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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시선

이인호, <불가능을 검색한다>

by 푸른사상 2018. 10. 24.




불가능을 검색한다 

 

이인호 지음푸른사상 시선 93128×205×10 mm1629,000

ISBN 979-11-308-1376-9 03810 | 2018.10.23



■ 도서 소개


이인호 시인의 시집 불가능을 검색한다<푸른사상 시선 93>으로 출간되었다. 모순된 상황에 주어진 삶의 딜레마를 끝없이 변주해감으로써 현실을 새롭게 마주하고 또 극복해나갈 길을 따뜻한 시선으로, 때론 예리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시집이다.


 

■ 시인 소개


이인호 

서울 가리봉동에서 태어나 도시의 주변부 문화에 익숙하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 아내의 고향인 울산 언양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다. 2015주변인과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목차


시인의 말

 

1부 정면을 맞이한다

동굴 / 누구나 갈비뼈에 몸을 묶고 산다 / 당신이 온 자정 / 정면을 맞이한다 / 무창포 / 노랑 / 불가능을 검색한다 / 스크린도어 / 잊은, 혹은 익은 / 그는 돌아갔을까? / 숲에 꽂히다 / 계단 조심 / 동부분식 / 평상의 계획 / 오래된 서가

 

2부 반구대 암각화

이웃 사람 / 꾸러기 수학 교실 / 섬으로 온다 / 온기가 있던 자리 / 겨우살이 / 측백나무 병동 / 제대로 된 금형 틀은 어디 있을까? / 처용 / 혁명의 배후 / 가시박 / 서해 건어물 / 반구대 암각화 / 언양읍성 / 청소 / 붉은바다거북 / 소금포

 

3부 발의 대화

가을 / 답십리로 11/ 양평동 랄랄라 / 풍향을 가늠한다 / 초콜릿 / 레고 / 고백 / 반지하 / 소멸엔 핑계가 없다 / 아버지는 왜 잠귀가 밝은가 / 빈집 / 발의 대화 / 애피타이저 낑깡 / 초식동물의 아침은 늑골부터 가렵다 /

 

4부 질문

제주 / 타라우마라족의 사슴 사냥 / 11/ 등대에 걸린 아침 / 악수 / 다리인다리 / 4호선 오이도행 / 통풍이 오는 오월 / 누가 고래를 숨겼을까 / 부고 / 겨울 / 장마 정거장 / 질문 / 거리

 

작품 해설당신의 시학 - 맹문재


 

■ 시인의 말

 

뒤돌아본다.

온 길이 잘 보이지 않고,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었다.

낯선 도시에 발을 디딘 순간 오래된 병처럼 어깨가 결렸다.

디딘 발은 어쩐지 부자연스러워서 걸을 때면 가끔 미나리꽝에 빠졌다.

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개울물에 씻을 때면 발바닥에 난 균열이 조금씩 커졌다.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청거리며 조금씩 걸어갈밖에

터지는 일에 익숙하고,

비아냥에 익숙해져서

터벅터벅 걸어가다 보니

그래도 제법 발목이 굵어졌다.

발목이 예쁜 신랑을 가지고 싶다던

당신이 아들들과 빗속에서 종종대는 모습이 훤하다.

부끄러워져서 어색하게 웃고 만다.

내 부끄러움도 함께 터벅터벅 걷는다.


 

■ 작품 세계 

 

이인호 시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당신은 적당한 온도와 향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작품의 화자가 당신의 얼굴을 바라볼 때 함께 바라보고, 화자가 당신의 손을 잡을 때 같은 방향으로 선다. 이름이 불리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얼굴은 푸르게 빛나고, 함께 걷는 걸음만으로도 당신의 발목은 따스하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야 삶이 이어진다고 인식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그리하여 당신이 심어놓고 간 온기는 차츰차츰 뿌리를 뻗고 싹을 틔운다.

그렇지만 당신의 형편이 평온하거나 여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당신은 서랍 깊숙이 진통제를 넣어두고 복용할 정도로 질병을 앓고 있고, 당신의 심장을 그리기로 마음먹고 가슴을 열어보았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유난히 붉었다. 그러면서도 상가(喪家)에서 초상을 보며 허기를 잊을 정도로 마음이 여렸다. 따라서 작품의 화자와 당신과의 관계는 손쉽게 마련된 것이 아니다. 당신의 호주머니에서 꺼낸 빛이 오래 죽은 병아리처럼 유용하지 않자 실망하고, 변명과 실수를 반복해서 분노로 멀어져 있는 당신이 다가오자 또다시 물러난다. 사소한 불편을 성가신 것으로 여기고 자신을 지킨다고 성 밖으로 내던진 무수한 화살과 창이 당신에게 꽂힌 적도 있다. 심지어 방아쇠를 당겨 당신을 쏘는 죄도 저질렀다.

그렇지만 작품의 화자는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만큼 당신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당신이 남긴 지문이 바람에 풍기는 것을 느끼고, 당신의 향기가 기억보다 오래 남아 있다고 고백한다. 당신과 오래 보았던 지붕 아래 구겨 넣은 신발 두 켤레를 보면서 그리움도 갖는다. 생강나무 노란 꽃망울을 보며 당신에게 자라난 난포를 떠올리고, 몇 번의 병증을 검사받으면서 당신의 안부를 궁금해 한다. 당신이 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함께 머무르던 지명을 되새기기도 한다. “당신이 송전탑에서 만든 구름이 나풀나풀 피어오를 때마다/환호를 지르던 푸르디푸른 지상의 균형”(누구나 갈비뼈에 몸을 묶고 산다)을 꿈꾸기도 한다. (중략)

작품의 화자는 당신에게 다가간다. 당신의 정체성을 화자의 정체성으로 동화시키지 않고 함께하려고 한다. 구체적이면서, 인격적이면서, 온몸으로 우주를 사랑하는 순서에서 그 우선으로 당신을 품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고독과 불안과 안타까움과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작품의 형식이며 시어며 비유 등이 다소 낯선 것은 그와 같은 면이 반영된 것이다. 그렇지만 화자는 당신이 오지 않으면/아무 소용이 없는 밤”(섬으로 온다)이라고 여기듯이 당신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다. 화자는 자신의 존재성을 인식하면서 이미 당신을 향한 운동성을 걸어놓은 것이다.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이인호 시인의 시는 모순된 현실에 주어진 삶의 딜레마를 끝없이 변주해감으로써 현실을 새롭게 마주하고 또 극복해나갈 길을 찾는다. 그의 시에는 밤을 하얗게 밝히는 감상적인 그리움도, 초월적인 구원의 세계에 대한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가까운 현실에 무지하면서 불가해한 세계에 빠지는 나태를 경계한다. 그러면서도 명멸하는 눈앞의 현상이 아니라, 삶이 지나가고 남긴 희미한 흔적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대화를 시도한다. 그가 삶의 실체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그의 예리한 시선은 흩어져가는 얼룩에서 씨앗과도 같은 빛나는 시간의 결정체를 찾아낸다. 그러므로 그에게 모든 흔적들은 소멸이 아니라 번짐이다. 그 번짐에의 몰입은 자아의 확장이며, 타자와의 고통의 연대를 이어가는 신체로 환원된다. 하지만 그런 시인의 몰입은 언제나 세계와 새로운 의미관계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그는 어떤 목적을 향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실패를 향해서 나아갈 생각인 것 같다. 시의 여정은 길을 찾고 해답을 얻는 일이 아니다. 언제나 걸어온 길보다 더 많은 미지의 길과 적극적인 실패를 낳는다. 시인은 그러한 시의 숙명 속에 깊이 발을 들여놓았다. 경이로운 실패를 축하한다.

- 백무산(시인)


 

■ 시집 속으로 

 

불가능을 검색한다 최종범

 

우리는 검색으로 만났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가지를 치는

자음과 모음을 적절히 섞어야 한다

한 글자에도 무수히 쏟아지는 연관

막상 다가서면 점점 다른 의미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길을 잃어버리면 네가 부른다

부르지 않아도 쓸모 있어지고 싶어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나는 못 들은 척하는 게 아니라

자주 못 듣는다고 했다

검색은 못 들은 척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결과가 궁금하지 않아도 너를 검색하고

내 엄지는 너의 엄지와 다르지 않아서

물푸레나무가 서성이는 방법이

습기 때문이라고 쉽게 알아낸다

너를 보면 자꾸 손에 땀이 차는 것도

밑동이 허전해서라고

검색으로 검색되지 않는 이유를 대지만

 

아이를 두고 자살을 선택한,

선택을 당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도무지 검색이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이 이유였을지 모른다

난 네 앞에서 불가능을 검색하고

다시 검색한다

거기 있는 너와 여기 있는 내가

검색으로 만난 불가능한 이유와

자신을 타살한 불가능은

불가능에게 곁을 주지 않아

불가능으로 묻혀버린다고,

이곳 어딘가 불가능을 어림잡으며

가끔 손끝에서 미끄러지는 아이의

마른 손을 잡고 함께 서성였을 네가

바로 보기 불가능한

환한 사진으로 웃어서

불가능하게 웃고 있어서

 

 

소금포 흔적 8

 

바다를 메운 자리에 꽃이 피었다

살아가다보면 꽃보다 꽃이 핀 자리가 더 눈부심을

바람이 한결 가벼워서 함께 피어나던

한 생이 다른 생으로 이어지던 자리

길은 마치 물결처럼 반짝이고, 물결이 지나간 곳에

한 움큼씩 쏟아지던 굵은 소금들

 

자신의 모습을 덜어낼수록 더욱 단단해져

바라보는 것들이 무서워 담장이 올라갔다

시멘트벽에 갇힌 노동은 더 이상 경계를 넘지 못해

너의 이름을 조용히 부르려다 말고

공장 밖을 서성이다 돌아선다

당신의 유일한 나머지를 짊어지면 어깨를 조여 오는

바다를 채우던 날의 갯내 가득한 기억

 

구름은 언제나 기억 너머를 향해 흘러간다

누군가는 구름 위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구름 위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한때는 거대한 크레인이 구름은 아닌지

의심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구름보다 높은 크레인은 없어

구름 위에 서는 법은 구름보다 높이 올라가야만 할 뿐

내가 딛고 있는 바닥의 이름을 알아야 할 뿐

그대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바닥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름이 불리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얼굴은 푸르게 빛나고

함께 걷는 걸음만으로도

당신의 손길이 발목을 따스하게 하던

이제 그 길은 정말 사라지고 없는가

당신이 짊어진 것을 들여다볼 순간도 없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바닥의 이름을 불러볼 순간도 없이

하지만 그게 구름이 떠다니는 이유라는 걸

결국 길이란 것도 떠도는 것들을 위한 흔적이니

 

굳이 당신의 짐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어

다만, 우리가 딛고 있는 바닥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른다

메아리처럼 둥둥 북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에 당신의 심장이 두근거린다면

그저 흔적을 향해 눈길 한 번 주고

다시 가야 하는 것, 다시 걸어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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