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산문)
코리아 블루
서종택 지음|푸른사상 산문선 35|128×188×14 mm|232쪽
16,000원|ISBN 979-11-308-1724-8 03810 | 2020.12.4
■ 도서 소개
시대의 이념과 가치의 불화에 관한 인문학적 사유
서종택 소설가(고려대 명예교수)의 세 번째 산문집 『코리아 블루』가 <푸른사상 산문선 35>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전 지구촌을 덮친 채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이어 한국 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또 다른 바이러스성 증후군을 ‘코리아 블루’로 진단한다. 저자는 우리 시대와 사회 및 문화를 둘러싸고 있는 이념의 대립과 가치의 불화에 관해 인문학적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 작가 소개
서종택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홍익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소설론, 창작론 교수를 역임하였다. 연구서로 『한국 현대소설사론』 『변시지』 『새로 읽는 오늘의 우리 문학』 『한국 근대소설의 구조』 등이, 창작집으로 『갈등의 힘』 『원무』 『풍경과 시간』 『백치의 여름』 『선주하평전』 『외출』 등이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이다.
■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꽃비로 오는 4월 / 종전 없는 평화 / 당신의 그때 / 어떤 일본인 / 미국과 미군 / 사람의 덫 / 정치와 유머 / 도라산의 철길 / 도보다리의 마임극 / 판문점, 역사의 개그 / 6월의 약속 / 이토록 슬픈 평화 / 보여주는 삶 / 고도는 오지 않는다 / 축제와 정치 / 슬픔의 용량
제2부
「미운 우리 새끼」 / 또 하나의 촛불 ‘미투’ / 모방의 논리 / 절필의 윤리 / 캠퍼스 속의 유목민 / 스마트폰 속의 인문학 / 잊힐 권리 / 귀뚜라미의 노래 / 다시 읽는 임꺽정 / 복면의 두 얼굴 / 싱크홀 / 술 권하는 사회 / 『친일행적사전』
제3부
탈속의 삶과 예술적 존엄 / 상처의 옹호 / 재현과 표현 / 예술과 풍토 / 우리의 이 가을을 / 이다음 우리는 / 조치원 / 문학사의 그늘 / 밤배 고동 소리로 오는 / 쑥스러움 혹은 / 강요된 기억 / 오래된 신인 / 풍문의 아버지 / 조서
■ 출판사 리뷰
오늘날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19의 창궐로 전 세계는 우울의 심연에 갇혀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를 격리와 단절로 내몰고 있고, 모든 사회와 문화적 요소들은 통제되지 않는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 지구촌을 덮친 코로나바이러스에 이어 우리 한국 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또 다른 바이러스성 증후군이 ‘코리아 블루’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우울한 초상화라 하겠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 사회와 문화에 스며든 코로나적 증후군에 관한 검진 기록이다.
서종택 산문집 ?코리아 블루?는 한국 사회의 시사적·문화적 쟁점에서부터 저자의 내밀한 정서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우울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담았다. 시대의 이념과 가치의 불화에 관한 정치의 비루함이나 일상의 세속화에서 대한 혐오는, 문화란 결국 세련되지 못한 것들과의 싸움이라는 저자의 일관된 태도의 반영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35년간의 식민 상황과 분단 75년으로 정리되고 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분단 현실은 수차례의 남북, 북미회담 등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 사회를 불 밝힌 현대의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격동치는 사회변동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지적하듯, 분단의식은 통합의 정신으로 이행되어야 하고, 불구적 상황에 대한 극복 의지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수상한 시절, 위기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를 자가진단해야 할 시대가 도래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바이러스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신체적 거리는 사회적 거리를 만들고 사회적 거리는 우리를 격리와 단절로 내몰고 있다. 광화문의 촛불이 혁명으로 타오른 지 3년, 그러나 지금의 우리 사회는 다시 불신과 반목으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 블루’가 지구촌을 덮치고 있으며, 방역 선진 코리아는 또 다른 정치 후진성 악성 코로나에 깊은 우울에 빠져 있다.
이 책은 나의 세 번째 산문집이다. 『풍경과 시간』 『갈등의 힘』에 보이는 멜랑콜리나 비평적 언사는 다소 깊어졌고 볼메어졌다. 어느 시대이고 위기 아닌 때 없었으며 이 위기의식이야말로 사회통합이나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는 하지만 그 역설을 즐길 여유도 시간도 없어졌다.
한 어절의 은유를 위해 밤을 새우는 시인이나 하나의 메시지를 위해 백 줄의 허구를 만들어내는 소설가의 심미적 이상은 이제 사치가 되었는가. 이 책은 그러므로 비애의 용량도 상상력의 용량도 함께 줄어만 가는 나의 그동안의 우울한 날들의 기록이다.
■ 작품 속으로
촛불정국의 흥분을 가라앉힐 때이다. 당신은 그때 어디에 있었느냐고 추궁하기에 앞서 나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를 자문할 시간이다. 4·19의 환희가 5·16의 절망으로, 6·10항쟁이 군사정권의 연장으로 이어졌던 악몽들을 기억해야 한다. 개성과 실존, 개개인의 삶이 존중되지 않는 집단적 사고나 획일주의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일 뿐이다.
(26쪽, 「당신의 그때」)
마임극이기도 하고 무성 영화이기도 한 도보다리의 롱 테이크는 장면이 의미에 가담하는 아름다운 영상이었다. 풍경 속의 두 남자는 조금은 고즈넉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때 그들이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무슨 얘기를 하였는지를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2018년 봄 도보다리에서의 두 남자 이야기는 세월 흘러도 마임극으로 남겨둘 일이다. 길을 말하거나 이름을 명명하는 순간 그 길과 이름은 이미 우리에게서 더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모순되고 비현실적인 이 봄이 믿을 수 없이 즐겁고, 그림처럼 왔다가 음악처럼 흐르는 이 봄의 반란에 가슴 설렌다.
(51쪽, 「도보다리의 마임극」)
평화는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오직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평화는 지켜야 할 가치이면서 반드시 함께 누려야 할 복록이다. 승자 없는 평화를 주창하던 백 년 전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3·1운동의 사상적 배후였다. 70년 전의 백범의 모란봉 연설이나 오늘의 문 대통령의 능라도 연설 모두 하나된 민족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었다. ‘우리 민족끼리’는 낡은 명제이지만 아직 유효하다. 평화가 아니면 싸우지 않는다는 역설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모든 평화 지연 세력과 싸워야 한다.
(64쪽, 「이토록 슬픈 평화」)
개인이건 사회이건 모든 역사는 기록되어야 하지만, 개인적인 것과 집단적인 정보들은 가치에 따라 분류되고 제한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처방안일 것이다. 과거는 기록되어야 하 지만, 그것은 또한 선택된 것이지 않으면 안 된다. 빅데이터가 담고 있는 기억력은 경이롭지만, 망각의 능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인식은 중요하다. 공적인 기록은 보존되어야 하지만, 사적인 기록은 보호되어야 한다. 기억과 망각의 능력이 뒤바뀌어버린 디지털 세상에 사는 지금, 표현의 자유나 기록 보존에 대한 염원은 가끔 사치이다. 지워지지 않는 과거는 공포다. 이미지나 기록물이 편집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듯이, 우리들의 삶도 때로는 편집되지 않으면 안 될 때이다.
(111쪽, 「잊힐 권리」)
이름이란 자신의 이상을 담은 하나의 환상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름들이 추구하는 바의 가치일 것이다. 그들은 친일의 ‘행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지 친일의 ‘인명’을 대신하지는 않았다. 그들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할 것이 아니라 『친일행적사전』에 등재시켜야 한다. ‘친일’은 ‘인명’이 아니라 ‘행적’이어야 한다. 이는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 대한 용서도 아니요, 절충도 아니다. 의견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해야 하는 역사방법론의 반영일 뿐이다.
(139쪽. 「친일행적사전」)
한 지역의 바람과 흙은 거기에서 나서 자란 예술가에게 어떤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까.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피카소와 미로, 지중해의 습기와 향일성 식물의 알베르 카뮈, 그리고 제주의 변시지에게 그 흙과 바람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러나 변시지의 그림에 보이는 남국적 풍광의 제주도는 귀향인의 향토애도 자연에 대한 서정주의도 아닌 그 무엇이었다. 제주의 선과 빛과 형태는 그에게 있어 하나의 방법이요 이념으로 승화되었다. 그는 그곳의 선과 색채와 형태에서 그의 삶의 근원적인 고독이나 설화의 줄거리를 찾으려 한 것 같았다. 태양, 바다, 바람, 갈매기, 폭풍, 까마귀, 조랑말은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풍물의 대상으로서보다는 존재의 탐구를 위한 모티프로 차용된 것이었다. 그가 단순한 로컬리즘이나 풍물시의 작가로 불리는 것은 그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세상의 한기와 존재의 근원 상황을 형상화하는 데, 그러한 모티프들은 끊임없이 변형되고 삭제되고 추가된 것이다. 제주-오사카-도쿄-서울-제주로 이어지는 그의 예술의 구도적(求道的) 순례는 마침내 황톳빛으로 승화되었으며 그것은 이제 그의 사상이 되었다.
(168쪽, 「예술과 풍토」)
윤길중의 인체들이 불편하고 거북해 보이는 것은 매끄럽고 쉽고 편한 것들에 길들여진 오늘날 소비사회의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다. ‘매끄러운 것이 아름답다’는 명제는 갈등도 부정도, 고통도 저항도 없이 편안함에 기꺼이 가담하는 현대 대중 소비사회의 미학이다. 수많은 현대 대중예술의 영웅들은 순종과 긍정의 세계에서 잉태되고 탄생된다. 그러나 상처 없는 예술이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 상처는 그것을 치유하기보다는 함께 아파하기 위해 존재한다. 모든 진지한 예술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수많은 문학적·미학적 담론들-현상에 대한 부정과 갈등이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라는-은 우리에게 예술의 진정성과 만나는 통로를 보여준다.
(156쪽, 「상처의 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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