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문학, 소설
구름을 잡으려고
주요섭 지음|정정호 엮음|153×224×22 mm|436쪽
29,000원|ISBN 979-11-308-1464-3 03810 | 2019.9.30
■ 도서 소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조선인 디아스포라
주요섭의 장편소설 『구름을 잡으려고』가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작가가 유학 시절 경험한 미국 서부 문화, 역사, 지리를 바탕으로 조선 말기 이주 노동자의 삶을 소설화했다. 돈을 벌고자 이주한 미국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당대 미국 서부 조선 이주민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 저자 소개
주요섭(朱耀燮, 1902~1972)
소설가. 호는 여심(餘心). 평양 출신. 시인 주요한(朱耀翰)의 아우이다. 평양에서 성장하였다. 평양의 숭덕소학교, 중국 쑤저우 안세이중학, 상하이 후장대학 부속중학교를 거쳐 후장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였다. 미국으로 유학하여 스탠퍼드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중국의 베이징 푸렌대학, 경희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국제PEN 한국본부 회장을 역임. 1921년 단편소설 「추운 밤」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인력거군」 「사랑손님과 어머니」 등 40편 가량의 단편소설을 비롯하여 「구름을 잡으려고」와 「길」(1953) 등 4편의 장편소설과 2편의 중편소설, 「김유신(Kim Yu Shin)」(1947)과 「흰 수탉의 숲(The Forest of the White Cock)」(1962) 등의 영문 소설을 남겼다.
■ 엮은이 소개
정정호(鄭正浩)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및 같은 대학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밀워키)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영어영문학회장, 국제비교문학회(ICLA)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 『영미문학비평론』 『비교세계문학론』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현대문학이론』 『헤럴드 블룸 클래식』 등이 있다. 현재 문학비평가,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국제PEN 한국본부 번역원장.
■ 출판사 리뷰
주요섭의 장편소설 『구름을 잡으려고』는 20세기 초 미국 서부 조선 이주민의 삶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일종의 다큐멘터리 소설이다. 작가는 스탠퍼드대학 유학 시절 접했던 미국 서부 사회와 교포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당대 조선 이주민의 삶을 재현했다. 『동아일보』에 연재한 바 있으며, 작가 스스로 이 소설을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편소설로 꼽았다.
주인공 ‘박준식’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꿈꾸던 노총각으로서, 미국에 가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물포를 출발하는 배에 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허황된 꿈이었을 뿐, 준식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멕시코에서의 노예노동이었고, 그곳을 탈출하여 도착한 미국에서도 노동력 착취와 인종차별에 시달린다. 작가는 주인공의 인생역정을 통해 미국의 초기 자본주의와 사회제도의 모순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식은 아들 ‘찜미’만큼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결국 교통사고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소설의 제목인 ‘구름을 잡으려고’는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처럼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일제강점기 미국 사회의 조선 이주민들의 허무한 삶을 반영한다. 또한 이 소설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노동인력으로서 미국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의 초기 이민 생활사와 조선인의 눈에 비친 멕시코, 인디언, 미국 서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 책머리에 중에서
장편소설 『구름을 잡으려고』는 1973년 한국문학전집 제10권으로 「사랑손님과 어머니」 등 다른 몇몇 단편들과 함께 여성잡지 『신여원』 2월호 부록으로 출판되었다. 그 후 2000년에 다른 출판사에서 여러 단편들과 함께 출판되었다. 엮은이가 이 소설이 원래 연재되었던 『동아일보』의 원문과 대조해보았더니 적지 않은 텍스트의 오류를 발견했다. 어느 곳은 1쪽 이상 누락되어 있고 문장이 한두 곳 누락된 것도 여러 군데 찾아낼 수 있었다. 이는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독자들에게도 결코 신뢰할 만한 텍스트가 될 수 없다. 이에 엮은이는 『동아일보』 텍스트를 원본으로 하여 누락되는 부분이 없도록 최대한 유의하였다. 또한 기존 단행본에는 1935년대의 문장이 1973년 어법에 따라 변개(變改)된 부분도 적지 않았다. 1970년 당대 독자들을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이것도 명백한 원문 훼손이다. 본서에서는 일단 원문 그대로 옮기고 불확실한 부분은 □로 표시했다. 그리고 텍스트 주석과 어휘 해설이 필요한 곳에는 각주를 달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문학 텍스트 편집자나 텍스트 비평가들이 흔히 수행하는 표준방식이다.
『구름을 잡으려고』는 소설가 주요섭이 1920년 후반 미국 유학을 끝내고 돌아와 자신의 미국 유학 생활의 실제 경험과 그곳에서 초기 교포들에게 들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묶어 20세기 초기 해외 인력 수출 문제와 초기 미국 서부 이민 사회와 생활에 관해 써내려간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주요섭의 이 소설은 실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문학적으로 제기한 한국문학 최초의 세계주의자의 국제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장편소설 『구름을 잡으려고』는 한국 최초의 디아스포라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또한 19세기 말 20세기 초 노동자로 미국으로 간 조선인들의 초기 이민 생활사와 당시 소설의 배경 지역인 미국 서부 지역에서 조선인의 눈으로 본 미국의 모습을 살펴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다큐 소설이기도 하다.
해외 첫 인력 수출을 다룬 이 소설의 줄거리는 아마도 18, 19세기 식민제국주의 시대 유럽인들이 해외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노동력의 태부족을 해결하고자 해외(주로 아프리카) 식민지 주민들을 유치하기 위해 시작된 노예무역의 역사의 끝자락과도 닿아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초 미국 하와이와 서부 그리고 중미의 식민주의자들은 노동력 부족을 메꾸기 위해 아프리카 흑인들보다 더 효율적인 동아시아인들을 인력 수출이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불공평 계약을 맺어 징발해 갔다. 이렇게 볼 때 이 소설은 서구 제국주의의 일종의 노예무역에 대한 비판적 보고서이기도 하다.
추천사
주요섭은 진폭이 큰 작가이다. 이 ‘큰 작가’를 대표작의 울타리에서 풀어주어야 한다. 이는 문학을 다루는 이들의 책무이다. 주요섭은 「사랑 손님과 어머니」라는 대표작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 「인력거꾼」 「살인」 등 단편도 대표작의 또 다른 울타리이다. 작가를 대표작의 울타리에서 풀어주기 위해서는 ‘전집’을 기획해야 한다. 전집은 어느 작가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의욕과 문학적 사명을 반영한다. 현실여건을 넘어서는 출판의 사명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번에 내는 장편소설 선집은 작가 주요섭을 전체적으로 다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큰 작가’는 한두 마디로 규정되기를 스스로 거부한다. 주요섭은 지극한 섬세성과 광대한 전망을 동시에 포괄하는 작가정신을 실천한 작가이다. 전체성에 대한 욕구 그 자체가 소설의 본령이다. 주요섭은 단편을 통해 인간 심성을 섬세하게 드러냈고, 『구름을 잡으려고』, 『일억오천만 대 일』, 『망국노 군상』, 『길』 등 장편소설을 통해서는 시대의 풍정과 전망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이 책이 주요섭 이해와 연구의 바탕이 될 것은 물론, 작가의 소설사적 위상을 드높이는 도약대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한용(소설가, 서울대 명예교수)
■ 책 속으로
촌락 안에서는 모든 것이 자작 자급이엇다. 그래서 돈이 쓸데없엇다. 오직 돈은 외부와의 무역에만 소용되는 물건이엇다. 곧 백인들에게서 총기와 탄약을 사드리기 위하여만 돈이 필요한 것이엇다. 따라서 그들은 돈이라는 것은 백인의 총을 사는 데만 꼭 쓸 데 잇는 것으로 아는 모양이엇다.
그들은 돈을 모하두려 하지 안는다. 그저 일 년 입을 옷이나 한 벌 잇고 방 안에 옥수수 타랭이나 열아문 개 매달려 잇으면 그들은 만족하엿다. 그래서 그들이 그들의 단순한 생애를 만족시킬 정도의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한 후에는 그들은 모혀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낸다.
그러나 준식이는 이런 단순한 생활에는 만족할 것 같지 안헛다. 그는 미국으로 가서 돈을 만히 버러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한번 흥청거리고 살아보고 싶엇다. 그는 돈을 모으고 싶은 것이엇다. 따라서 그는 미국으로 가고 싶엇다.
준식이가 이 원시적인 촌락에 도착한지 한 달가량 된 어떤 날 아침 촌락은 전에 없이 어수선해지엇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여다니고 무엇이라구 껙껙 소리를 치더니 추장의 집으로부터 전령사가 나와 집집마다 들리며 무엇이라구 명령을 내리엇다.
앞강에 낙시질을 나갓든 아리바가 낙시대도 내여버리고 급해 뛰처 올라왓다.
준식이더러는 어서 속히 길 떠날 준비를 하라구 일는 후 아리바는 어머니를 도와 급급히 행장을 준비한다. 준식이는 영문은 잘 모르지만 하여간 길을 떠난다는 것만은 확실한 고로 행장을 꾸려보려고 햇스나 그실 아모것도 꾸릴 것이 없엇다. 빈손 들고 올라와서 지금 옷까지는 남의 것을 한 벌 얻어 입은 신세에 행장이라고 꾸릴 것이 잇슬 리가 없엇다. 오직 추장에게로부터 받은 털 달린 모자를 내리워 머리에 다. 그리고 나니 더 할 것이 없다. 그래서 그는 떠나기 전에 마그막으로 춘삼이를 무든 무덤으로 올라갓다.
(110~111쪽)
또 어떤 때는 이 청년들의 장담을 듣다가 찜미의 장래에 대해서 적지 안은 불안을 느끼고 밤새도록 잠을 못 자고 고생하는 때도 잇는 것이엇다. 그들은 가끔 제이세 국민 이야기가 나오면 모두 장래성이 근심스러운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이엇다.
“그들은 법률상 미국 국민이다. 그러나 그들은 얼골이 노라코 눈이 깜아고 코가 납작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절대로 미국 시민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들은 서양인 눈에 ‘쨉’이나 ‘창크’이지 ‘아메리칸’은 아니다. 시민권을 주머니에 너코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꺼내 뵈일 수도 없고 또 설혹 그러케 한달지라도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타고 그들이 그들의 부모를 딸어 조선 사람이 될 수 잇느냐 하면 그것도 의문이다. 그들은 다못 얼골이 조선 사람처럼 생겻다는 한 조건 외에는 조선 민족과 공통되는 점은 없다. 언어, 풍속, 습관, 그 전통, 그 생활철학까지가 그는 조선 사람이 아니라 미국인이다. 그러니 그들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미국인도 못 되고 조선인도 못 되고 그들이야말로 민족이 없는 한 가여운 존재인 것이다.” 하고 그들은 말한다.
“더욱이 앞으로 그들의 직업선상에 잇어서의 큰 띨렴마를 해결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하고 또 그들 청년은 말하는 것이엇다.
“제이세 국민이 제아모리 대학을 졸업하고 어찌고 한대도 얼굴이 노라키 때문에 백인들처럼 신분에 상당한 직업은 도저히 얻을 수 없다. 보라! 이 박사, 양 박사, 정 박사, 최 박사! 그 박사들의 직업이 무엇인가? 이 박사는 병원 개업을 햇으나 굶을 지경이라 한다. 그의 트레이닝이 부족한가? 아니다. 미국서도 첫 손꼽는 의과대학 출신이 아닌가? 양 박사는 그 부인이 향수 행상을 아니하면 굶을 판이다. 파이빼타캅파의 메달도 얼골 노란 사람의 손에서는 소용이 없는 것이다. 정 박사는 자동차 셀스맨 노릇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그리 씨언치 못하다 한다. 또 최 박사! 재학 시에는 그 웅변으로 전 미국 대학 웅변대회에서 일등까지 햇지마는 그 웅변이 황인종의 혀바닥에 붙어 잇는 동안 아모 소용도 없는 것이다. 그는 지금 바로 이 도시 안에서 어떤 서양 치과의사의 병원직이 노릇을 하고 잇지 안는가? 그의 안해는 백화점 점원이고.”
“그러면 그러타고 그들이 조선으로 갈 수는 잇는가? 최 박사, 정 박사가 다 한번 조선으로 갓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아닌가? 조선말도 씨언치 안흔 데다가 일본말은 한마디도 모르니 조선서 취직은 하늘에 별따기보다도 어려운 데다가 더구나 조선서는 그 생활양식이 맞지 안허 못 살겟다는 것이다. 간간히 말하자면 법률상으로나, 생활상으로나, 생활의 이상으로나 그들은 순연한 미국 국민이다. 그러나 그들을 받아주지 안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갈 곳이 어데란 말인가?”
이러한 이야기들을 들을 때 준식이는 찜미의 장래가 근심스러워서 밤잠을 못 이루곤 하는 것이엇다.
(376~3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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