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북항쟁 40주년 기리는 맹문재 시집 “사북 골목에서”
거듭 불거지는 노동자 인권 문제, 이 시대 노동문학의 중요성
최근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둘러싸고 각계의 논쟁이 거듭되고 있다. 기업 내 관리 체계 부재 등으로 중대 재해 발생 시 경영자 처벌을 강화하는 해당 법안은 여러 유예 규정과 함께 통과되어 ‘보완입법’을 요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희생 이후 약 50년, 우리는 아직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사회와 노동을 이야기하는 문학은 여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 중요한 국가 산업을 책임졌던 광산노동자들의 가슴 아픈 역사를 기리는 시집이 발간됐다. 꾸준히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높여온 맹문재 시인의 시집 “사북 골복에서”는 우리 역사 속 옅어진 사북항쟁과 광산노동자, 진폐재해자들을 조망한다.
Q. 지난해 말 사북항쟁 40주년을 맞이해 시집 『사북 골목에서』를 출간하셨습니다. 백무산 시인과 함께 전태일 열사 50주기 기념 시집 『전태일은 살아 있다』를 엮기도 하셨는데요. 여러 모로 바쁜 연말을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2021년의 시작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올해는 김수영 시인 탄생 100년이 되는 해여서 이와 관련된 일을 집중적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푸른사상』 봄호를 김수영 시인 특집으로 꾸미고 있고, 그동안 김현경 여사님과 나누었던 대담을 단행본으로 간행하려고 해요. 기념 산문집도 간행하고, 번역서도 간행하고…….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기획하고 있는데, 제가 소장하고 있는 김수영 시인 자료 전시회도 갖고 싶네요.
Q. 시인의 말을 통해 시집 『사북 골목에서』는 오래전부터 내고 싶으셨던 책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편집주간으로 계시는 계간 『푸른사상』 겨울호 역시 사북항쟁 40주년을 특집으로 담았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북항쟁에 대해 특히 관심을 갖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으실까요?
무엇보다 당시의 계엄사령부 군인들이 아무 죄도 없는 광부들을 잔인하게 짓밟았기 때문에 그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싶었어요. 광부들은 ‘빨갱이’로 몰려 폭행과 고문을 당해 이빨이 부러지고 고막이 터지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적 학대를 당했지요.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사북항쟁은 단순한 노노갈등이 아니라 기업주의 횡포로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광부들이 생존권 요구를 공권력이 탄압한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사건이기에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어요. 부마항쟁과 5·18광주항쟁 사이에 있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이지요.
Q. 시집 1부의 첫 세 시작품이 인상 깊습니다. 사북에 대한 짧은 시편과 단식 농성, 진폐 재해자들의 어려운 처지 등이 드러나 있는데요. 시집 구성에서 특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북항쟁 40주년 기념시집’이라는 문구를 새기고 간행한 것이어서 독자들이 투쟁 구호에 기운 시집이라는 선입견을 가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한 면이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부담을 줄 필요는 없지요. 그래서 독자들에게 친밀감을 주기 위해 시작품의 배치에 신경을 썼어요.
총 4부로 작품들을 배열했는데, 서정적인 작품들과 투쟁 구호가 있는 작품들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실었어요. 광부들의 일상, 진폐 재해자들의 아픔, 광부들의 투쟁 등 모든 면을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Q. 한국 산업사의 중요한 부분인 석탄산업사 속 광부들은 노동자 중에서도 더욱 열악한 환경에 놓여왔습니다. 80년대 노동 담론이 대두할 때조차 그들의 삶은 쉽게 수면 위로 다뤄지지 않았는데요. 그렇기에 오직 광부들의 이야기로만 책 한 권을 엮어낸 시집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나 기억에 남는 일은 없으셨나요?
이 세상의 어느 노동도 힘들지 않은 것은 없지만, 광부들의 작업과는 비교할 수 없지요. 광부로서 작품을 쓴 시인으로는 김태수, 박영희, 성희직, 이원규, 이청리, 정연수, 정일남, 최승익 등을 들 수 있지요.
광부 시인들의 수가 적은 데다가 워낙 특수한 상황이어서 지난 시대의 노동문학 담론이 풍성했던 때에도 광산시는 주목받지 못했지요. 1989년 석탄합리화 정책 이후 광산촌이 무너지면서 더욱 소외되고 있지요. 그렇지만 광산시는 노동문학의 전형이 될 만큼 의의를 지니고 있어요. 2007년에 일어났던 재가 진폐 재해자 생존 투쟁도 기록할 필요가 있고요.
그래서 제가 본격적으로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광부 생활을 한 것이 아니잖아요. 한때 아버님께서 사북에 계시어 광산촌과 연고가 있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지요. 그래서 현장성을 담아내는 것이 시를 쓰는 데 가장 어려웠어요. 몇 차례 사북을 갔고, 자료를 찾았고, 황인오 사북민주항쟁동지회 회장께 자문도 구했지요.
전태일을 외면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의 자리에 앉고 싶다
진폐 광부들의 손을 잡지 않는 언론에도
내 자리를 만들고 싶다
내가 낡은 구두를 악착같이 신고
며칠씩 옷을 갈아입지 않고
사투리 섞인 말투를 바꾸지 않는 것도
그 자리에 앉으려는 것이다
앉아 있는 좌석에서 당연히 일어서야 하는데
나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불법자 인가?
의적인가?
- 시 ‘입석 열차에서’ 전문
Q. 쉽게 주목받지 못하는 노동자 인권 문제에 대한 시인의 생각은 시 「입석 열차에서」를 통해 드러납니다. 이외에도 유독 마음에 남는 시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입석 열차에서」는 전태일 열사를 제재로 삼고 쓴 작품이에요. 원래는 작년이 전태일 열사 50주기여서 전태일과 관련된 작품으로 시집을 한 권 간행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열사를 기리는 행사가 워낙 많아서(그만큼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포기하고, 그 대신 사북항쟁 40년을 기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어요. 이번 시집에서는 아무래도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이 들어 있는 작품들이 관심이 가요. 표제작인 「사북 골목에서」가 그 한 편이겠지요.
Q. 석탄 산업 노동자 외에도 노동자들의 인권과 역사를 비추는 문학적 행보를 이어오셨습니다. 다섯 분의 저자와 전태일 50주기를 기리는 『아, 전태일』을 간행하시기도 하셨고요. 혹자는 참여문학, 노동문학 등을 지난 세대의 것으로 인식하곤 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도 열악한 환경 속에 놓인 노동자들이 많은데요. 2021년에 노동문학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21년 1월 7일 현재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를 위해 노동자들이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하는 모습만 봐도 노동문학의 필요성을 알 수 있지요. 노동문학을 지난 시대의 것으로 표명하는 것은 보수 언론과 역사의식이 약한 문인들의 주장이에요. 역사를 지우고 그 자리에 예술성이란 이름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고 있는데, 보수적인 거대 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합세해 마치 지배적인 흐름처럼 만들고 있지요.
지난 시대에 비해 자본주의 체제가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자들의 삶이 변한 만큼 나아진 것은 아니지요. 좀 더 인간 가치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노동문학의 역할이 여전히 있다고 생각해요.
Q. 2021년 역시 작년만큼이나 다사다난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예정된 계획이나 일정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매년 지속하고 있는 박인환 자료 발굴로 금년에는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을 발간하려고 해요. 이외에 평론집, 번역서 등 간행해야 할 책들이 많네요. 또한 친일문학상 폐지를 추구하는 민족문학연구회의 활동도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검찰 개혁, 언론 개혁, 노동 개혁 등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도 많네요. 그런데 이 모든 일도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야 가능하겠지요. 이 재앙이 얼른 극복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겠지요. 저의 시집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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