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서] 백 년 동안의 침묵<세계일보>
- 입력 2012.04.20 19:56:01, 수정 2012.04.20 19:56:01
나라 잃었을 때 ‘노블레스 오블리주’ 목숨 바쳐 실천한 우당 선생
-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이 화려한 광고와 유명세를 달고 출판시장을 점거하는 세상에, 조용하게 책 한 권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조용하지만 무게 있고 뜻 깊은, 오래 남을 우리의 정신입니다. 이 나라 국민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고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 뜨거운 소설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백 년 전 나라를 잃었을 때 가문의 모든 것과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일대기를 재현한 소설 ‘백 년 동안의 침묵’입니다. 선생의 간절한 조국해방의 신념을 묘사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신 박정선 작가님께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책을 선물 받아 새벽까지 읽던 중 몇 시간 후에 전개될 진료나 처방전 작성에 대한 생각이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몇 번을 울었고, 진료시간 중에도 환자를 대기시키며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단어 한 자조차도 가벼이 할 수 없다는 경건한 마음으로 잠자리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난 후에 에필로그가 끝나고 작가님 말씀도 끝이 나고, 제 머릿속에는 뱃사공 첸징우의 썰매를 타고 영하 40도 추위의 압록강을 건너는 대열과 눈보라로 가득했습니다. 하염없이 책을 바라보면서 맨 뒷장을 차마 덮을 수가 없었고, 소설은 내 마음속에서 도무지 끝이 나지 않고 가슴이 너무 아파 잠을 청할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 딴에는 불의에 잘 분노하고 애국심을 제법 강조하면서 정의에 가슴 태우는 성정이지만 이 책을 통해 세상을 사는 진정한 의미와 진리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로만 집중되었던 욕심과 아집이 부끄러웠습니다. 때마침 초봄,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과 맑고 푸른 하늘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인지를 눈물나게 느꼈습니다.
결국 지금의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렸던 분, 참으로 따뜻했던 분, 자기 이름 ‘영(榮)’자를 따내어 첫날밤 아내에게 ‘영구(榮求)’라는 새 이름을 선물했던 로맨티스트는 결국 여순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단 하루도 가족을 위한 삶을 살지 못한 채 순국하고 말았습니다.
신혼 첫날밤 애국가를 따라 부르던 부인, 삼한갑족의 귀부인으로서 기생집 삯바느질까지 해가며 독립자금을 만들어야 했던 절박함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있을까요. 월남 이상재 선생의 말씀대로 당시 독립운동가야 비백비천이었지만 선생은 달랐습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참행동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이때,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으로 보여준 그분, 참으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분이 자꾸만 그리워집니다.
김판규 부산 명제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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