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06 20:42
한혜영 지음/푸른사상·9000원
미국 플로리다에 살며 우리말 동화와 시를 써온 한혜영 작가가 동시집 <닭장 옆 탱자나무>를 펴냈다. 동시조로 등단한 이듬해인 1990년 미국으로 떠난 뒤 처음으로 낸 동시집이다. 작가는 <팽이꽃> <뉴욕으로 가는 기차> <비밀의 계단> <붉은 하늘> <날마다 택시를 타는 아이> <이민 간 진돌이> 등 장편동화와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뱀 잡는 여자> 등 시집을 내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 그는 동시집 발간을 두고 “바람난 고양이처럼 여러 장르를 오가다 초심으로 돌아왔다”고 표현했다.
동시집 밑바닥에는 버려진 신발 한짝처럼 이민자의 아픔이 아릿하게 깔려 있다.
“망초꽃 하얀 강둑에/신발 한짝이 버려져 있다// 까르륵 깔깔거리며/ 풀밭 위를 떠다니는/ 신발, 신발, 신발들// 이럴 때 버려진 신발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귀다.// 주인의/ 발소리를 기다리는/ 서러운 귀다”(‘버려진 신발 한짝’)
무심하게 스쳐 지나갈 법한 것들도 이민자에게는 어릴 적 아픈 기억을 환기하는 매개가 된다. 예컨대 이슬은 서울로 전학 왔을 적의 생소함을, 골목길은 함께 놀아줄 아이가 없던 적막함으로 연결된다.
“풀 이파리에/ 아침이슬이 그렁그렁하다// 톡!/ 건드리면/ 눈물이 왈칵 쏟을 것 같다// “촌스러워” 한마디에/ 후두두둑! 눈물을 쏟아내던// 강원도 산골짝에서/ 전학 온 송희처럼” (‘이슬에 대한 생각’)
“햇볕 아주 쨍쨍한/ 여름 한낮// 맛난 찹쌀떡처럼/ 꿀꺼덕꿀꺼덕/ 아이들을 집어삼킨 대문들/ 몇시간째 꼼짝 않는다//따분하고 심심해진/ 골목은/ 커다랗게 입 벌리고/ 하품을 한다// 훤히 보이는 목젖마냥/ 빨간 대문 하나가/ 골목 끝에 달려있다”(‘하품하는 골목’)
작가는 “한국을 떠날 적 유행하던 가요는 다 잊었지만 어릴 적에 부르던 동요는 기억이 난다”며 “닭장 옆 탱자나무, 허물 벗은 뱀껍질, 빨랫줄에 널린 가족의 옷, 시골집 평상에서 본 별 등 어릴 적 시골에서의 기억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고 말했다.
“암탉이 알 낳았다고/ 꼬꼬대액! 꼭꼭 꼬꼬대액! 꼭꼭꼭/ 자랑, 자랑을 했다// 닭은 진짜 바보다/ 알 낳을 때마다 저렇게 소문을 내니까/ 번번이 알을 뺏기지// 닭장 옆에 세들어 사는/ 탱자나무/ 노란 알을 그득하게 품고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닭장 옆 탱자나무’)
그의 동시는 동심을 빌기는 하지만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내 발목이/ 세상에서 가장 가늘다고?/ 그렇다면 한번 볼 테야?// 소금쟁이/ 물 한 방울 젖지 않고/ 못물 위를 가볍게 걷는다.// 못 속에서 낮잠을 자던/ 등치 커다란 산이/ 소금쟁이/ 그 가느다란 발목 네 개/ 이기지 못하고 발발 떤다.” (‘소금쟁이의 힘’)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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