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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간행도서

오세영 산문집, <곡선은 직선보다 아름답다>

by 푸른사상 2022. 10. 6.

 

분류--문학(산문)

 

곡선은 직선보다 아름답다

 

오세영 지음|푸른사상 산문선 46|150×217×20mm(하드커버)|256쪽

22,000원|ISBN 979-11-308-1953-2 03810 | 2022.9.30

 

 

 

■ 도서 소개

 

삶에서 건져 올린 인문학적 사유의 즐거움을 만끽하다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오세영 시인(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곡선은 직선보다 아름답다』가 <푸른사상 산문선 46>으로 출간되었다. 평생 학문과 문학에 정진한 저자의 일상에서 얻어진 자기 성찰의 기록이자 삶의 관록인 이 산문집은 독자들에게 인문학적 사유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 작가 소개

 

오세영

1942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장성, 광주, 전북 전주 등지에서 성장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박목월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저서로는 학술서 『한국 낭만주의 시 연구』 『20세기 한국 시 연구』 『한국 현대시 분석적 읽기』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 23권, 시집 『무명연시』 『밤하늘의 바둑판』 『북양항로』 등 27권, 기타 산문집들이 있다.

 

 

■ 목차

 

▪ 작가의 말 : 수필에 대하여

 

제1부 내 시의 현주소

내 어찌 한시라도 잊을 수 있으랴 / 댓돌 위의 하이얀 고무신 / 서하초등학교의 벚꽃 / 들꽃 / 자작나무 / 앞산의 눈 / 차고 하얀 겨울 산에서의 명상 / 새봄을 기다리는 마음 / 동화(童話) / 새해 아침에 / 엄지손가락의 그 피 한 방울 / 한강, 서울의 젖줄 / 집이 우는 소리 / 내 가난한 작은 항구 / 매년 피는 꽃은 다르다 / 아아, 북한강(北漢江)

 

제2부 떠날 때는 스스로

나의 기원 / 내 테이블 위의 초콜릿 한 상자 / 이름에 관하여 / 내 이름 오세영 (1) / 내 이름 오세영 (2) / 없는 듯이 뒷줄에 / 휴대전화 메시지 / 봉변 / 나도 나를 모르는 / 전원일기 / 낯선 것들을 대하는 즐거움 / 칠산 앞바다가 보이는 언덕길 / 내빈 소개 / 전단지 / 시의 언어 / 잃어버린 그 무엇이 있을 것 같은 / 아이오와대학 캠퍼스의 오리 떼들 / 이름도 모르는 그 칠레의 청년 /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 여행 중에 겪은 일들

 

제3부 단상

정치와 명예 / 진실에 이르는 길 / 바스티유 오페라좌 / 부끄러워하자 / 이 몸이 죽고 죽어 / 국민 2.6명당 자동차 한 대 / 고속열차 유감 / 곡선은 직선보다 아름답다 / 거짓의 진실과 사실의 진실 / 아는 것이 힘이다? / 인문학은 인문학이다 / 식생활과 민족의 정체성 / 이름의 순서 / 현실과 이념 / 광장을 만들자 / 사고 다발 지역 / 아아, 동십자각 / 부화뇌동

 

 

■ '작가의 말' 중에서

 

언어는 불완전하다. 그러나 일개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그래도 자신의 뜻을 전달코자 한다면 언어 이외에 달리 어떤 방편이 있을 것인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존재 자체가 불완전하니 그가 만든 언어 또한 불완전할 것은 필연이며, 언어가 불완전하니 어차피 온전하게 이 세계를 받아들이거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 또한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한 생, 언어에 매달려 사는 인간이란 얼마나 덧없고 허망한 존재일 것이랴.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감히 ‘진실’이나 ‘진리’라고 말할 수는 없는 까닭에 이 어휘를 차용한다 ―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독자들에게 참으로 많은 말들을 횡설수설 늘어놓았다. 학술서 스물댓 권, 시집 삼십여 권을 통해 들려준 말들이 그것이다. 그래도 나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제대로 다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허실 삼아 이 마지막 카드를 한 번 꺼내본다. 주관적 직설어법의 말들이다.

학문적인 글이 객관적 직설어법이라면, 소설은 객관적 간접어법, 수필은 주관적 직설어법, 시는 주관적 직관어법의 글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수필집을 통해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 할 수 없었던 말, 하려다가 실패했던 말을 내 나름의 이‘ 주관적 직설어법’으로 다시 해보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어차피 언어란 불완전한 표현수단인 것. 이 같은 내 존재의 몸부림을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주시기 바란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이 배로 함께 이승을 건너는 승선자(embarquement)들 아니겠는가.

 

 

■ 출판사 리뷰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국문학자로서, 굴곡진 현대사를 건너오면서도 주변의 사물과 자연에서 삶의 진리를 찾고 서정의 미학을 펼쳐낸 오세영 시인의 삶이 신작 산문집 『곡선은 직선보다 아름답다』에 응축되어 있다. 그가 수십 년 학자이자 시인으로서 학술서 이십여 권, 시집 삼십여 권 남짓을 펴내면서 그동안 다하지 못했던 말들과 지난날들에 대한 회고를 솔직하게 술회하고 있다. 평생 학문과 문학에 정진한 저자의 일상에서 얻어진 자기 성찰의 기록이자 인생의 관록이 담긴 이 산문집은 독자들에게 인문학적 사유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세영 시인은 가볍게 지나치기 쉬운 일상적인 것들에서도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특히 자연 속에서 느끼는 인간 삶의 참다운 진리가 그것이다. 섬진강변을 따라가다 우연히 마주친 수양벚꽃이 선사하는 황홀하고도 아름다운 광경, 그리고 이듬해 다시 찾은 그곳에서 만개한 벚꽃 무리를 보는 것에도 무수한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산사에서의 적막한 하루를 보내던 필자가 세간에 불길한 징조로 여기는 새인 까마귀가 겨울을 나는 모습을 보면서, 선입견으로 가득 찬 인간 세계가 지향해야 할 지점을 발견한다.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고 좌석이 혼잡한 열차 안일지라도 굽이굽이 산기슭을 돌고 윤슬이 보이는 강변을 지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며 여행을 떠나는 설렘이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다. 목적지에 조금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강에는 다리를 세우고 산을 깎아 허물고 터널을 만들어 직선으로 득달같이 달려가는 오늘날, 물질과 자본에 종속되어버린 시대에 인간성이 무너지고 인정이 사라진 우리의 삶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작품 속으로

 

그런 어느 날 저녁, 오세암(五歲庵) 쪽을 향해 걷던 중이었다. 어디선가 까옥 까옥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돌아보니 절벽의 쓰러질 듯 걸린 참나무 마른 가지 끝에 웬 까마귀 한 마리가 덩그랗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며칠 전, 내린 눈으로 온 산은 그야말로 은산철벽(銀山鐵壁)인데 그 순백의 풍경을 배경 삼아 홀로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그 까마귀 한 마리, 내 눈에 비친 그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속되거나 음침해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고독하고 고결해 보였다. 마침 해가 저물고 있었다. 석양에 비껴서 그랬을까. 아니면 차고 하얀 눈빛과 대조되는 그 색깔 때문에 그랬을까. 까만색도 그렇게 황홀할 수 있음을 나는 그때 비로소 알았다.

(「차고 하얀 겨울 산에서의 명상」, 32~33쪽)

 

며칠 전의 일이다. 어느 지방 대학의 교수가 된 제자 하나가 몇 년 만에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의 말이 이러했다. 그 학교의 국문학과에서는 전통적으로 매년 5월에 문학답사라는 행사가 있어 올해는 학생들을 인솔하고 경주에 있는 ‘동리 목월 문학관’엘 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저곳 전시물들을 관람하던 학생들 중의 하나가 느닷없이 “‘선생님의 선생님’ 편지가 여기 있네요” 하고 버럭 소리를 질러서 그를 따라 유리 전시대를 살펴보았더니 거기에 내가 40여 년 전 박목월 선생님께 보낸 편지 한 장이 전시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도 문득 그 순간 내 얼굴이 떠올라 이처럼 찾아왔다며 멋쩍게 포도주 한 병을 내놓고 돌아갔다. 알고 보니 그것은 아주 오래전인 1965년 4월, 전주(全州)의 기전(紀全)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던 내가, 내 시를 『현대문학』지에 추천해주신 박목월(朴木月) 선생님께 감사해 올린 문안 편지였다.

(「휴대전화 메시지」, 96~97쪽)

 

그 시절의 경춘선 열차는 고물이었다. 철로도 요즘처럼 직선이 아니어서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돌아나갔다. 속도를 내거나 커브 길을 돌 때는 바퀴 덜컹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좌석이 붐벼 통로에 서서 가는 것이 예사였다. 청량리역에서 춘천역까지 걸리는 시간도 지금과 달리 두 시간 이상 소요되었다. 그러나 승객 그 누구도 불평을 늘어놓지도 투정하지도 않았다. 지루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느 먼 미지의 나라에 여행이라도 떠나듯 모두 들뜬 표정들뿐이었다. 비록 열차는 누추했지만 아름다웠고 객실은 혼잡스러웠으나 즐거웠다. 빠른 속도가 아니었지만 시간 가는 줄을 몰라 했다. (중략)

중요한 것은 그때 그 열차가 오늘의 그것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철도든, 도로든 대부분의 길들이 직선으로 가는 것을 고집하지 않았다. 산이 있으면 굽이굽이 산기슭을 돌았고 강이 있으면 강변을 따라 유유히 달렸다. 빨리 가려고 산을 깎아 허물고 터널을 뚫어 작위적으로 직선을 내지 않았다.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해서 산이건 강이건 굽이도는 곳마다 매번 다리를 놓지도 않았다. 가능한 한 자연의 순리(順理)를 따랐다.

(「곡선은 직선보다 아름답다」,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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