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이명윤 지음|푸른사상 시선 131|128×205×8 mm|132쪽|9,000원
ISBN 979-11-308-1696-8 03810 | 2020.8.17
■ 도서 소개
일상생활의 갈피에서 틔워내는 시편
이명윤 시인의 시집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이 <푸른사상 시선 131>로 출간되었다. 현실의 갈피갈피를 시의 눈으로 각색하는 시인에게 일상생활은 모든 시의 원천이다. 소외되고 그늘진 존재를 어루만지며 나직한 어조로 노래한 이 시집은 좋은 시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 시인 소개
이명윤
1968년 통영에서 태어났다. 출입구에 늘 갯바람이 들락거리던 미수2동사무소 근무 시절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하여 서른아홉이 되던 해인 2006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았고, 2007년 계간지 『시안』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으로 『수화기 속의 여자』가 있다. 현재 통영시청에서 집필 업무를 맡고 있다. (E-mail : dalsunee@korea.kr)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돌섬
돌섬 / 2015년 광도면민 체육대회 기념 / 감자 / 망개떡 / 선풍기 / 어머니의 그녀들 / 고드름 / 설날 / 고객 감사 한가위선물 세트 / 누룽지 / 당신의 골목 / 삐뚤삐뚤 아버지 / 처음처럼, 이라는 주문 / 욕지 일기 / 어느 날 문득 아내가 라일락 나무를 심자고 했다
제2부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새 / 목련이 피는 시간 / 서피랑 피아노계단 / 봄날 /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 서정적 보따리 / 조화 / 솔라버드 / 욕지도 출렁다리 / 시의 얼굴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질문 / 감기 / 엄마가 부르신다 / 주남저수지 / 쓸쓸함에 대하여
제3부 숟가락들
공터의 저녁 / 문병 / 시치미꽃 / 구름나라에 삽니다 / 의자들 / 아름다운 가족 / 충렬반점 최 통장 / 사무직 K씨 / 사월, 아주 길고 긴 노래 / 숟가락들 / 우주를 한 바퀴 도는 시간 / 운주사 깊은 잠 / 거룩한 사무직 / 보헤미안 랩소디
제4부 기다린다
공룡나라 휴게소 / 해변가의 돌들 / 홍어 / 좋아요 / 숨 / 내 친구 일요일 / 면사무소를 지나가는 택시의 말 / 그 국밥집의 손 / 통영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 시락국을 먹는다 / 면사무소의 힘 / 손님 / 귀신이 산다 / 꿈나라 / 기다린다
■ 작품 해설:일상의 비의를 퍼올리는 숟가락, 숟가락들 - 정우영
■ 시인의 말
고백건대,
사람에게 가는 길이
제일 멀고 힘들었다.
■ 작품 세계
이명윤은 철저하게 생활주의자이자 현실의 시인이다. 그에게 일상생활은 모든 시의 원천이자 모체이다. 그래서 그런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일상의 숱한 곡절들이 그에게로 와서 착실히 고인다. 일상을 시화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가 참신하게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익숙한 현실을 자신만의 프리즘으로 낯설고 새롭게 틔워낸다. 이와 같은 그의 시를 내 방식대로 정리하면 그는 ‘모던한 리얼’ 계열이다. 현실의 내밀한 본성을 세밀한 시의 눈으로 각색하는 시인인 것이다. 시「숟가락들」에 그의 이러한 특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하늘을 나는 숟가락이 있다 먼 길 뛰어가는 숟가락이 있고
숟가락을 들고 줄을 선 숟가락이 있고 자꾸만 숟가락을 뒤집어
보는 숟가락도 있다 그래봤자 숟가락인 숟가락
― 「숟가락들」 부분
현실의 ‘숟가락’을 ‘시’로 바꾸어 읽으면 이명윤이 꿈꾸는 시의 세계가 오롯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하늘을 나는 숟가락”은 ‘하늘을 나는 시’에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로, “숟가락을 뒤집어보는 숟가락”도 ‘시를 뒤집어보는 숟가락’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드물게도 현실의 비의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리얼리스트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그를, 범상을 뛰어넘는 ‘포월(包越)적 현실주의자’라 여긴다. 개펄이라는 현실을 품되 그 개펄을 뛰어넘으려 하는 자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침 없이 일상의 또 다른 본성들을 시화하는 그에게 광영 있기를.
― 정우영(시인)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이명윤은 날것 그대로를 보여준다. 마치 수제비를 뜨듯 일상의 한 부분을 뚝뚝 떼어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소외되고 그늘진 존재들을 어루만질 때에도 감정을 억누른 채 담담하게 진술한다. 그럼에도 시를 다 읽고 나면 가슴이 아려올 때가 많다. 그가 그려낸 사물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인물들은 생생하게 육박해 온다. 이상한 일이다. 그는 분명 나직한 목소리로 노래했을 뿐인데 가슴속에선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그의 담담한 진술 속엔 억누르는 슬픔 따위로 설명할 수 없는 여백과 잔상과 울림이 있다.
― 오봉옥(시인·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 시집 속으로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내 마음의 강가에 펄펄,
쓸쓸한 눈이 내린다는 말이다
유년의 강물 냄새에 흠뻑 젖고 싶다는 말이다
곱게 뻗은 국수도 아니고
구성진 웨이브의 라면도 아닌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나 오늘, 원초적이고 싶다는 말이다
너덜너덜해지고 싶다는 뜻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도시의 메뉴들
오늘만은 입맛의 진화를 멈추고
강가에 서고 싶다는 말이다
어디선가 날아와
귓가를 스치고
내 유년의 처마 끝에 다소곳이 앉는 말
엉겁결에 튀어나온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뇌리 속에 잊혀져가는 어머니의 손맛을
내 몸이 스스로 기억해낸 말이다
나 오늘, 속살까지 뜨거워지고 싶다는 뜻이다
오늘은 그냥, 수제비 어때,
입맛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당신, 오늘 외롭다는 말이다
진짜 배고프다는 뜻이다
숟가락들
우는 숟가락이 있다
숟가락이 왜 우냐고 묻는데 그만 숟가락을 놓는 숟가락이 있다 당신도 우는 숟가락이군요 가만히 입술을 만져주는 숟가락이 있다
숟가락을 씻으며 나는 가끔 너무나 닮은 숟가락들이 우스워진다 오목한 숟가락으로 태어나 평생이 숟가락인 숟가락들
숟가락 위에 앉은 지구가 돌면 숟가락 있을 자리 찾아가는 숟가락 숟가락이 무거워 고개 숙인 숟가락 숟가락을 철없이 던지는 숟가락 어질러진 숟가락을 차곡차곡 쓸어 담는 숟가락
하늘을 나는 숟가락이 있다 먼 길 뛰어가는 숟가락이 있고 숟가락을 들고 줄을 선 숟가락이 있고 자꾸만 숟가락을 뒤집어보는 숟가락도 있다 그래봤자 숟가락인 숟가락 숟가락에 얹힌 무게는 달라도 하루가 기울면 일제히 서로를 껴안는 숟가락통의 숟가락들,
숟가락을 세다가 고개를 떨구는 숟가락이 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숟가락이어서 미안하다는 숟가락이 있다 숟가락 위로 꽃잎이 툭툭 떨어지는 숟가락 울다가 웃는 숟가락이 있다
그 국밥집의 손
국밥집을 나오며 나는 그 뜨거운 국밥을 번개처럼 제 앞에 놓아주던 투박한 손을 생각합니다. 내 몸의 평화를 지키는 손입니다. 국밥집을 나오며 나는 오천 원을 내면 천 원을 다시 쥐여주는 때 묻은 손을 생각합니다. 내 지갑의 평화를 지키는 손입니다. 국밥집을 나오며 나는 다음 손님을 위하여 식탁을 제비처럼 훔치던 민첩한 손을 떠올립니다. 점심시간의 평화를 지키는 손입니다. 국밥집을 나오며 나는 일한 만큼만 버는 아주 지루한 손을 기억합니다.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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