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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간행도서

권정수 시집 <한 잎>

by 푸른사상 2019. 9. 27.



분류--문학(시)

한 잎

권정수 지음푸른사상 시선 108128×205×8 mm1249,000

ISBN 979-11-308-1458-2 03810 | 2019.9.30



■ 도서 소개

 

어머니처럼 넉넉한 자연을 노래한 치유의 시

 

권정수 시인의 시집 한 잎<푸른사상 시선 108>로 출간되었다. 돌고 도는 순환적 세계인 자연에 담겨 있는 인격과 모성을 노래한 시집이다. 그리하여 시인이 노래한 자연은 사람살이를 지켜주는 가장 믿음직한 보호막이자 자애로운 치유의 길을 우리에게 마련해준다

 

 

■ 시인 소개

 

권정수 權貞秀

2008시와문화1회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사물을 심은 나무』 『하늘까지 뻗은 나뭇가지가 있다. 2017년 및 2019년 강원문화재단 전문 창작기금을 받았다. 한국작가회의와 강원여성문학회, 동안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 kwon4520@hanmail.net)


 

■ 목차

 

시인의 말

 

1

고요함이 스스로 말한다 / 난쟁이 달 / 피아노 / 결혼의 노래 / 우는 사람 / 노래하는 사람들 / 항구 여인숙 / 뜨개질 / 한 잎 / 그다음 날의 기도 / 맛보는 아이 / 냇물 / 홀로 가는 길

 

2

모란꽃 벽지 / 백조들 / 화단에 내리는 달빛 / 사물의 입장에서 / 밤에 더 빛나는 꽃 / 칸나와 폭풍 / 나무는 우리의 부재다 / 태풍의 눈 / 벚나무는 꿈꾸듯 진다 /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말한다 / 꽃은 생로병사를 치러낸다 / 숨은 몸 / 겨울나무 / 새벽

 

3

바람 / 3월 잡목 산 / 짙어지며 저물자 / 알뿌리 / 백봉령 / 벚꽃 소풍 / 모내기 / 자작나무와 돌풍 / 암자 / 푸른 철도 / 삼화사 / 가을은 이미 / 눈사람

 

4

논골담 담쟁이 / 해넘이와 해돋이 / 북평장날이면 / 바이올린과 사나이 / 비렁뱅이 / 갓난아기 / 난롯가의 초상 / 성냥 / , 고양이, / / 촛대바위 / 기도 / 단 한 번도 노래 부른 적 없는 / 냉동 칸

 

작품 해설순환적 세계 인식과 저녁의 신비 - 임동확

 


■ 시인의 말


미풍에 흔들리는 목백일홍 꽃잎들.

나의 정원에 하루가 내린다.

침묵 속에서도 해는 아이처럼

자라서 그 많은 잎과 꽃을 피운다.

모든 이름 위에 스미는 노을은

더불어 어울리는 하나의 화음을

위하여 저녁을 준비한다.

지금은, 나를 찾는 시간이다.

 


■ 작품세계

 

어쩌면 어떤 깊은 내면적인 상처를 입은 권정수 시인 자신의 의인화(擬人化)이자 도플갱어(doppelganger)로서 거친 폭풍에 관절이 부러진 나무는 자연을 대표하며, 바로 그것의 치료법은 침묵이다. 침묵이야말로 상처 받은 나무의 부위를 치료하는 자연의 유일한 외과적 처방법이다. 그러니까 가능한 한 움직이지 않거나 고통을 견디어내는 일이 중요한 자연치료 행위다. 인간이 소리치는 침묵으로서 자연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러므로 어떤 가시적이고 적극적인 치료가 아니다. 인간에게 조금만 참고 견뎌내면 곧 괜찮아질 거야라는, 자연의 깊은 위로와 믿음이다

우린 기꺼이 그런 인내와 위로의 배경이 되어주는 넉넉하고 든든한 자연의 품안에서 서로 몸을 바싹 붙인장님처럼 더듬으며/서로를 알아보거나 사랑에 취한”(항구 여인숙). 값싼 동정이나 연민일망정 북평장날” “바닥에 배를 깔고 네 발로 기어가는 그의 가난을 덜어주고자 애써 생필품을 사거나 흔쾌히 동전 한 닢을 보태며 오늘도” “언제나처럼 무거운 몸”(북평장날이면)을 애써 일으켜 살아간다. 그러니까 인간의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공격보다 방어력으로써 일종으로 자연의 창조적 행위의 하나가 자연의 치유력이다. 가장 독창적이고 내적이며 가장 심층적인 데서 나오는 모든 자연의 행위를 전제로 하는 힘이 진정한 의미의 자연의 치유력이라고 할 수 있다.

권정수 시인에게 그런 점에서 자연은 무엇보다도 모성적인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새파란 여자또는 뱃속에서 아직도/눈 못 뜬 여자로 비유되는 자연은, 우선적으로 오늘도” “아기를 낳는 꿈을 꾼다”(알뿌리). “아침이 되면식구들의 안전을 팽개치고 나그네처럼 떠나아빠대신 고양이가 노려보는 쥐구멍을 온몸으로 막는” “엄마”(, 고양이, ) 쥐처럼 그녀에게 어머니는 자연처럼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지켜주는 가장 믿음직한 보호막이다. 우연히 마주친 풍경 하나하나는 자신을 사랑과 자애로서 낳고 키우며, 영양을 공급하고 보호하는 어머니와 같다.

(중략)

얼핏 보면, 권정수 시인은 어떤 사물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사물에게도 인격이 생긴다는 입장에 서 있다. 그리고 이는 그녀가 실재하는 것은 오직 자아뿐이며 다른 모든 것은 자아의 관념이거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아론(唯我論)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사물이 실상 나를 구성하고 염려하며 돌보는 것들의 목록이라는 입장으로 볼 때면, 분명 그녀는 주객의 분열 내지 분리를 지양해온 일원론적 세계의 시인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주체와 객체, 현상과 존재, 개별성과 일반성의 구별 이전의 생기 사건에 주목하면서 사물과 나의 분리 불가함을 주장하고 있다. 어떤 물건을 만들 때 인간의 마음과 얼이 사물로 옮겨 붙어 깃드는 상호작용의 결과, 그녀는 오히려 사물이 인간을 구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시인에 속한다.

임동확(시인) 해설 중에서 중에서

 

 

■ 추천의 글

 

권정수 시인은 강원도의 식생에서 사람살이의 비의를 이끌어내고 있다. 낮고 추운 자리에서 묵묵히 물을 길어 올리는 꽃과 나무의 비밀을 알레고리로 나타낸 일련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나무가 우리의 나무인/부재를 되돌려주시네/나무를 껴안은 우리는 흙의 수의네/우리는 수의를 벗어 던지고/씨알을 하나씩 심어 벽처럼 서 있네”(나무는 우리의 부재다)라고 읽는 눈이 맑다. 씨앗을 품은 흙으로 상징되는 민초들이 삶의 꽃을 활짝 피웠으면 하는 기원이 담긴 시집이다.

박몽구(시인)

 

자연은 궁극적 질서요 가치일 것이지만 이성은 이를 규정할 수 없다. 나무 한 그루조차도 스스로를 구성하는 무수한 분자들이 항상적인 운동 과정 속에 개방되어 있다. 언어라는 기호가 어찌 그 미증유의 생성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권정수의 한 잎은 존재에 가닿지 못하는 언어의 선험적 운명을 적시하는 듯하다. 나무 역시, “우리의 나무부재’(나무는 우리의 부재다)를 환기할 뿐이다. 그런 시편들은 기호 대신 한 조각 물성으로 현전코자 한다. 감각의 선은 종유석 위에 붙은 은행잎을 노란 부리를 내밀며 애걸하는/어린 병아리”(한 잎) 로 전이시키고, “귀 모양으로 생긴 본질 하나”(맛보는 아이)가 태동하는 순간을 연출한다. 시 자체가 나를 염려하고/나를 돌보던 것들”(사물들)로서의 사물이 되는 형국이다. 권정수 시는 때로 파격적 거리, 긴 호흡, 생경한 추상 등이 서정적 긴장을 비껴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시론의 공준보다 시적 사건의 체현을 위해 선택된 외장에 가깝다. “속이 텅 비어서/허공에/꽉 찬 말”() 일 뿐인 언어의 운명을 재구하려는 절박한 흔적일 것이다. 강원 영동권 천혜의 자연을 전유하는 또 하나의 시적 전위가 이렇게 우리 곁으로 왔다.

남기택(문학평론가, 강원대 교수))

 

 

■ 시집 속으로

  

한 잎

 

꽃도 새도 없이

은행잎이 한꺼번에 쏟아지다가

높이 서 있는 종유석 위에

붙인 한 잎

 

나는 그것이 암탉 배 밑에 숨어

갓 깨어난 병아리 한 마리인가 했다

 

저것들은 가지 끝에 서서 떨어지지만

엄마 배 밑에, 날갯죽지, 꽁지 속에

숨어 갓 깨어난 연노랑

병아리들이다

 

엄마의 손끝을 거쳐 엄마의 품속

벗어난 새끼들의 인생을

엄마와 떨어진 내가 벼랑

아래서 그것을 보고 있다

 

벼랑에 혼자 붙어서 헐떡거리는

그것의 숨이 내 속에 가득 찬다

 

나는 노란 부리를 내밀며 애걸하는

어린 병아리에게 물

한 모금도 줄 수가 없었다

하늘 한번 우러르고 싶어서 얼마나

오래갈 빛을 받고 있었는지

 

입을 벌린 채 얼이 빠진 듯

하얘지다 말고 멈춰 있다

 

 

맛보는 아이

 

귀 모양으로 생긴 본질 하나가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휘어져 있다가 몸을

쭉 펴는 순간

아이는 휘돌아간 시간들을

몽땅 손에 넣지 않았던가

 

아이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가장 늙은 얼굴이면서

새로운 얼굴이네

 

겉으론 순종적인 것 같지만

가장 기괴한 얼굴이네

아이에게는 예의가 없고

도덕도 없으며 정의도 없네

허망한 것을 진실하다고

여기지도 않고 진실한 것을

따로 챙기지도 않네

 

다만 지금 이대로 타고난

자기 본성으로 미래의

 

욕망에 대한 셀 수 없이 많은

증거를 요청할 수 있네

 

 

꽃은 생로병사를 치러낸다

 

꽃은 빨리 지지도 않고

한꺼번에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가지에 매달린 채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암 환자의 세포처럼

모든 고통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펄썩 바닥을 치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살아 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일주일 후 열흘 후 한 죽음이

떨어지고 나면 분명히

또 한 죽음이 다시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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