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유리벽
송하선 지음|138×198×18 mm(하드커버)|216쪽|18,000원
ISBN 979-11-308-1913-6 03810 | 2022.5.10.
■ 도서 소개
붉은 일몰의 순간과도 같은 고즈넉한 시편들
송하선 시인의 시선집 『유리벽』이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적 서정시의 계보를 이어온 송하선 시인은 지금까지 10권의 시집을 펴냈고, 이번 시선집에는 시인이 직접 선정한 85편에 실렸다.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자연을 바라보는 그윽한 명상과 관조를 통해 써 내려간 감동적인 시편들이 풍금 소리처럼 우리 마음속에 고요하게 울려 퍼진다.
■ 시인 소개
송하선
1938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전북대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 등을 졸업했고, 중국문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 『현대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80년 우석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도서관장, 인문사회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우석대 명예교수이다.
시집으로『다시 長江처럼』 『겨울풀』 『안개 속에서』 『강을 건너는 법』 『가시고기 아비의 사랑』 『새떼들이 가고 있네』 『그대 가슴에 풍금처럼 울릴 수 있다면』 『아픔이 아픔에게』 『몽유록』, 저서로 『詩人과 眞實』 『韓國 現代詩理解』 『中國 思想의 根源』(공역) 『未堂 徐廷柱 硏究』 『한국 현대시 이해와 감상』 『시인과의 진정한 만남』 『한국 명시 해설』 『서정주 예술 언어』 『夕汀 詩 다시 읽기』 『시적 담론과 평설』 『송하선 문학 앨범』 『未堂 評傳』 『신석정 평전』 등이 있다.
전북문화상, 전북 대상(학술상), 풍남문학상, 한국비평문학상, 백자예술상, 목정문화상, 황조근정훈장, 한국문학상 등을 수여받았다.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풀꽃의 설법
은어(隱語) / 유리벽 / 고요한 저녁 / 그대는 / 가을에 / 천 년의 바람이 되어 /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 늙은 학처럼 / 눈썹달 / 싸락눈 / 박꽃 / 풀꽃의 설법 / 영을 받은 무당 / 나목의 시 / 가시고기 아비의 사랑 / 시인이여 너는 / 풍장 / 산의 속살 / 연꽃 (3) / 겨울나무 / 까치집 / 강을 건너는 법
제2부 사랑을 위한 서시
쑥꾹새 울음 / 신(神)이 내려주는 언어 / 갈대 / 분수를 보며 / 목화꽃 누님 / 연꽃 (2) / 섬 (1) / 섬 (4) / 사랑을 위한 서시 / 삼례의 장날 / 네 가슴속에는 / 겨울풀 / 죽지 부러진 새처럼 (2) / 바람 / 겨울의 말 / 나의 시(詩) / 여든 살이 넘으면 / 국화꽃을 보며 / 모닥불 / 푸나무들과 노인 / 세월호에서의 편지 / 장미의 순간
제3부 달이 흐르는 강물처럼
나비 / 풍경 / 마이산의 안개 / 과수원에서의 환상 / 달이 흐르는 강물처럼 / 몽유록 (8) / 몽유록 (9) / 흔들리는 꽃 (6) / 늦게 피는 꽃 / 삶의 향기 / 손 / 매미의 울음 (1) / 매미의 울음 (2) / 신록의 푸르름 위에 / 저 늙은 소(牛)는 / 아, 전라도여 / 연꽃 (1) / 가을의 시 / 머나먼 그 집 / 노인과 나무 / 늙어가는 법
제4부 꽃과 나비
달밤 / 저 붉은 일몰의 순간처럼 / 하늘 아래 첫 동네 / 소쩍새 울음 / 저녁놀 앞에 서 있을 때 / ‘어머니’라는 이름 / 우레 소리 / 다시 장강(長江)처럼 / 낮은 목소리로 / 흔들리는 꽃 (3) / 라일락 꽃 / 삶 / 섬 (5) / 바람 시편 / 꽃과 나비 / 북한 여자에게 / 요정 / 저 붉은 낙조처럼 / <염쟁이 유씨>라는 연극을 보고 / 겨울 하늘
■ 작품 세계
현자의 세계에 이르러 _ 홍기삼
우리 가슴에 향기처럼 오래 남아 _ 허영자
담담함, 혹은 허허로움 _ 장석주
「신의 언어」가 가장 좋아 _ 中村日哲
인간애와 민족애를 느껴 _ 津田 眞理子
너무 기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읽어 _ 川本京子
여든 무렵 자유인이 영원을 노래하다 _ 진정구
■ 작가 연보
■ '시인의 말' 중에서
내가 어느덧 여든다섯 살이 되었다. 옛날로 치면 극노인에 해당되는 나이지만, 이날까지 돈도 안 되는 이런 일을 하며 여기까지 왔다.
대학에서 30년 동안 현대시론 강의를 했다지만, 그런 강의가 곧 시작(詩作)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론이 강하다 해서 곧 수작(秀作)이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튼 더 늦기 전에 그간 나온 10권의 시집 중에서 85편을 골라보았다. 알곡인지 겉보리인지는 모르지만, 나이에 맞춰 추려봤을 뿐이다.
이 시집의 어느 한 구절이라도 독자들의 가슴속에 풍금 소리처럼 남아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 작품 세계
송하선의 시는 어떤 격정도 낮은 목소리로 잠재우면서 그것을 순결한 서정의 세계로 치환하는 부드러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서정은 이승에서 저승에 걸쳐 존재하는 생명의 논리를 토대로 하며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시인의 외부를 온통 내부로 불러들이는 서정적 자아화의 과정이 그래서 더욱 그 깊이를 획득한다.
그의 시는 특히 생명파 시인들의 계보를 진지하게 계승하면서 그것을 한 단계 더 세련시킨 것으로 판명된다.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개안, 삶에 대한 통찰과 관용의 정신, 깊고 그윽한 명상과 관조를 통해 이 시인은 마침내 자연과 삶과 죽음을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현자(賢者)의 세계에 이르러 있음을 넉넉하게 알려주고 있다.
- 홍기삼(문학평론가·전 동국대 총장)
송하선 선생의 시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사물을 이해하고 노래하는 시이다. 현실에 대한 민감한 반응, 예리한 관찰과 비판, 불의와 부정을 고발하고 저항하는 개결한 정신의 발로가 시 또는 시인의 한 역할일 수 있다면, 애정과 연민 동정과 포용으로 인간과 사물을 바라보고 긍정하는 자세 또한 중요한 한 기능일 수 있겠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시선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시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한다.
송하선 선생의 작품에서는 시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아름다운 정서를 만날 수 있으며, 인간과 사물을 관조하는 따사롭고도 맑은 눈을 또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이 주는 공감과 감동력을 우리 가슴에 향기처럼 오래 남아 있으리라 믿는다.
- 허영자(시인·현 성신여대 명예교수)
■ 시집 속으로
유리벽
할머니가 입원하신 요양원에는
유리벽이 있어요.
손과 손을 유리벽에 대고
사랑의 말을 전하려 해도
애타게 애타게 할머니를 불러도,
귀가 먹먹해 서로의 말이
서로의 사랑이 전달되지 않네요.
주름살이 지고 백발이신 할머니는
오늘은 유난히 어린아이처럼
웃고 계시네요.
코로나라는 몹쓸 병 때문에
만나지도 못하고
유리벽을 두들기며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해봐도,
이승에서 하는 말이지만
마치 저승에서의 말인 것처럼
할머니의 말은
먹먹하게 먹먹하게 들리지 않네요.
싸락눈
탄생과 사멸의 순간을 상징하듯
싸락눈이 유리창에 부딪히며
부딪히며 사라져버리는구나.
사랑과 이별의 순간을 상징하듯
싸락눈이 허공 속을 유랑하며
유랑하며 흩어져버리는구나.
아아 사라지는 것은 사라지는 것
저렇게 유랑하며 이별하며
허공 속으로 흩어지는 것,
때로는 지나간 불꽃의 순간을
생각나게 하는 것,
오늘은 싸락눈 날리는 걸 보며
지나간 불꽃을 생각하는 시간
천둥과 먹구름을 넘어
그대와 내가 해탈해야 할 시간.
국화꽃을 보며
내가 국화꽃을 좋아하는 것은
서리를 이겨내는 고결한 그 기품,
맑고도 깨끗한 그 품격 때문이다.
천둥과 벼락, 무서리와 비바람
그 많은 계절의 순환 속에서도
유독 가을날의 국화를 좋아하는 것은
어머님의 그 기품과 닮았기 때문이다.
아아, 나의 어머님, 우리들의 어머님,
단군할아버지 적부터 내려온 흰 옷
낭자를 올리셨던 우리들의 어머님.
내가 국화꽃을 좋아하는 것은
한평생 인고의 세월을 살으신
어머님이 국화를 닮았기 때문이다.
봄날과 여름날, 가을날과 겨울날
그 많은 꽃들이 피고 지고 하지만
유독 가을날의 국화를 좋아하는 것은
국화꽃이 어머님을 닮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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