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smart)한 정보기술이 일상을 지배하는 요즘, 문학도 점점 호흡이 빨라지고 있다. 특히 간결하고 압축된 언어로 인간세상의 행간을 읽어내는 시문학이 지나치게 즉물적이고, 직설적으로 변모하고 있어 시문학 본래의 미덕인 ‘은근한 울림’이 엷어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시의 생명은 은유와 상징이다. 물론 과거엔 음률(리듬)이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되기도 했으나 시가 음악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언어적 속성 가운데 형상성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은유란 한마디로 ‘사물로써 사물을 설명하는 어법’이다. 에둘러 말하는 것이 시의 바람직한 화법이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시들을 보면 직유법이 두드러지게 많고 성찰이 깊지 않아 감동을 담보하지 못하는 작품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매일 매일 속도전이 펼쳐지는 세상 속에 살다보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잘 우려낸 시 가 간절해진다.
최근 우리 지역에서 발표된 시집 가운데 고즈넉한 무등산 옛길을 걷듯 탁한 일상을 정화해주는 정감어린 시를 몇 편 소개한다.
김화정 시인의 ‘맨드라미 꽃눈’(푸른사상), 서연정 시인의 ‘푸른 뒷모습’(시와문화)이 여기에 해당한다.
김화정 시인의 시는 유년시절에 대한 추억과 향수, 도시 일상의 소묘, 자연에 대한 연민과 귀의가 주된 소재를 차지하고 있다. “…// 점점 바람의 몸이 한쪽으로 쏠릴 때마다/ 억새의 뼈마디에서는/ 낙엽 흩날리는 소리가 난다//바람만을 탓할 수는 없다 억새는 이미/ 나처럼 머리칼 하얗게 탈색되고 있다/ 오랜 시간, 가슴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억새’후반부)
가을 무등산 정상을 뒤덮은 억새군락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는 자아 이미지가 오버랩되고 있다. 바람에 서걱대는 억새의 모습이 거친 세파와 싸우면서 자신의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신과 너무 흡사하다는 동질의식이 배어있다.
“…//우두커니 전망대에 앉아, 바위섬을 바라보는 황홀한 외로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갈매기는 그녀의 푸른 머리 위를 맴돌고 있다 그러다가 갈매기는 어디로 날아가는지 모른다 저 혼자 기다림을 배우는 도리포, 또 다른 외로움이 들어서고 있다”(‘도리포에서’후반부). 외딴 바닷가 작은 포구의 한가한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그곳에서 시인은 외로운 자신의 마음 한 자락을 드러내고 있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공간에 머무를 때 엄습하는 공허감 또는 적막감이 오히려 황홀하고 외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은봉시인(광주대교수)은 김화정의 시세계에 대해 “인간과 자연이 이루는 이러한 상호교섭은 김화정의 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라면서 “그의 시의 대상에는 언제나 그의 자아가 깊이 투영되어 있다”고 평했다.
서연정시인의 시는 간결하면서도 심연을 들여다보는 통찰력이 엿보인다. 아마도 시조로 다져진 창작과정이 자연스레 스며든 결과일 것이다. 그의 시편은 자유분방한 연상력과 절제가 대비를 이루며 잔잔한 여운을 선물한다.
“울지마/너는/너를 달랠/첫 사람이야//발아래 마을에 대고 산은 크게 외친다//푸르른 오월 신록이 들불처럼 번진다”(‘무등산의 노래·5’전문).
박몽구시인(문학평론가)은 서연정시인의 시세계에 대해 “단단한 이미저리와 서정을 긴밀하게 결합하여 한국시조에 새로움을 보태는 노력을 지속해가길 바란다”고 평했다./최효은 기자hyoeun@kjdaily.com
김화정 시집, 『맨드라미 꽃눈』, 2012.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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