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광장
백무산, 맹문재 엮음|푸른사상 시선 100|128×205×13 mm|176쪽
11,000원|ISBN 979-11-308-1423-0 03810 | 2019.5.10.
■ 도서 소개
푸른사상 시선 100, 즐거운 광장에 서다
2010년 8월 『광장으로 가는 길』이 ‘푸른사상 시선’의 첫 권 시집으로 세상에 선보인 지 9년 만에 ‘푸른사상 시선’ 100번의 시집 『즐거운 광장』이 간행되었다. 그동안 ‘푸른사상 시선’을 빛낸 91명의 시인들의 작품을 한데 모은 기념 시집이다. 광장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 어느덧 즐거운 광장을 만든 ‘푸른사상 시선’은 한국의 시집 시리즈 문화에서 충분히 주목되고 평가받을 만하다.
■ 목차
조재훈|한 사람
이은봉|첫눈 아침
이봉형|아버지는 어쩌다가 도둑이 되었나요
정원도|귀뚜라미 생포 작전
심인숙|파랑도에 빠지다
박승민|지붕의 등뼈
송유미|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
신승우|나를 두고 왔다
조항록|거룩한 그물
김석환|냄비를 닦는다
최희철|영화처럼
이선형|나는 너를 닮고
서상규|철새의 일인칭
권진희|죽은 물푸레나무에 대한 기억
조혜영|봄에 덧나다
심창만|무인 등대에서 휘파람
이종섶|물결무늬 손뼈 화석
김화정|맨드라미 꽃눈
박영희|단 하루라도 좋으니
이종수|달함지
전다형|수선집 근처
이한걸|족보
정세훈|부평 4공단 여공
최기순|음표들의 집
尹錫山|나는 지금 운전 중
박석준|카페, 가난한 비
권혁소|아내의 수사법
한혜영|올랜도 간다
홍성운|오래된 숯가마
성향숙|엄마, 엄마들
맹문재|전태일
정춘근|반국 노래자랑
정진경|여우비 간다
이순주|목련미용실
정연홍|세상을 박음질하다
문영규|나는 지금 외출 중
정운희|안녕, 딜레마
육봉수|미안하다
유희주|엄마의 연애
강 민|외포리의 갈매기
박관서|기차 아래 사랑법
최은묵|벽지
박미라|우리집에 왜 왔니?
김준태|달팽이 뿔
정선호|세온도(歲溫圖)를 그리다
김 완|너덜겅 편지 1
김유섭|찬란한 봄날
신미균|웃기는 짬뽕
김은정|일인분이 일인분에게
김도수|진뫼로 간다
오승철|터무니 있다
고현혜|나는 나의 어머니가 되어
유승도|천만년이 내린다
손남숙|즐거운 책
정일남|봄들에서
채상근|사람이나 꽃이나
임 윤|서리꽃은 왜 유리창에 피는가
이주희|마당 깊은 꽃집
조계숙|나는 소금쟁이다
윤기묵|역사를 외다
차옥혜|숲 거울
정대호|마네킹도 옷을 갈아입는다
박경조|별자리
조선남|눈물도 때로는 희망
조 원|슬픈 레미콘
제리안|고래는 왜 강에서 죽었을까
공혜경|색스럽게
김종상|고갯길의 신화
박노식|고개 숙인 모든 것
정일관|너를 놓치다
김 선|눈 뜨는 달력
송정섭|거꾸로 서서 생각합니다
김금희|시절(詩節)을 털다
김윤현|돌탑 1
정진남|첫 만남
김광렬|내일은 무지개
원종태|빗방울 화석
김종숙|동백꽃 편지
김춘남|달의 알리바이
김형미|시월
김황흠|건너가는 시간
유순예|호박꽃 엄마
박원희|아버지의 귀
전병호|금왕(金旺)을 찾아가며
임미리|그대도 내겐 바람이다
이인호|불가능을 검색한다
안효희|너를 사랑하는 힘
이은래|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
강계순|사막의 사랑
김태수|베트남, 일천구백팔십사년
신동원|다시 첫사랑을 노래하다
■ 작품 해설 광장의 시학:‘푸른사상 시선 100’을 기념하며 - 맹문재
■ 작품 출전
■ 엮은이 소개
백무산
1984년 『민중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인간의 시간』 『길은 광야의 것이다』 『초심』 『길 밖의 길』 『거대한 일상』 『그 모든 가장자리』 『폐허를 인양하다』 등이 있다.
맹문재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 『사과를 내밀다』 『기룬 어린 양들』 등이 있다.
■ 엮은이의 말
‘푸른사상 시선’ 100권은 한국 현대시의 또 하나의 정체성이다. 통합된 지속성이나 하나의 경향으로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밀착된 삶의 현장에서 생활과 시작을 병행해온 시인들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지역과 다양한 현장을 아우르고 있어 우리 시대의 ‘지방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의외의 성과를 보여준다. 시에 있어 ‘지방성’을 말하는 것은 제한적이겠으나, 관념이 아닌 사물과 현실을 말하는 시는 삶의 특이성들 간의 차별적 공간에서만이 활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결코 소홀히 취급될 수 없는 것이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모든 예술은 지방적인 것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오관이 시의 재료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시가 어디에서 발생되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오관이 외부세계와 무관하게 완결돼 있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우리 시의 급격한 변화와 위축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완성된 신자유주의 물결과 무관하지 않다. 매 순간 이익을 남겨야 하는 조급증에 들뜬 시간과 자기 긍정이 과열된 현실은 시의 느리고 섬세한 호흡을 질식시킨다. 조작된 현실에서 언어의 자율성은 현실을 왜곡하고 해체할 뿐만 아니라, 해체하는 자의 자기 동일성은 오히려 강화된다. 거대 체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욕망하고 내면화하면서 자잘한 서정적 주체는 극단적으로 해체하는 타자의 시학으로 타자를 설득할 수 없다. 횔덜린이 ‘시인의 사명은 귀향’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회귀가 아니라 시를 질식시키는 집중화된 체제에 대한 저항의 의미일 것이다. 시는 다시 벌거벗은 자기 신체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모두의 고향인 ‘지방’성을 회복하는 일은 회귀가 아니라 저항이기 때문이다.
—백무산(시인)
■ '작품 해설' 중에서
‘푸른사상 시선’의 특징으로는 사회적 상상력을 지향하는 시집들이 많은 점을 들 수 있다. 노동 현장을 담거나 시민운동에 참여하거나 정치의식을 추구하는 시집들이 대거 참여한 것이다. 이한걸의 『족보』, 육봉수의 『미안하다』를 비롯해 이봉형의 『어쩌다 도둑이 되었나요』, 송유미의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 서상규의 『철새의 일인칭』, 조혜영의 『봄에 덧나다』, 맹문재의 『기룬 어린 양들』, 조선남의 『눈물도 때로는 희망』 등은 노동 현실을 나름대로 담았다. 정원도의 『귀뚜라미 생포작전』, 정세훈의 『부평 4공단 여공』, 최희철의 『영화처럼』, 정연홍의 『세상을 박음질하다』, 박관서의 『기차 아래 사랑법』, 정일남의 『봄들에서』, 임윤의 『서리꽃은 왜 유리창에 피는가』, 김선의 『눈 뜨는 달력』, 김황흠의 『건너가는 시간』, 유순예 『호박꽃 엄마』 등도 결이 다소 다르지만 노동시의 영역을 확장했다.
‘푸른사상 시선’은 사회 참여 및 정치의식도 적극적으로 추구했다. 박영희는 『그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에서 일제 강점기의 징용 광부들에 관한 서사시를 쓰려고 방북했다가 15년 형을 선고 받고 6년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는 심정을 나타냈다. 박석준은 『카페, 가난한 비』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형제들의 고통과 슬픔의 정서를 토대로 자신의 아픔을 그렸다. 정춘근은 『반국 노래자랑』에서 남북 분단의 아픔과 민족 통일의 염원을 노래했다. 남북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추구하는 의식은 김준태의 『달팽이 뿔』에서도 볼 수 있다. 채상근은 『사람이나 꽃이나』에서 원자력 발전소의 문제를 전면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려내어 핵 문제를 새롭게 인식시켰다. 김태수는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며 베트남 민중들에게 사죄를 표명했다. 이외에 이종수의 『달함지』, 권혁소의 『아내의 수사법』, 강민의 『외포리의 갈매기』, 김완의 『너덜겅 편지』, 윤기묵의 『역사를 외다』, 정대호의 『마네킹도 옷을 갈아입는다』, 원종태의 『빗방울 화석』, 박원희의 『아버지의 귀』, 전병호의 『금왕을 찾아가며』, 이은래의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 신동원의 『다시 첫사랑을 노래하다』 등도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정치의식을 추구했다.
‘푸른사상 시선’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면은 외국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이 함께한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에 거주하는 한혜영은 『올랜도 간다』에서 이민자로서 겪는 애환을 깊은 사유로써 치유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메사추세츠에 살고 있는 유희주는 『엄마의 연애』에서 이민자가 겪어야 하는 척박한 삶을 어머니의 강인한 삶을 비춰보며 극복하고 있다. 고현혜(미국명 타냐 고)는 『나는 나의 어머니가 되어』에서 아이들의 어머니가 된 여성으로서의 삶을 다양한 시 형식으로 담고 있다. 시집에 수록된 「푸른 꽃」은 제2차 세계대전에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로 살아야 했던 한 소녀의 삶을 그린 것이다. 필리핀에서 생활하는 정선호는 『세온도를 그리다』 및 『번함 공원에서 점을 보다』에서 필리핀의 역사와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을 구체적으로 담아내었다.
‘푸른사상 시선’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면은 시조집이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홍성운의 『오래된 숯가마』 『버릴까』와 오승철의 『터무니 있다』가 그것이다. 시집 시리즈에 시조집을 수용한 이유는 우리의 전통시를 현대시의 영역에서 계승하려는 것이다. 두 시인 모두 제주에서 작품 활동을 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운데, 김광렬 시인 또한 그러하다. 김광렬은 『그리움에는 바퀴가 달려 있다』『모래 마을에서』『내일은 무지개』 등 세 권의 시집을 간행해 ‘푸른사상 시선’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푸른사상 시선’의 서정성 또한 결이 다양하고 심오하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 삶의 존재 의의, 인연 관계, 일상의 가치 등을 깊은 세계 인식과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변주하고 있는 것이다. 조재훈의 『오두막 황제』, 이은봉의 『첫눈 아침』, 심인숙의 『파랑도에 빠지다』, 박승민의 『지붕의 등뼈』, 조항록의 『거룩한 그물』 『여기 아닌 곳』, 김석환의 『어둠의 얼굴』 『돌의 연가』, 이선형의 『나는 너를 닮고』, 권진희의 『죽은 물푸레나무에 대한 기억』, 이종섶의 『물결무늬 손뼈 화석』 『바람의 구문론』, 김화정의 『맨드라미 꽃눈』, 전다형의 『수선집 근처』, 최기순의 『음표들의 집』, 윤석산의 『나는 지금 운전 중』, 이순주의 『목련 미용실』, 신미균의 『웃기는 짬뽕』, 김은정의 『일인분이 일인분에게』, 조계숙의 『나는 소금쟁이다』, 박경조의 『별자리』, 공혜경의 『한생을 톡톡』, 김종상의 『고갯길 신화』, 박노식의 『고개 숙인 모든 것』, 정일관의 『너를 놓치다』, 송정섭의 『거꾸로 서서 생각합니다』, 김금희의 『시절을 털다』, 김윤현의 『발에 차이는 돌도 경전이다』, 김종숙의 『동백꽃 편지』, 김춘남의 『달의 알리바이』, 김형미의 『사랑할 게 딱 하나만 있어라』, 안효희의 『너를 사랑하는 힘』, 강계순의 『사막의 사랑』 등이 그러하다.
이외에 성향숙의 『엄마, 엄마들』, 정진경의 『여우비 간다』, 심창만의 『무인 등대에서 휘파람』, 정운희의 『안녕, 딜레마』, 최은묵의 『괜찮아』, 박미라의 『우리집에 왜 왔니?』, 김유섭의 『찬란한 봄날』, 조원의 『슬픈 레미콘』, 제리안의 『고래는 왜 강에서 죽었을까』, 이인호의 『불가능을 검색한다』 등은 감각적인 어휘의 사용과 형식미의 추구로 작품 세계의 모더니티를 확보하고 있다.
■ 시집 속으로
족보
이한걸(1950∼2017)
할아버지는
농사지으며 목수일 했고
아버지는
농사지으며 미장일 했고
나는 공장 노동자
아내도 공장 나가고
딸도 공장 나가고
아들도 공장 나가고
어쩌다 다 같이 쉬는 일요일
길고 긴 옥상 빨랫줄엔
빛깔 다른 작업복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나는 지금 외출 중
문영규(1957∼2015)
내게 든 감기는 보증금도
월세도 한 푼 없이
제 맘대로 슬며시 들어와
마치 제 집처럼 산다
감기처럼 오랜 세월
나에게 세든 당신
햇볕도 잘 들지 않는
가슴 한 켠 뒷방
그곳에 사는 당신
내 오랜 지병처럼
이미 콜록대는 당신
내게 신열이 오르는 건
무조건 세든 당신들 때문
나는 오늘 견디기 힘들어
외출을 한다
나 없는 사이
굿을 하든지 잔치를 하든지
알아서들 하시길
내일은 무지개
김광렬(1954∼ )
어느 날, 낯선 중년 부부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남편은 수리공이었고 아내는 보조를 했다
수리공은 삭은 방충망들을 손질하고
물이 새는 변기를 고치고
느슨해진 방문 손잡이들을 단단히 조였다
수리공이 땀 흘리며 애쓰는 동안
그 아내는 오가며 잔일을 도와주거나
필요한 연장을 건네주었다
수리공과 그 아내는 이따금씩
귀찮게 말을 거는 주인 아주머니 질문을
웃으며 잘 받아주었고
일도 시원시원해서 무척 호감을 샀다
그 수리공 아내의 소망은
언젠가는 사글세방과 결별하는 일이라 했다
어느덧 낡고 부서진 것들이
여기저기 번쩍거리며 눈을 떴다
그 중년 수리공 부부의 앞날도 그렇게
번쩍번쩍 빛났으면 하고 나는 생각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쟁반에 받쳐 들고 온
싱그럽고 달착지근한 과일 주스를
서둘러 들이킨 수리공 부부는
다음 일터를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촉촉이 젖은 서녘 하늘가 쌍무지개가 고왔다
냄비를 닦는다
― 선친 25주기를 맞아
김석환(1953∼2018)
눈먼 바람이 침실을 넘보는 밤
벽장 속에 밀쳐 둔 양은냄비
아버지 부끄러운 유품 닦는다
시모노세키 조선 공장 징용 기숙사에서
묽은 죽 몇 모금에 눈물로 간을 맞춰
냄비보다 깊어지는 허기를 달래던 조센진
구슬땀에 찌든 얼굴을 닦는다
귀국선 기다리며 부둣가에서 또 석 삼 년
이슬에 젖고 달빛을 끌어 덮고
웅크려 새우잠을 자노라면
갈매기 울음 거친 파도 소리
따라 울던 울림통
짓밟힌 조선
가뭄 타는 문전옥답
부모 형제 짓무른 눈자위
뼈 찌르는 해풍에 뒤척이는 당신
한 장 거적으로 다 가리지 못한
야윈 어깨 무릎 관절이 삐걱거린다
장마전선이 북상한다는 마감 뉴스 끝나고
손가락 끝에 힘을 더하며
겹겹 그을음 손때를 벗긴다
하얗게 살아나는 당신의 침묵
긴 세월 차마 녹슬지 못한
십년 징용의 하루하루
일만 냄비 짜디짠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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