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8 간행도서

김미숙 각본 · 김호경 소설, <난무>

by 푸른사상 2018. 5. 8.



분류--문학(소설)

 

난무 폭풍의 화가 변시지

 

김미숙 각본 김호경 소설153×212×20 mm33615,000

ISBN 979-11-308-1335-6 03810 | 2018.5.7



■ 도서 소개


제주의 거친 파도를 닮은 화가 변시지, 소설로 만나다

 

폭풍처럼 살다간 불구의 화가의 폭풍 같은 인생 이야기!

세계가 인정한 화가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기이한 화가 변시지!”

 

화가 변시지의 삶을 소설화한 난무폭풍의 화가 변시지가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하여, 독특한 화풍으로 제주의 풍광을 화폭에 옮겨냈던 한 예술가의 초상을 만난다.

 

 

■ 저자 소개


김미숙

1965년에 태어나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드라마 <Y2K>(MBC, 1999), <명동백작>(EBS, 2004), <김수로>(MBC, 2010)를 집필하였다. 다큐멘터리 <직지>로 제23회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1996), <금속활자, 그 위대한 발명>으로 제28회 한국방송대상 TV지역교양부문 작품상(2001), 드라마 <후궁의 반란>으로 채널A 시놉시스 공모 대상(2013)을 수상했다. 저서로 소설 장영실, 우리 언론인이 되어볼까등이 있다. 현재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며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호경

1962년에 태어나 경희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을 졸업했다. 1985년 대학문학상에 부비트랩이 당선되었으며, 1997낯선 천국으로 21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장편 낯선 천국』 『삼남극장, 스크린소설 명량』 『국제시장, 단편집 남자의 아버지, 여행 에세이 가슴뛰는 청춘 킬리만자로에 있다』 『설렘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컬러링 기행문을 펴냈다.

 

 

■ 목차


서문심장을 끌어당기는 힘_ 김미숙

 

1부 폭풍의 바다

폭풍의 언덕에서

너는 어지러운 춤을 출 운명

어려운 시절

나는 본 것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괜찮다

 

2부 잿빛 하늘의 오사카

길고 긴 바닷길

이도다완의 뿌리

어린 조센징의 시련

첫사랑

마지막 씨름대회

뒷모습은 강하다

 

3부 그림을 발견하다

만남과 이별

수평선은 마음 안에도, 마음 밖에도 있다

그대의 뜨거운 입술

세상에 이름을 알리다

진실은 우연히 들려온다

나는 한국인이다

 

4부 가장 한국적인 것

조국이 반겨주는 방법

진정한 한국은 어디에?

일본에서 찾아온 손님

돌고 돌아 제자리로

 

5부 저주받은 고향길

노란 세상의 검은 까마귀

사이토 슈이치의 여행

안녕! 나의 사랑

 

6부 이어도로 떠나는 나그네

자살바위 위의 혈투

섬은 하나의 점

소나무를 바라보는 남자

옛사랑의 희미한 그림자

이어도에서 춤을 추리라

 

후기나는 바람을 모른다_ 김호경

 

 

 출판사 리뷰


누구보다도 강했고, 누구보다도 고독했으며, 누구보다도 기이했던 화가 변시지!

자신의 생에 몰아닥친 불운을 폭풍과 같은 힘으로 이겨내고 광증과 같은 예술혼을 불태웠던 화가 변시지! 그가 노랗고 검은 거친 그림으로 세상을 향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폭풍 같은 에너지를 갈망하여 평생 폭풍을 따라다녔고 그 생생한 폭풍의 현장을 화폭에 담으려고 했던 불구의 화가, 그가 황토색과 검은색으로 그려낸 제주화에 담긴 비밀을 찾아 나선다.”

 

한쪽 다리로 이 세상을 살아야 했던 화가 변시지, 그를 닮은 한쪽 다리의 외로운 까마귀!

불편한 몸으로 인한 고통을 딛고 세계 정상에 오르기까지 화가의 내면세계의 격렬한 출렁거림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화가 변시지(1926~2013)는 제주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조선인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화가로 활동하며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광풍회전에서 조선인 최초로 입선한 데 이어 최연소 최고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한국으로 돌아와 제주에 정착하면서 그의 화풍은 제주의 거친 바람을 닮아갔고, 제주의 황토빛 풍경을 담은 그의 그림은 제주화로 명명되어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동양인 화가 최초로 10년간 그림을 전시하기도 했다.

폭풍을 닮은 그의 삶과 평생 그를 사로잡았던 광증과도 같은 예술혼이 소설로 태어났다.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제주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이주, 조선인으로서 또한 예술가로서 그가 겪어야 했던 온갖 시련들. 일본 아이들과 불공정한 씨름을 하다가 다리를 다쳐 평생 고통을 당했고, 일본 화단의 소수자로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 고국에 돌아와서도 분단된 정치 현실은 그를 평화로운 화가로 남겨두지 않았다. 끝내는 화가로서 치명적이게도 눈에 이상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굴하고 꺾이지 않은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처럼 극적이다. 그의 그림 가득히, 아니 화폭을 박차고 솟구쳐 나올 것처럼 거칠게 출렁이는 제주 바다의 파도, 폭풍, 까마귀의 날갯짓, 그 모든 것들이 바로 화가 변시지의 초상이다.

 

 

■ 서문


그림에 마치 자석이라도 달린 듯 황토색 그림은 내 심장을 끌어당겼다. 심장은 출렁 아픈 소리를 내며 그림 쪽으로 움직였다. 나는 휘청했고 그림에 끌려가는 내 가슴은 아렸다.

변시지 화백의 황토색 그림을 처음 보던 날의 기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모네나 마네 같은 인상파 화가의 강렬한 그림을 보면 가끔 가슴이 두근거리기는 했어도 내 심장을 온통 끌어당기지는 못했다. 그림 앞에서 내가 휘청거리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낄 거라는, 그래서 그림을 떠나와서도 잊지 못해 허공 속에서 다시 그림을 떠올릴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변시지 화백의 그림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그의 아픔이 내게 왔고, 그의 예술혼이 내 영혼을 두드렸으며 그의 고독이 나를 울게 했다. 많이 울고 난 다음 제주도 곳곳을 훑으며 그의 삶의 자취를 더듬더듬 찾기 시작했다. 내가 몇 년만 더 일찍 변시지라는 화가를 알았다면 그와 마주 보고 이야기하면서 웃고 울었을 것을, 그래서 그의 삶을 온전히 내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나를 매혹시킨 그 화가의 삶을 더 잘 그려냈을 것을, 그러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그래서인지 그에 관한 시나리오를 집필하기 위해 그의 삶의 흔적을 찾아가던 그해 가을, 제주도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었다.

변시지 화백의 그림이 심장을 후벼파는 아픔을 주면서도 깊은 위로가 되는 건 그의 그림이 오롯이 우리 삶을 재현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환희와 고통, 기쁨과 절망이 버무려진 인생길에서 어디 아프지 않고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 있을까. 변시지 화백은 자신이 아팠던 만큼, 자신이 고독했던 만큼 예술 속에서 행복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는 우리도 아픔과 고독을 넘어 위로를 느끼고 행복을 꿈꾸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 화가 중에 가장 일본을 잘 알면서도 가장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극일주의 화가 변시지, 그래서 그는 제주화라는 독특한 화풍을 구축하기 위해 그토록 몸부림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극복한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그의 아픈 다리, 잘 보이지 않는 눈, 처절하게 외로웠던 이방인의 삶을 극복했다. 아니 단순한 극복이 아니라 온통 신비로 싸여 있는 우리 삶을 꿰뚫어 보는 경지에 올라선 것이 분명하다.

 

변시지 화백의 삶을 뒤쫓으면서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단순하게 살아라. 그것이 행복이다.”

 

나는 이 책이 삶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인생의 동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어지러운 춤(亂舞)을 추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살아갔으면 좋겠다.


김미숙

 

 후기


폭풍이 분다.

모든 것이 흩날리고 비틀거려도 나는 바람을 볼 수 없다. 바람은 언제나 제 모습을 감춘 채 세상을 이리저리 흔들어놓는다. 그리고 한번은 반드시 거센 울음을 토해낸다. 그 울음은 폭풍이 되어 땅에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바다의 물살까지 뒤집고, 파헤친다. 그 폭풍을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은 폭풍을 이기려 했다. 변시지……. 운명의 덫에 걸려 다리 하나를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폭풍과 맞섰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는 폭풍을 사랑했고, 그 사랑을 화폭에 담았다. 그것은 인내의 열매였지만 그는 또 하나의 덫에 걸려 색을 잃어버렸다. 그가 알 수 있는 색은 오직 노랑…… 그리고 검정이었다.

두 가지 색으로 그는 하늘, 바다, 소년, 소나무, 까마귀를 그렸다. 그 모든 것들을 감싸는 것은 폭풍이었다. 온통 샛노란 그림 앞에 서면 하늘과 바다, 소년을 휘감은 폭풍이 나의 몸과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하여 변시지의 그림은 우리의 삶 그 자체가 되었다.

소나무 아래 외롭게 서 있는 소년은 왜 그곳에 있는지, 그 옆의 다리 잘린 까마귀는 왜 그 옆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림 속 주인공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을 들여다보면 소년은 귀엣말을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까마귀의 울음, 파도의 흐느낌, 폭풍의 포효 속에서 소년의 말은 바람처럼 사라진다.

그 말을 들으려면 내 마음을 온전히 비워야 한다. 제주의 옥색 바다에 풍덩 빠져야 한다. 바람과 함께 서귀포의 들판을 쏘다녀야 한다. 내가 변시지가 되어 오로지 노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때 소년의 속삭임이 들린다. 그것은 예술가의 고단한 영혼을 위로하는 노래이자,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꾸짖음일 수 있다. 변시지의 노란 폭풍 그림은 그래서 삶을 이끌어주는 지표이다.

그러나 어쩌랴!

내가 바람을 볼 수 없듯 화가의 마음을 알 수 없으며, 그의 인생은 더더구나 인식의 영역 저 너머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시지의 삶을 추적한 것은 누구보다 치열하고 험난한 굴곡을 거쳐 세상 사람들 앞에 폭풍이 무엇인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림에는 문외한에 불과한 내가 선구적 예술가의 초상을 미약하나마 글로 표현한 것은 부끄러운 행위이다. 부끄러움을 넘어 깊고 맹렬한 화폭의 흔적을 따라간 이유는 화가가 들려주는 말이 모든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서였다.

부디 그의 그림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매혹과 안위, 그리움과 사랑의 깃발이 되기 바란다.


김호경

 

 

■ 책 속으로


한없이 넓은 바다는 미친 듯 넘실거렸다. 파도는 모든 것을 다 부숴버리려는 듯 흰 포말을 일으키며 모래밭을 때리고 또 때렸다. 파란 바다는 이미 검은색이었다. 그곳에서는 폭풍이 황제였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폭풍아 오거라! 나한테 몰아닥쳐 와라! 내가 너를 기꺼이 맞아주마!”

바위 위에 앉아 가방을 열어 스케치북을 꺼냈다. 오른손에 연필을 들고 폭풍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스케치북을 날려버렸다. 벌떡 일어나 절뚝절뚝 걸어 땅에 처박힌 스케치북을 들고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흰 종이 위에 검은 선들이 그려졌다. 그것은 서너 개의 직선 혹은 곡선에 불과했다. 누군가 보았다면폭풍을 그린다고? 단단히 미쳤군.” 하고 혀를 끌끌 찰 것이었다.

(본문 20)

 

박수무당의 얼굴에서 웃음은 사라지고 눈에 핏발이 섰다.

초감제를 허여야 허곡, 하늘궁전의 18천 신덜을 굿판더레 모시는 디만 하루가 걸릴 거라. 그걸 마치문 초신맞이를 허고, 관세우도 해야 허고…… 당주삼시왕맞이를 안 헐 수 엇이난. 그렇게 열엿새나 버틸 수 잇이카?”

정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걸 하룻만이 끝내려면 새끼 까마귀 열두 마리가 필요허여. 귀신을 제대로 달래지 안허문 펭셍 반병신이라. 어디 그뿐이라? 천한 환젱이 귀신이 펭셍 따라다닐 거주”.

정신이 바짝 들어 단호하게 말했다.

환젱이라니 마씀? 환젱인 절대로 안 될 일이라 마씀!”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즐거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정윤은 수학이나 일본어나 과학 과목을 열심히 하기를 바랐으나 그와 반대였다. 박수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화가를 시킬 수는 없었다.

(본문 107~108)

 

 

쏟아져 들어오는 황금빛 햇살 아래로 이젤을 옮겼다. 시간은 충분했다. 물감도 넉넉했다. 피는 멈추지 않았다. 작업실 바닥은 온통 빨간 파도였다. 노란 세상에서 빨강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나무틀 캔버스에 정성스레 천을 끼우고 힘겹게 망치질을 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망치질이 분명함에도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캔버스를 이젤 위에 올렸다. 눈을 부릅뜨고 하얀 캔버스에 녹색을 칠했다. 녹색일 뿐 시지의 눈에는 노란색이었다. 그 바탕이 마르자 스케치를 시작했다. 태양은 더욱 치솟고 피는 더욱 흘렀다. 노란 물감통을 열어 붓을 푹 담갔다. 붓을 움직이는 손이 빨라질수록 정신이 혼미해졌다.

자신이 무엇인지, 이 세상에 어떤 존재로 왔다가 저세상으로 갔는지 흔적을 남겨야 했다.

(본문 3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