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문학, 소설
길
주요섭 지음|정정호 엮음|153×224×22 mm|372쪽
27,000원|ISBN 979-11-308-1463-6 03810 | 2019.9.30
■ 도서 소개
6·25전쟁, 그 역사의 현장으로
주요섭의 장편소설 『길』이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작가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6·25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증언하였다. 정부의 말만 듣고 피난 시기를 놓쳐 서울에 잔류하게 된 한 가족이 1950년 6월 25일부터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기까지 공산치하에서 체험한 고난에 찬 일상을 생생히 담아내며 전쟁으로 인한 시대적 아픔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 저자 소개
주요섭(朱耀燮, 1902~1972)
소설가. 호는 여심(餘心). 평양 출신. 시인 주요한(朱耀翰)의 아우이다. 평양에서 성장하였다. 평양의 숭덕소학교, 중국 쑤저우 안세이중학, 상하이 후장대학 부속중학교를 거쳐 후장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였다. 미국으로 유학하여 스탠퍼드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중국의 베이징 푸렌대학, 경희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국제PEN 한국본부 회장을 역임. 1921년 단편소설 「추운 밤」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인력거군」 「사랑 손님과 어머니」 등 40편 가량의 단편소설을 비롯하여 「구름을 잡으려고」와 「길」(1953) 등 4편의 장편소설과 2편의 중편소설, 「김유신(Kim Yu-Shin)」(1947)과 「흰 수탉의 숲(The Forest of the White Cock) 」(1962) 등의 영문 소설을 남겼다.
■ 엮은이 소개
정정호(鄭正浩)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및 같은 대학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밀워키)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영어영문학회장, 국제비교문학회(ICLA)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 『영미문학비평론』 『비교세계문학론』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현대문학이론』 『헤럴드 블룸 클래식』 등이 있다. 현재 문학비평가,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국제PEN 한국본부 번역원장.
■ 출판사 리뷰
주요섭의 장편소설 『길』은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리얼하게 그려낸 다큐 소설이다. 전쟁이 터진 시점부터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서울을 수복하기까지 95일간의 과정을 피난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은 한 “낙오자” 가족의 일상을 통해 보여준다. 주인공 ‘최정학’을 중심으로 그 주변인물들이 북한군 점령 기간 서울에서 겪은 경험은 전쟁의 실상과 민족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증언한다.
작가 주요섭 또한 당시 서울에 잔류한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직접 보고 들은 현장의 모습을 충실하게 이 소설에 기록했다. 정치·외교·군사 등의 거시적 차원의 문제보다는 당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증언한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의 발발과 서울 점령부터 수복까지, 한국전쟁의 가장 극적인 시간 중 하나인 그 기간에 서울에 남아 공산 치하를 살아야 했던 민간인들의 고난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이 소설은 특별하다.
전쟁 후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휴전국가이다. 최근 여러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며 종전과 평화를 위한 물꼬를 트고 있지만, 아직 한반도는 이념의 대립과 갈등의 골이 깊은 곳이다.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도 점점 사라지고 있고 젊은 세대에게 6·25은 지나간 역사일 뿐이다.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전쟁과 평화, 민족의 운명, 그리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공감의 깊이를 더해주기를 기대한다.
■ 책머리에 중에서
『길』은 소설가 주요섭의 6·25전쟁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다. 서울에 흩어져 살았던 한 대가족이 1950년 6월 25일부터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이 될 때까지 95일간의 공산군 치하의 일상적 삶을 그린 역사소설이다. 주요섭 자신은 당시 이승만 정부의 말만 믿고 남쪽으로 피난가지 못하고 서울에 잔류한 ‘낙오자’였다. 그는 인민군에 발견되어 남북되거나 의용군에 끌려가거나 북한 지방으로 소위 ‘전출’되지 않기 위해 집 뒤뜰에 토굴을 파서 서울 수복까지 그곳에서 숨어 살아남았다. 따라서 이 다큐멘터리 소설은 정부 공식문서나 통계에서는 볼 수 없는 미시사(微視史) 다시 말해 전쟁을 직접 겪은 일반 민간인들의 ‘작은 이야기’이다. 지금은 역사에서 서서히 ‘잊어진 전쟁’이 되어가고 있는 단군 이래 최악의 민족상잔의 충실한 기록인 장편소설 『길』은 6·25전쟁을 모르는 젊은 세대를 위해서도 반드시 읽혀야 할 필독 역사소설이 되어야 할 것이다.
6·25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세대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그 후속 세대들은 6·25전쟁을 하나의 담론의 차원에서 논의하게 되고 6·25전쟁 담론에 나타나는 다양한 해석들의 차이로 인해 우리 민족사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6·25전쟁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서서히 묻혀져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처참한 전쟁의 역사를 망각한 민족이 되어서는 안 된다. 6·25전쟁은 외국에서는 ‘한국전쟁’으로 불리지마는 사실은 제3차 세계대전이나 다름없었다. 미국, 영국 등 자유민족 진영과 소련(러시아), 중국 등 공산사회 진영이 수십개국이 한반도에 총 출동한 세계전쟁이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현 상황은 여러 가지 종전과 평화구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6·25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이다. 이렇게 볼 때 남한과 북한의 2개의 국가는 아직도 정상국가라기보다 분단된 ‘비정상국가’이다. 우리는 주요섭의 장편소설 『길』을 통해 앞으로 한반도의 ‘길’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깊이 사유해보아야 할 것이다.
추천사
주요섭은 진폭이 큰 작가이다. 이 ‘큰 작가’를 대표작의 울타리에서 풀어주어야 한다. 이는 문학을 다루는 이들의 책무이다. 주요섭은 「사랑 손님과 어머니」라는 대표작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 「인력거꾼」 「살인」등 단편도 대표작의 또 다른 울타리이다. 작가를 대표작의 울타리에서 풀어주기 위해서는 ‘전집’을 기획해야 한다. 전집은 어느 작가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의욕과 문학적 사명을 반영한다. 현실여건을 넘어서는 출판의 사명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번에 내는 장편소설 선집은 작가 주요섭을 전체적으로 다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큰 작가’는 한두 마디로 규정되기를 스스로 거부한다. 주요섭은 지극한 섬세성과 광대한 전망을 동시에 포괄하는 작가정신을 실천한 작가이다. 전체성에 대한 욕구 그 자체가 소설의 본령이다. 주요섭은 단편을 통해 인간 심성을 섬세하게 드러냈고, 『구름을 잡으려고』, 『일억오천만 대 일』, 『망국노 군상』, 『길』 등 장편소설을 통해서는 시대의 풍정과 전망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이 책이 주요섭 이해와 연구의 바탕이 될 것은 물론, 작가의 소설사적 위상을 드높이는 도약대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한용(소설가, 서울대 명예교수)
■ 책 속으로
한 동안 쉴 새 없이 들이밀리는 부상병 취급에만 정신이 팔리어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한 일반 환자 병실을 순회하고 난 정헌이는 사무실로 돌아와 앉았다.
라디오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군가소리도 신경을 자극 하거니와 가끔 가다가 부상병이 아품을 못이겨 황소처럼 엉엉 웨치는 소리가 들려올 때에는 몸에 소름이 끼치고 간헐적으로 은은히 들려오는 포소리에도 가슴이 섬쩍섬쩍하여 공포심이라기보다도 질망감이 부지불식간에 전 신경을 좀먹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가 다 제각기 제 생각에 골몰하여 누구 하나 수작을 건네는 사람이 없는데 이비인후과 과장 대머리 의사가 그의 마도로스 파이프를 책상 구통이에 똑똑똑 뚜드리는 소리에도 모두가 필요 이상으로 놀라서 욕설을 막 퍼부은 사람도 있고 허허허허 하고 히스테릭하게 웃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 간호원 하나이머리를 쑥 들이더니,
“시체 보관실이 꽉 차버렷는데 새로 죽는 환자는 어떻게 할가요?”
하고 물으니 외과 과장이,
“당분간 신입 환자가 없으니 그냥 제자리에 두어두지오. 어떻게 하오! 설마 하루밤에 썩을라구.”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비로 이때 귀청을 찢는 듯하는 땅! 소리와 함께 창문들이 와들와들 떨고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부글부글 끌어오르는 것 같았다.
방안은 상당히 무더운데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몸을 모두 부르르 떨었다.
남자 간호원 하나이, 아니 정국이가 머리를 쑥 들이밀더니,
“괴뢰군이 창동 여촌을 이미 돌파하여서 서울 함락은 시간문제이랍니다.”
하고 반갑지 않은 보고를 하고 갔다.
(61~62쪽)
전 하늘이 시뻘건 불꽃에 뒤더피어 하늘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는 광경을 넋을 잃고 서서 바라다보던 정학이는,
“욍”하는 소리를 듣자 질겁을하여 방공호 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갔다.
“외욍꽝” “외욍꽝” 하는 소리뿐이 아니라 따따따따 하는 기관총 소리가 들리어 오게 되자 욱진이는 그냥 마루에서 주무시고 있는 어머니 안위가 염려되어 방공호 밖으로 나섰더니 더운 김이 그의 언굴에 확 끼치었다.
“에키, 불!”
하고 그는 부지중 소리를 버럭 질렀다.
욱진이는 마루로 뛰어올라가서 어머니를 질질 끌다싶이 하여 뜰 아래로 모시어놓고는 날쌔게 방공호로 달려가서 ‘다다미’를 번쩍 들어 내동댕이치고,
“야들아, 불이다, 불 엽집까지 불이 당기었다. 나오너라. 모두들, 어서어서.”
하고 소리질렀다.
정학이는 자는 아이들을 때려 깨워 일으켜서 하나씩 안아 내놓으면 욱진이는 방공호 지붕에 던 담요와 이불을 벗겨 머리에 씨워주면서,
“이건 그대루 쓰구 길로 나가거라. 사직 공원으로 가라.”
하고 말하였다.
순덕이는 애기를 둘러업고 방공호 밖으로 나서면서 머리 위에 이불이 씨워져서 한 팔로 애기를 업고 한팔로는 이불을 머리 위으로 들고 허둥지둥 대문 밖을 나섰다.
행길에는 사람들이 모두 이불을 쓰고 허둥지둥하기 때문에 그는 이리 치우고 저리 치우다가 문득 등 뒤가 허수룩해지는 것을 느끼자,
“아, 애기!”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이불을 던져버리었다.
사방에서 붙는 불 때문에 길은 밝았으나 뒤를 돌아다보니 애기는 사람들 발에 짓밟힛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 애기야, 애기야”
하고 울부짖으면서 어쩔 줄을 모르고 발을 동동 굴고 있노라니 저쪽 옆에서 누가 머리에 던 이불을 훌떡 벗기면서 순덕이쪽을 보는데 그는 정환이었고 그의 목에 애기가 목말을 타고 있는 것이 보이는 듯하자 금시 이불이 애기 몸을 도로 가리웠다.
(328~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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