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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간행도서

권보경 소설 <리만의 기하학>

by 푸른사상 2019. 10. 4.



분류--한국문학소설

리만의 기하학

권보경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23146×210×14 mm240

14,900ISBN 979-11-308-1462-9 03810 | 2019.10.1

 


■ 도서 소개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

 

권보경의 소설집 리만의 기하학<푸른사상 소설선 23>으로 출간되었다.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그들이 처한 현실 속 위기를 소설이라는 허구를 재창조함으로써 극복해 나가는데, 재창조된 소설은 작품 속 현실과 하나로 연결되며 무한 루프의 세상을 만들어 내는 탈근대 리얼리즘 소설이다. 경계 너머 새로운 차원에서 인물들이 겪는 신비하고 기이한 경험을 작가는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재현해 내고 있다.



■ 저자 소개


권보경 權寶卿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다. 2003년 봄, 첫 단편소설을 썼다. 2005년에 강산무진도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그 후 경북일보 문학대전에서 두 번 은상을 받았고, 2018년에는 ARKO 문학창작기금을 수상했다.

(E-mail : artistkbk@hanmail.net)

 


■ 목차 


작가의 말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리만의 기하학

초록 식탁과 빨간 의자와 고양이가 있는 정물화

승영(承影)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어

검선(劍仙)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야뇨

 

작품 해설탈근대의 리얼리스트 _ 김주선



■ 작품 해설


권보경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미스터리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건은 신비하거나 기이하다. 사건에 휩쓸린 작중 인물은 마치포의 그것처럼 비밀을 풀기 위해 최대한의 추리를 발휘한다. 하지만 이성은 무력하다. 이성의 역능인 분석, 추론, 종합은 19세기 추리소설에서 활약했던 탐정과는 달리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세상의 미스터리는 그만큼 더 혼잡하다. 덕분에 독자의 곤경은 인물의 곤경에 비례한다. 서술자와 초점화자가 같은 시선을 공유한다는 점은 이와 같은 곤혹스러움을 배가한다. 소설에서 할당해준 독자의 자리는 어디에서도 정답을 찾지 못해 방황해야만 하는 링반데룽의 자리다.

리만의 기하학을 먼저 보자. 주인공은 사채업자에게 빚을 져서 목숨을 위협받는 중이다. 앞이 막막한 주인공에게 오래전 알고 지낸 후배가 나타난다. 세월의 흐름에서 완전히 비껴간 듯 보이는 후배는 책 하나를 건네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책은 그곳에 쓰인 글을 그대로 실현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은 책을 노리는 사람에게 쫓기는 중이다. 의심 속에서 책을 읽은 주인공은 책의 신비한 능력이 진짜임을 알게 된다. 책의 문장들은 이미 그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후배에게 소유권을 넘겨받은 주인공은 책의 신비한 능력을 빌려 자신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다. 그러나 예정된 추심 시간은 책의 예언이 이루어질 시간보다 더 짧다. 그는 당장의 위기라도 벗어나기 위해 지금의 시간을 지속시키기로 한다. 여기서 소설 리만의 기하학도입부가 다시 작성되고, 지금까지 독자가 읽은 그의 상황은 그가 쓴 소설임이 밝혀진다. 소설과 현실이 연결된 소설 속의 소설은 이렇게 탄생한다. 소설 속의 상황은 현실과 소설이 뒤섞인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이 둘은 무한루프처럼 돌고 돈다.

권보경 세계에서 이야기는 힘이 세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현실에 힘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것은 소설의 정치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혹은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불투명함을 말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권보경 소설은 탈근대의 새로운 리얼리즘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 출판사 리뷰


권보경의 <리만의 기하학>은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두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새로운 차원이 만들어지는 탈근대 리얼리즘 소설이다. 이 세상이 실재하는 것인가, 혹은 누군가(조물주)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인가 하는 세상의 확실성에 대한 의문은, 근대에 이미 태동하여 이후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탈근대적 이념이다. 저자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신들이 겪고 있는 위기를 소설을 창조해서 극복하도록 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 속 인물들이 처한 현실이 현실인지 허구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이를테면 리만의 기하학의 주인공은 책에 쓰인 글이 그대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신비한 책을 이용하여 위기를 극복하기로 마음먹는다. 소설의 끝에서 도입부가 반복되며 독자들은 지금까지 읽어 왔던 소설이 실은 주인공이 이제 막 쓰기 시작한 소설임을 알게 된다. 또 친구의 연인과 내연 관계를 맺고 있는 주인공이, 자신의 연애 행각이 친구가 쓴 소설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을 보고, 자신이 친구가 쓰는 소설 속 인물이 아닐까, 의문을 품게 되는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도 비슷한 맥락이다. 주인공은 소설의 힘을 확인하기 위해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한편 검선(劍仙)강산무진도의 인물들은 불교적 깨달음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소설 속의 소설이라는 허구적 장치가 현실과 허구를 하나로 연결하는 이 미스터리한 작품을 통해 독자는 눈앞에 놓여 있는 현실이 실재하는 것인지, 이미지에 불과한 것인지 철학적인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어, 소설이 단순히 가상의 세계가 아니며, 이야기가 현실에 미치는 힘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책머리에 중에서

 

이 책에 들어갈 작품을 추려내기 위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글들을 모두 꺼내 보게 되었다. 문서함 안에는 완성된 작품과 쓰다 만 글들이 가나다순으로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완성된 작품들만 골라 하나씩 다시 읽는 동안 과거의 순간들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글을 쓰던 순간의 나 자신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의 목적도 잊은 채 내가 쓴 소설을 통해 과거의 나를 만나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다.

글을 쓰던 순간에는 나와는 상관없는, 가공의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제3자의 눈으로 되돌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소설 안에 그 글을 쓰던 당시의 내 모습이 부분적으로라도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소설에는 이전의 소설을 쓰던 나와 조금 달라진 모습의 내가 들어 있었다. 생래적으로 생의 에너지가 부족했던 내가 작품을 하나씩 완성해 나가면서 조금씩 내면의 힘과 여유를 찾아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된 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내 작품 속의 인물들과 고군분투하다 그렇게 된 측면이 더욱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상을 고통스럽게 느끼는 딱 그만큼, 내 인물들도 고통과 고난을 겪고 있었고, 내 인물들이 분투 끝에 곤경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나 또한 곤경을 극복하고 있었으니까. 소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 책 속으로

 

리만의 기하학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렀다. 이제 남은 시간은 한 시간, 시간이 정지된다면 모를까 더 이상 영감이 떠오르길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정지된다, 시간이…… 암전 상태의 머릿속에 불이 켜지듯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시간을 현재 이 시점에 묶어두고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이 허무맹랑한 상황이 더 부풀려지는 것을 막는 방법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베레조프스키와 박영한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가 겪은 현실을 바탕으로 나의 이야기를 쓰되 지금 이 순간에서 이야기를 멈추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상황과 시간을 무한의 고리 안에 가둬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나 또한 영원히 이 순간에 멈춘 채 시간의 고리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곧 김 실장의 소름 끼치는 전화 목소리가 떠올랐다. 나는 영원히 이 시간 안에 갇혀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애써 외면하며, 리만의 기하학의 비어있는 여백을 찾아 페이지를 넘겼다. 내가 글을 다 쓴 다음에도 리만의 기하학원본에 다른 이야기를 써 넣을 수 있는 여백이 남기를 간절히 바라며 펜을 찾아 들었다. 남은 여백에 써 넣을 새로운 이야기는 박영한과 내가 시간의 무한 고리에서 빠져나가는 내용이 될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펜을 놀려 리만의 기하학여백에 글을 써 넣기 시작했다.

(62~63)

 

허둥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논리적이면서도 기이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내가 만약 김사강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고, 주랑과 나의 만남이 김사강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소설을 위한 구상이었다고 가정한다면, 김사강의 소설은 그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고스란히 재현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이 논리에 의한다면 그녀에게 가는 길이 사라지고 주랑의 존재가 완벽하게 사라진 것도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됐다. 김사강은 나와 주랑이 등장하는 소설을 더 이상 쓰고 싶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나의 생각들을 K 박사에게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소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를 새롭게 다시 쓰기로 작정했다. 소설을 씀으로써 내 앞에서 사라져간 것들이 되돌아오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하나둘 문장을 써내려갔다.

(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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