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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간행도서

김려원 시집, <천년에 아흔아홉 번>

by 푸른사상 2022. 10. 21.

 

분류--문학()

 

천년에 아흔아홉 번

 

김려원 지음|푸른사상 시선 163|128×205×8mm|160쪽|10,000원

ISBN 979-11-308-1957-0 03810 | 2022.10.12

 

 

■ 시집 소개

 

시간의 빛깔과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빛의 꿈

 

김려원 시인의 첫 시집 『천년에 아흔아홉 번』이 <푸른사상 시선 163>으로 출간되었다. 굴곡진 세계의 주름에 미끄러지거나 좌절하지 않고 시간의 빛깔을 향해 나아간다. 자연과 세상 존재들의 면면을 사유하는 시인은 단단하고도 섬세한 서정의 노래를 부른다.

 

 

■ 시인 소개

 

김려원

하동에서 나고 진주에서 자랐으며, 2017년 시 「후박」이 진주가을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구별 한 귀퉁이에서 꽃밭을 가꾸고 있다.

 

 

■ 목차

 

제1부 새벽은 이마가 희다

폴리 혼방 / 사진의 뒷면 / 애월의 얼룩 / 머리칼 / 현호색 풀밭 / 시시각각 메니에르 / 넘어진 나비 / 꽃망울 / 꽁치뼈를 발라내는 3인칭 / 우는 소 / 사이프러스 나무 곁에서 / 소금의 온도 / 아버지가 이상하다 / 하늘정원 / 가슴 없는 사람

 

제2부 노란이 녹는 정오께

포지션 / 귤이 파란을 버릴 때 / 후박 / 모과의 방 ― 가시내 / 모과의 방 ― 사내 / 모과의 방 ― 가시내와 사내 / 실수의 모양 / 금빛 당신과 나와 아기와 / 사각사각 통증학 / 손가락으로 만월을 클릭 / 달려라 사과 / 불연성 분리수거 / 건너뛰기 / 노란이 다 녹은 거니? / 한 권의 당신

 

제3부 이 저녁의 보랏빛

봉지의 수다 / 라일, 락 / 비를 발음하는 괘 / 옆구리는 시리다 / 바이크릴 수선집 / 지루한 핑크 / 물론, 물구나무 / 짐승 두 짝 / 질투라는 계절 / 꽃말의자 / 보라 / 슈거 / 먼 사람 / 앨리스의 빗소리 / 헤르페스 프로그래밍 / 지구 알약 / 그날의 외출복 / 사이사이의 커튼

 

제4부 밤 11시, 에메랄드그린 침대

감나무 화단 / 어제의 표정 / 책상제국 / 맨발을 크로키하는 11시 11분 / 자기 표절 / 봄의 유서 / 송곳 아포리즘 / 울음 첩첩 / 시침 없는 벽시계 / 따끔따끔 박차 / 굳은살 / 느티나무 적막 / 철수 형과 꼭짓점 / 식물성 불면 / 물의 영법 / 달빛의자 / 잠입

 

작품 해설 : 빛의 꿈이 펼치는 풍경으로의 시-이병국

 

 

■ '시인의 말' 중에서

 

덜컹 새벽 귀가 열리고

펜리스 울프, 그 정오의 턱주가리가

프리지어색 물방울들을 삼킨다.

억만년을 이어온 이 저녁의 눈빛은

토마토에 치는 히말라야 핑크소금의 결정

그날의 질량을 저울판에 올리는

밤 11시의 어둠은

오오래 익은 오디색 무게로 물드는가.

식탁이 그립지 않은 날

간간한 케첩으로 끼니를 채운다.

카나리아색 설탕을 엎지른 날은

시간의 흰 그늘을 그곳에다 드리운다.

더듬더듬 머뭇거리다 나의 발끝은

어느 생애에 불시착하겠는가.

깊은 어깨를 내어주는 당신은 종종

에메랄드그린 깜빡이라서.

 

 

■ 추천의 글

 

정형(正形)이 천대받는 일들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단맛 나는 말투로 빚은 과욕에 대해서는 또 관대하다. 삐딱한 자세엔 삐딱한 이유가 있다. 그건, 아픈 곳을 피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김려원 시인의 시는 탓하는 일에 앞서 이유를 찾은 일을 오래 해온 말투다. 풀을 먹는 존재들이 대체로 우는 이유에 풀과 애벌레와 열매들을 의심하는 삼투압적인 자세는 온갖 기형을 인정한 끝에야 얻을 수 있는 말투다. 주저한 끝을 모아 속보를 걷는 자세다.

세상엔 한물간 말투들과 도무지 알 수 없는 말투들의 간격이 넓다. 그 틈을 어우르는 일을 천품(天稟)으로 삼은 각오가 단연 돋보인다. 다채(多彩)가 넘친다. 대체로 굴리다 보면 동그랗게 되는 것이 이치라지만 시인의 시들은 굴릴수록 불거지거나 도드라진다. 다분(多分)이 경우의 수 쪽으로 몰리는 일과 같다. 때론 지루할 법한 추구를 다루면서도 분방함을 놓지 않는다.

시인은 무간(無間)의 나이와 표정과 분간과 체득을 사용하는 연령대라서 시만 보아서는 쉽게 현실의 면면이 추정되지 않는다. 옳은 일이다. 시는 젊고 분별은 깊다. 더 놀라운 것은 이제 첫 시집이라니!

― 박해람(시인)

 

 

■ 작품 세계

  

시인은 빛의 꿈을 꾼다. 빛의 기원을 찾아 새벽에 귀를 열기도 하고 발끝에 불시착한 어느 생애를 머뭇거리기도 한다. ‘시인의 말’에 얼비치는 빛의 색들은 시집의 각 부의 토대가 되어 활자를 매만지며 삶의 기척을 예민하게 감각하는 한편으로 균열을 은폐한 기만적 세계 속에서 슬픔을 체화한 이미지로 우리 눈앞에 그려진다. 길들여짐, 혹은 깃들임, 부정과 긍정이 상호 교차하면서 이루어지는 김려원 시인의 시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얼굴, 그 배면에 침잠해 있는 그늘을 “이슥도록 펼쳐놓는 무릇”(「느티나무 적막」)의 빛으로 길어 올린다.

이 빛을 마주한 우리는 옥타비오 파스가 말한 것처럼 시인과 함께 독자의 자리에서 시라는 불꽃을 일으킨다. 그럼으로써 불꽃은 붉고 푸르고 하얀, 더 나아가 투명한 색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시를 쓰는 층위에서 시를 향유하는 층위로의 자리 옮김이자 그 자체로 또 다른 시적 작업의 수행이 되어 지속적인 성찰을 가능케 한다. 세계를 사는 존재의 사유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기점이 되는 시라는 장소는 그리 간단하게 정리될 수 없겠으나 우리가 감지하는 시인의 시간으로 말미암아 일정한 소격 효과를 만들어내며 치열한 삶의 현장을 경험하도록 이끈다. 자기 관조적인 성찰의 언어에 몸을 싣고 은유적 수행이 상상하는 실재의 뒤편에서 은근히 발하는 빛의 꿈과 조우하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성취로 다가온다.

이것은 김려원 시인의 첫 시집 『천년에 아흔아홉 번』을 읽고 난 후 인상을 직조한 이미지이지만 시집에 ‘잠입’하여 읽게 될 시편들을 관성에 기대어 판단하지 않으려는 한 독자의 내밀에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특정한 대상을 마주하면서 그 대상과 관계 맺는 세계를 총체적으로 보지 않고 ‘나’와 ‘너’의 이자 관계에 치우쳐 판단하려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을 취하며 뒷면을 보지 않으려는 회피의 유혹에 휩쓸리기 때문이다. (중략) 시는 그러한 우리의 일반적인 관념 체계를 전복시키며 고통의 향유를 통해 전면적인 반성을 모색하도록 한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은 세계를 감각하는 시적 주체 내면의 단단함이다. 시적 주체, 혹은 화자가 경험하는 세계가 아무리 폭력적이고 위압적일지라도 그것과 마주한 주체의 단단함으로 쌓고 연결하는 의미의 구체성이 존재의 취약성으로부터 우리를 다른 자리에 설 수 있게 손 내밀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려원 시인이 내민 저 손의 단단함이란 시인이 그려낸 시간의 빛깔과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빛의 꿈, 그 한 축에 존재하는 것일 테다.

― 이병국(시인, 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넘어진 나비

 

맨발의 기억이다

살그머니 다가간 걸음 끝에서

장다리꽃 앞에서

엎어진 울음이다

상처 난 나비를 보았다

매발톱꽃 수레국화 환한 하오에

아무도 일으켜주지 않은 나비는

누구도 세워주지 않은 나비는

넘어지는 일은 발끝의 일이어서

나비를 쫓는 이랑은

발밑을 잊은 돌부리다

나비가 앉았던 곳마다

갸우뚱 기울어지는 결정에

슬쩍 기댔다는 귓속말이다

이파리에 엉킨 애벌레의 시야는

볕살에 다치는 일이었다

더듬이에 말려든 어스름은

가장자리에서 부푸는 일이었다

허공에 자신만의 그물을 직조한 나비는

어디로 기울든 꽃밭이다

장다리꽃 알알이 익어

발끝을 궁리 중이다

꽃잎을 다 닫은 날개가

꽃 진 뒤의 여닫이를 덜거덕거린다

넘어진 나비는

엎어진 어린 울음의 마디 앞에

발끝의 기울기로 접혀 있다

 

 

후박

 

어둑해지는 산길에서 후박꽃들 어두워진다.

 

어차피 꽃잎의 질서란 밤과 낮을 보고 배운 방식이니까, 저녁은 두껍고 아침의 산길은 한없이 얇아서 모두 후박나무의 차지다.

 

나는 서둘러 산길을 내려오면서

저 어두운 밤이 모두 축축한 나무들 껍질로 단단해지는 것을 보았다.

흐르는 소리의 소유권을 주장하듯

물길 옆, 나무들 흔들리다가

물길을 닮아 구불구불해지는 것을 꽤 여러 해 지켜보았다.

 

계곡에 박힌 돌부리들, 물에 걸려 넘어진 저것들은 실상 옆새우나 가재, 도롱뇽이나 개구리와 같은 냄새를 풍기며 모래의 날들로 간다.

 

후박, 이라 말하고 나면 반드시

오르막과 내리막이 한 호흡 속에 있다.

 

두꺼워진 후박이 어깨에 내려앉는다.

비늘을 품은 나무껍질들이 어둠을 바짝 끌어당긴다.

 

 

모과의 방

― 사내

 

노란은 함정이다

아니다 두 마리 벌레가 기어들어간 집

꽃 떨어진 뒤끝치고는 아삼삼한 때깔

아니다 노랗게 떠서 입술 따먹고 사는 집

미쳤다 자물쇠 꽉꽉 채운 갱도 입구는

발 없는 새가 다녀간 자리

갈탄 캐는 사내의 땟국물에 전 가시내 신접살림 차렸네

둘이 단칸방에 드는 일

씨눈을 방점 찍어 얼굴 맞대면

와랑와랑 내걸리는 뭇별

노란은 하나다

아니다 벽장을 흔들어 제 이마 짚는 집

카시오페이아와 안드로메다의 별들이 똥 누기 전에

종유석 같은 새끼 굳게 낳아

지하 동굴은 씨알머리로 깊어가는 하늘

천년에 아흔아홉 번 물방울이 몸 뒤척일 때

누군가 바투 문 따는 날이 닥친다 해도

노란 집은 한 번만 툭 떨어지면

케페우스와 페르세우스가 만만세

 

하늘이 소리 없이 내려앉는 동안

미나리아재비 너머 산수유 지고 피고

갱도를 내달리던 탄차는 탐문을 피해

컴컴한 밥그릇에 며느리밑씻개 퍼다 날랐지

갈탄의 윤이 나는 출구 없는 방에서도

피붙이는 돌순으로 자라나

갱도를 발효하는 올록볼록 숨소리

 

노란은 꺼진 등불이다

아니다 천년만년 달수를 잉태하는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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