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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강원도민일보] <2020 푸른사상 겨울호>, 맹문재 <사북 골목에서>

by 푸른사상 2021. 1. 29.

문학이 40년 전 사북을 기억하는 방식

사북항쟁 관련 도서 출판 잇따라
문예지 사북항쟁 특집호 마련 등
탄광지역 출신 작가 대거 참여
탄광촌 삶 주제로 시집 발간도
“노동문학의 역할 여전히 필요”

불을 캐려면 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가야만 했다.한국 산업사의 뿌리를 지탱하는 곳이지만 생활은 열악했다.‘막장’이라고 불린 탄광에서는 1970∼80년대 연 평균 2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이런 가운데 1980년 4월 국내 최대 민영 탄광업체인 정선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일어난 ‘사북항쟁’은 광부들의 열악한 현실을 전국적으로 알리며 노동운동사에 획을 그었다.광원과 가족 등 6000여 명이 어용노조 퇴진과 임금인상을 요구했으나 당시 정부는 광부난동사건으로 규정,탄광촌 이미지는 과격세력으로 낙인찍혔다.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단은 81명을 폭도로 몰아 구속했고 항쟁 지도부 이원갑 등 7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하지만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아직 없다.사북항쟁 40주년을 맞았던 지난 해 한국문단과 강원문단은 그들의 삶을 다시 캐는 작업을 활발히 진행했고,그 결과물들이 올 초 들어 쏟아지고 있다.탄광촌의 현재진행형 아픔을 문학으로 담은 책들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푸른사상 겨울호


작가들에게도 탄광촌은 중요한 문학적 장소다.가장 소외돼 있음에도 땅 속 깊은 곳에서 희망을 찾아 검은 알갱이를 캐내는 삶은 노동자 소외 문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탄광문학’은 작가의 출신지를 뛰어넘어 지역의 공통적 담론을 이끌어내고 정서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출판사 푸른사상은 2020년 겨울호를 사북항쟁 40주년 특집호로 마련했다.이 문예지에는 탄광지역 출신 작가인 정일남,정연수,최승익,성희직,김영희 시인을 비롯해 이상국,서안나 등 시인 22명이 쓴 사북항쟁 관련 시가 실렸다.고형렬 시인은 시 ‘두문동재’에서 “살자고 들어온 광산촌을/이부처남은 죽어서 떠났다”고,최승호 시인은 시 ‘1980년,4월’에서 “증오와 증오의 투석이다”라고 표현한다.정연수 시인은‘사북항쟁 40년 탄광시의 양상과 의의’라는 평론을 통해 탄광시의 역사와 함께 문학이 탄광촌에 주목하는 이유를 설명한다.정 시인은 “노동이라는 동일 어휘속에 ‘진짜 노동자’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말았다”며 “진짜 노동자가 길 잃은 시대,어용노조 타도를 외치던 4월 사북항쟁은 4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우리는 여전히 폭도다!’라는 제목으로 강기희 소설가와 사북항쟁 당시 중심에 있었던 이원갑,신경,윤병천,최돈혁 씨와의 대담이 실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다.1980년 노조 지부장 직무대리를 맡았던 신경씨 증언에 따르면 정선군수,경찰서장,중앙정보부 조정관 등이 ‘노조 지부장 선거는 없다’고 훼방을 놓았다고 한다.윤병천 씨는 “사북이 광주가 될 뻔했지만 우리가 살아남은 건 다이너마이트와 화약고 때문이었다”며 긴박했던 상황을 생생히 묘사했다.최돈혁 씨는 “그때 막장에서 함께 굴진하던 친구들이 진폐·규폐로 죽어가는 것 보면 속절없구나 그랬지요.그 친구들 결국 ‘폭도’라는 이름으로 죽어간 거잖아요”라며 명예회복을 시켜주지 못한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을 전했다.



■ 맹문재,‘사북 골목에서’


맹문재 시인의 ‘사북 골목에서’는 광부와 탄광촌 주민에게 바치는 헌사들이 실려있다.사북 광부의 아들인 맹 시인은 탄광촌의 역사와 삶을 시적 구성으로 펼치며 현장감 있는 시어들을 발굴해 냈다.시인에게 ‘사북’은 “광부 아버지의 장화 발자국이 깊어/해석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다.또 “폭죽처럼 터지는 카지노의 불빛도/골목을 밝혀주지 못한다”고도 말하며 사북에 새겨진 탄가루와 어둠을 짙게 그려 나간다.시 ‘광산촌의 먹이사슬은’ 하청 탄광의 하청 노동자를 생산자,하청 탄광을 1차 포식차,직영 탄광을 2차 포식차,광업진흥공사·검찰·경찰 등을 최종 포식자로 언급하며 사북 광부들의 처절했던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그럼에도 시인은 전태일 목소리를 생각하며 기적을 꿈꾼다.그 길은 “불을 켰지만 아픈 길”이고 “온몸에 바늘을 꽂으며/바다같은 사랑의 싹을 틔운 길”일 것처럼 여겨진다.

맹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농부였던 아버지께서 한때 사북에 계셨다.중고등학교 방학 때 몇 번 찾아뵌 것이 전부였다.그렇지만 새카만 장화며 도랑물이며 질척이는 골목을 잊지 못한다.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맹 시인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부마항쟁과 5·18광주항쟁 사이에 있는 민주항쟁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해야 한다.진상규명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사북항쟁은 단순한 노노갈등이 아니라 기업주의 횡포로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광부들의 생존권 요구를 공권력이 탄압한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사건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어 “노동문학을 지난 시대의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보수 언론과 역사의식이 약한 문인들의 주장”이라며 “노동자들의 삶의 가치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노동문학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원도민일보, "문학이 40년 전 사북을 기억하는 방식", 김진형 기자, 2021.1.29

링크 : 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058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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