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른사상 시선

이은래,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

by 푸른사상 2018. 12. 10.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 

 

이은래 지음푸른사상 시선 95128×205×8 mm1289,000

ISBN 979-11-308-1393-6 03810 | 2018.12.15



■ 도서 소개


이은래 시인의 첫 시집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푸른사상 시선 95>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굴욕을 감내하는 삶을 살아가더라도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모습과 처지를 허위로 치장하지 말고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는 시와 삶이 일치하는 실제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시집이다.


 

■ 시인 소개


이은래

경남 고성의 척박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따라 서울로 이사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개근하는 등 범생이의 삶을 살았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기업체 사무직으로 30여 년 근무하고 있다. 부천에서 야학과 청년단체 활동을 했으며, 부천노동자문학회와 부천시민문학회를 창립하여 함께하고 있다. 2018푸른사상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시집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가 있다.


 

■ 목차


시인의 말

 

1부 풀과 칼

곧게 세우기 위해 / 풀과 칼 / 사이에 갇히다 /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 / 인드라망()의 구슬 / 그대 발바닥이 차가워질 때 / 발칙한 상상 / 내 헛된 꿈이 / 부생(浮生) / 사이 / 마야야학 / 삼정천의 봄 / () / 그다음에 / 파업 전철 / 농약 방구 / 모래성

 

2부 마늘을 까며

크레인이 누운 날 / 요양원에서 / / / 노래 / 철제 침대 / 선풍기 / 육성해비 내는 날 / 야맹증 / 눈물 한 방울 / 마늘을 까며 / 단팥빵 / 밥그릇을 깨다 / 공양 / 딴따라 허정재 / 눈물과 밥숟가락 / 사춘기

 

3부 소금밥 바늘밥

자판기 / 소금밥 바늘밥 / 신입 사원 특강 / 업적 평가 / 유통기간 / 다시 개가 되고 싶은 개 / 화분이 나에게 / 연말정산 / 그믐달 / 아무 일도 아니었다 / 노랑이 김 대리 / 대타 장하나 / 경리부 미스 김 / 신나는 화장실 / 철제 금고 김 차장 / 낙지 안주 / 이유

 

4부 풍경

풍경 / 1 / 2 / 바스러지는 것 / 모든 꽃은 진다 / 사진 한 장 / 죽는 일 / 노부부 / 만다라 / 나무의 소망 / 삼막사 가는 길 / 남해에서 / 하모니카 / 은혼(銀婚) /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결혼했으며,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랑할 것이다 / 콩나물과 복권

 

작품 해설오래된 마음이 붙든 결곡한 언어들 - 박일환

 


■ 시인의 말

 

오랫동안 회색 지대였다. 현실과 꿈, 인식과 실천 사이를 중음(中陰)처럼 지나고 있었다. 그러므로 천천히 저물어 갈 길이었는데 어쩌다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나 보다. 허나 어쩌랴, 급히 아이에게 구멍 난 양말을 신긴 채 내보낸다.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빗줄기가 내리긋기 시작한다. 줄곧 떨어지는 것들로 가슴에 웅덩이가 팬다. 아이가 당신의 주소를 찾지 못하고 빗속에 오도카니 서 있으면 어쩌나 웅덩이에 걱정이 고인다.


 

■ 작품 세계 

 

시와 삶이 일치하지 않는 시인들도 있으나 진짜 시인이라면 둘 사이에 간극이 없거나 적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은래 시인은 둘을 일치시킬 줄 아는, 아니 천성이 그런 사람이다. 삶이 시의 스승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언어는 의미를 전달함과 동시에 그것을 꾸미고 보태려는 속성을 지닌다. 과장과 허위의 언어는 그렇게 탄생하며, 삶보다 시를 앞세우려는 욕망도 그런 속성에 연결되어 있다. 시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게 바로 그 지점이다. (중략)

이은래 시인은 오래도록 기업체 사무직으로 근무했고, 여전히 사무실 책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김기택 시인이 사무원이라는 시에서 사무직 노동자가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하는 의자와 일체감을 이룬 모습을 통해 사무원들의 비애를 형상화한 바 있지만 이은래 시인의 작품들에서는 그런 모습이 더욱 구체적인 형상을 하고 나타난다.

이은래 시인이 그려내는 사무직 노동자들은 오로지 자본주와 주주의 이익에만 복무할 수 있을 뿐 자기 노동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구조조정이라는 명목 아래 언제든 버려지거나(철제 금고 김차장), “날마다 시계처럼 돌아가던 길”(노랑이 김대리)을 벗어나 저 세상에다 지친 몸을 부려놓기도 한다.

굴욕과 치욕을 감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시의 화자는 주인의 그림자 뒤에서/온갖 냄새 나는 것을 다 핥아주며 살아왔다. 그래야 주인이 던져 주는 뼈다귀라도 기꺼이 물고 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유가 결코 지나친 비약이 아니라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겪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는 겪을수록 옅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두려움과 공포를 재생산한다. 하여 다시 당신의 개가 되게해달라는 열망(?)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도록 만든다. 참혹하지만 이게 진실이다. 고개 돌리고 외면한다고 해서 있던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굴욕을 감내하는 삶을 살아가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걸 잊지 않는 것, 나아가 자신의 모습과 처지를 허위로 치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정확히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둘러싼 현실의 실체가 보이고,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할 것인지 떠올릴 수 있다. (중략)

이은래 시인의 언어는 어떤 소재를 선택하더라도, 그게 설혹 민중 친화적인 서사를 다룰 때라도 장황하거나 늘어지지 않는다. 가령, 1990년대 후반에 부천에서 있었던 철거 문제를 다룬 초기작 삼정천의 봄을 보더라도 담담하게 풍경만 제시하고 있을 뿐 새된 목청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언어와 감정의 절제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일환(시인)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늦어서 더 귀하고 꽉 차지는 것들이 있다. 예순에 첫 시집을 낸 이은래가 그렇다. 이 시인 친구를 열여섯 살 까까머리 문학청년일 때 처음 만났다.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그후의 긴 세월이 67편의 시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나는 시를 이용한 치유 작업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를 가장 많이 읽는 사람 중 하나라고 밝힌 적도 있다. 이 시집에 있는 시들은 전설적 명반에 실린 곡들처럼 매 편이 절창이다. 허투루 흘러가는 단어나 문장이 없다. 잘 발효된 시인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어 자꾸 읽어도 유기농 먹거리처럼 속이 편안하다. 데모 현장에서 경찰에게 쫓기는 사내를 부부처럼 팔짱 끼고 구해준 낯모르는 임신부 얘기를 담은 시의 제목은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이다. 나도 이 늦깎이 시인 친구에게 고마움과 존경을 담아 인사를 건넨다. 늦지 않아 고마우이. 친구로선 자랑스럽고 시 애독자로선 사랑스러운 시집이야. 오래 기억될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 이명수(심리기획자)

 

30여 년 가까이 만나본 시인은 한결같이 다정한 사람이었다. ‘머 리가 발을 받들고 가장 낮은 곳에서 발이 빛나는 인간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밥그릇에는 밥알보다 많은 바늘이 들어있지만 그것이 삶의 등뼈를 세우는 힘이 되었다고 자족하면서도 늘 성찰하는 사람이었다. 곁을 이루던 사람들이 소멸하거나 바늘밥의 자리마저 떠날 때, 세계는 비극의 연속일 때 그가 견뎌야 하는 성실한 일상에도 푸른 칼자국이 나고 바쁜 발바닥에는 푸른 핏방울이 매달려 있다. 의혈이 뜨거우나 삿된 성냄이 없고 연민은 구들장같이 따뜻하다.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변해온 건 선명한 푯대 때문이 아니라 생활과 이웃과 제 자신의 역사를 다 품고 살아버린 의연한 개인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이런저런 과시가 넘치는 세상에 그의 천성인 머뭇거리며 헤아리며 뭐라도 행동하는 마음들은 우리가 귀환해야 할 시적인 바탕이 아닐 수 없으리라. 아끼고 아낀 맨 마지막의 언어들이 시라고 하는데 그래서인가. 잠행하는 로서 잘 살아놓고서야 늦게나마세상의 관계들에게 고마웠다고 내놓는 편편이 갸륵하고 다감하여 우리를 오래된 길로 이끌고 가는데, 마주 잡은 손이 따뜻하여 궁극에는 같이 살고 싶은 병()을 이루게 한다.

- 문동만(시인)


 

■ 시집 속으로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

 

자욱한 최루에 맞서는

뜨거운 거리였다

 

가투를 치르다 다리를 다쳐

바지에 핏자국 배었다

골목길 달리는데

앞에서 검문 중이었다

 

누군가 옆에 와서 팔짱을 꼈다

편안하게 가요, 부부인 척하고

임신 중인 불룩한 배가 눈에 들어왔다

그이가 피 묻은 바지 위로 몸을 붙였다

 

낯선 친절의 그늘에 숨어

골목을 나왔다

조심하세요

치마에 붉은 얼룩이 눈에 들어왔고

인사도 못한 채 거리로 뛰어들었다

 

그 아득한 길을 지나와도

검문은 길목마다 나를 기다렸다

 

막다른 길에서 멈칫거릴 때

편안하게 가요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데

내 피 묻은 바지를 가리던

붉은 얼룩 치맛자락이 보인다

 

 

소금밥 바늘밥

 

밥그릇 앞에 두고

먹겠느니 못 먹겠느니 타령하지 말아라

 

밥그릇에는 밥보다 많은 소금이 들어 있다

 

새벽 출근해서

저녁도 거른 채 보고서를 작성하고

가족이 다 잠든 후에 젖은 몸으로 들어오는

땀내 나는 하루가 거기 있다

 

허기진 가계가 월급봉투에 중독되지 않도록

한 끼의 소금밥이

불안의 시간을 위로할 것이다

 

밥그릇에는 밥알보다 많은 바늘이 들어 있다

 

의자에 숨어 있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튀어나와 찌르던 바늘

 

수없이 바늘 박힌 하루가 거기 있다

 

바늘이 생살을 뚫고 들어가

등뼈를 세우는 힘이 되었듯

한 끼의 바늘밥이

무너지는 허리를 곧추세울 것이다

 

그러니 밥 한 그릇

소금 삼키듯 먹어라

바늘 삼키듯 먹어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