상했다.

 

 

■ 목차

 

▪ 작가의 말

 

엄마의 문장

아인슈페너를 마시는 여자

울음소리

진동의 기원

해뜰참 토스트

북 리뷰어

마음 테라피

다락방의 상자

 

작품 해설:응시와 치유로서의 글쓰기 _ 심영의

 

 

■ '작가의 말' 중에서

 

수목들이 한껏 푸르고 무성해져 있었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에 나무그늘이 반가웠다. 식물은 늘 그렇듯 생장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절에 순응하고 제 본분을 다한다. 정작 계절마다 온도와 습기, 미세먼지를 탓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인간이다. 새로운 사실이 아닌데도 새삼스러운 듯한 표현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인간의 몸이, 그만큼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공원을 걷다 보니 새로운 길이 보였다. 늘 가는 길이었는데도 구석진 곳에 소슬한 오솔길이 나 있었다는 것을 여태 몰랐던 것이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을 걸으니 시골 정취가 느껴지면서 한적하고 고요했다.

장소나 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나 감정 안에도 미처 느끼지 못했거나 알아채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 빈 곳, 낯설고 오묘하게 남겨진 그 자리를 탐색하려고 인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중략)

소설 쓰기는 높은 산처럼 아득하고 멀지만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걸어가겠다. 가파른 벼랑을 맞닥뜨려도 힘을 내어 걷는다면 언젠가 웅숭깊은 사유의 글을 길어 올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빛에 닿지 못해 어둠 속에 버려지거나 경계에서 밀려난 이들의 편에 서서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목소리를 담겠다. 책 백 권을 내려면 나무 두 그루가 소요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책이 나오기 위해 쓸쓸히 베인 나무들에게 진정으로 미안하다. 책에 담긴 나무의 정령과 필자의 열정이 독자들에게 따스한 온기로 가 닿기를 바랄 뿐이다.

 

 

■ 작품 세계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인 걸작 중 하나인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2세의 그림 <대사들>(1533)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곧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바니타스(Vanitas)적 의미뿐 아니라 아나모르포시스(anamorfosis)적 거울로서의 의미로도 푸코 이후 현대철학자와 문예 비평가들 사이에 자주 인용되고 있는 텍스트이다. 라캉에게 응시는 아나모르포시스처럼 왜곡된 상(image)이다. 라캉은 홀바인의 그림 <대사들>에서 얼핏 보면 남근처럼 보이는, 가운데 아래쪽 길쭉한 모양의 물체가 약간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 사실은 해골이라고 말한다.

지젝은 여기에 착안해서 ‘비스듬히 바라보기(looking awry)’라는 제목의 글을 쓴다. 바라보기, 응시란 곧 충동(Trieb, drive)이다. 충동은 정신분석학의 핵심적 탐문 대상이다. 충동은 유아기에 아이가 어머니라는 대타자(The Other)에 대해 경험하게 되는 추상적인 쾌락의 흔적이다. 김민혜 소설집 『기억의 바깥』에 수록되어 있는 여덟 편의 단편소설은 응시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 쾌락(행복)을 추구하는 서사다.

소설집에 수록된 김민혜 소설 여덟 편은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치밀하고 섬세한 묘사와 정밀한 표현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실 인물의 특성과 성격을 나타내는 데 있어 정물적 요소의 활용은 북구 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대상에 대한 정밀한 묘사의 힘은 무엇보다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수사적 장치다.

함께 살펴본 김민혜 소설들은 다시 강조하지만, 자아의 응시를 통한 상처의 치유를 통해 궁극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쾌락(행복)을 추구하는 서사다. 소설이란 내면성을 지니는 고유한 가치를 알아보려는 모험의 형식이다. 루카치는 그것을 ‘문제적 개인의 자기인식에로의 여행’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설에 대한 그의 언명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는 이들도 없지 않으나, 소설이 그 자체로서는 삶의 자연스러운 시작과 끝, 즉 탄생과 죽음과는 아무런 관계를 맺고 있지 않지만, 소설이 시작하고 끝나는 바로 그 지점을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에 이를 수 있다면, 루카치의 말은 여전히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유효한 명제라고 나는 믿는다. 김민혜 소설은 다양한 인물의 내면에 가득 고인 불안과 존재론적 고독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해결을 모색하는, 깊은 사유의 흔적이다.

― 심영의(소설가 겸 평론가·전남대 교수)

 

 

■ 출판사 리뷰

 

현대 사회에 자리한 짙은 그늘에 드리워진 채 부단히도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김민혜의 소설집 『기억의 바깥』은 각자 인물들이 내면의 깊은 곳을 응시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성과 사랑, 오해와 누명으로 인해 벼랑 끝에 내몰린 인간 등 현대사회를 둘러싼 아픔을 정교하고도 섬세한 필치로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에게 공감을 선사한다.

「엄마의 문장」에는 취업을 준비하는 딸 미래와, 남편이 죽고 난 후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분투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엄마가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레몬빛 가죽 수첩에 빼곡히 적어내려가는 “문장”을 미래는 궁금해하지만, 엄마의 사생활이기에 열어보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로 엄마의 외출을 카메라로 촬영하려던 미래는, 악착같이 살아가기 위해 수치스러운 상황도 참아내는 엄마를 발견하고 비로소 “엄마의 문장”을 읽게 된다. 엄마가 내일을 버티기 위해 하루하루 불안과 슬픔을 일기에 기록했듯, 미래 역시 글쓰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자 마음먹는다.

「울음소리」의 주인공은 건설업자이다. 어렵게 도시 변두리에 부지를 구해 아파트를 시공하는 과정에서 멸종위기종인 맹꽁이 서식지를 발견하여 공사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끝을 모르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야생동물은 서식지와 생태환경이 파괴되었고, 주인공 또한 믿고 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다. 아울러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는 여성들의 모임을 다룬 「마음 테라피」, 이사 온 집 다락방에서 찾아낸 상자 속에서 오래전 한국전쟁 당시의 부산의 풍경과 연인들의 아픈 기억을 되살려낸 「다락방의 상자」도 주목할 만한 소설이다. 이 소설집은 인물들의 내면에 고인 불안과 존재론적 고독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해결을 모색하는, 깊은 사유의 흔적이다.

 

 

■ 작품 속으로

 

엄마는 잠들기 전 밤마다 식탁에 앉아 뭔가를 끼적거렸다. 노트북이 아니라 노트였고, 연필이나 볼펜이 쓱싹거리는 소리가 마치 재봉틀 소리처럼 들렸다. 엄마에게 뭘 그리 열심히 적느냐고 물으면 엄마는 그냥 ‘문장’이라고 했다. 노트에 문장을 쓰면서 엄마는 박음질하듯 자신의 마음을 재단하고 붙이고 싶었을까. 가끔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고, 그 소리는 세상의 저편에 있는 아버지를 향한 원망처럼 들리기도 했다. 천 갈래 만 갈래 찢기는 마음을 문장으로 이어 붙여 그 노트에 고스란히 담아놓았을 거라고 나는 짐작했다. 졸업을 앞둔 나만큼이나 초조하고 불안할까. 날 향해 미소를 짓는 엄마를 생각하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노트가 열 권도 넘는 것을 보고 나는 말했었다. “엄마, 저걸 타이핑해서 책이라도 내지?” 엄마는 내 말에 실죽 웃었다. “미래야, 난 내 흔적을 남기기 싫거든. 내가 죽고 나서 내 이름, 책 같은 게 남아 있으면 찜찜해. 이건 그냥 가장 행복한 내 시간의 흔적이야.” 엄마는 마치, 천국에 오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역시 천사의 미소를 짐짓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엄마의 문장」, 17쪽)

 

시공에 착수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전담부서 측에서 맹꽁이들이 하나둘 죽어간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황 전무가 실태를 설명했다. 한 달 전만 해도 30마리 정도 있었는데 갑자기 25마리로 줄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맹꽁이 생태공원을 믿고 계약한 계약자들로부터 원성을 살 것이 분명했다.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계약자들로부터 소송이 이어질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착공 6개월 만에 회사는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무슨 대책이 없겠습니까?”

내 목소리가 기운 없이 흘러나왔다. 무거운 침묵이 공기를 팽팽히 누르고 있었다.

“맹꽁이들을 전부 다른 장소로 옮기면 안 되겠습니까?”

“그게 간단히 될까요? 환경이 달라지는데. 맹꽁이가 뭐 물건도 아니고 말이지요.”

“환경을 똑같이 꾸미면 안 될 것도 없지요.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야지요. 안 죽게 하려면.”

“그러니까, 원인이 뭡니까? 아파트 공사로 인해서 맹꽁이 서식처에 오염 물질이 유입되어 환경의 변화가 생긴 것 아닙니까? 새 서식처는 그걸 감안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지요.”

(「울음소리」, 68~69쪽)

 

아내가 옆에서 소곤대는 것도 아랑곳없이 그의 눈빛은 허공의 어떤 물질에 무심히 머물렀다. 마치 이 집에 그 주인이 유령처럼 떠 있기라도 한다는 듯이. 사진의 주인공이 그때 20대라면, 지금은 50대일 것이다. 그들이 누군지 찾을 수는 없을까. 이곳은 옛날 하야리아 부대 주변이니 미군이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도 함께 살았을까? 미군은 떠났지만 여자는 어딘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혼해서 함께 떠났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소중한 상자를 갖고 가지 않았을까. 그는 상자를 찾아주고 싶다는 욕구를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전 주인은 아이고, 구십 년대 살았던 여자의 물건 같은데…… 하야리아 미군과 사귄 여자가 이 집에 살았는지도 모르제. 아이면 사귀다가 놀러 올 수도 있었을 끼고.”

(「다락방의 상자」,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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