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경
그 사람, 그 무늬들
147×217×11 mm|248쪽|15,500원|979-11-308-1225-0 03810 | 2017.11.10
■ 도서 소개
“책들이 사라진다면 역사도 사라질 것이고,
인간 역시 사라질 것이다”
소설가 황영경 교수의 『그 사람, 그 무늬들』이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책과 독서, 책을 둘러싼 사람과 문화, 사회와 역사에 대한 단상을 수록했다. 동서고금과 각 장르를 넘나드는 저자의 다채롭고 풍성한 독서 체험이 독자에게 다시금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 도서 목차
■ 들어가면서
제1부 일부러 그랬겠어요?
라이파, 눈이 많이 내렸네요 / ‘개잡년’ 어머니, 조동옥 씨! / 재채기 한 번 하고, 죽은 남자 / 잃어버린 내 목걸이 / 너, 바틀비 맞지? / 안개 빛을 닮은 눈동자를 보셨나요? / 오빠가 사람이야? / 짜장면과 우동 한 그릇 / 별별 사랑법 / 한 말씀의 고백
제2부 닳아지는 시절들
4월에 태어난 그는 / 미안하다, 벌레여! / 5월의 달력 속에는 / 토마토의 꿈 / 애송시 노트를 읽다 / 11월, 다시 시작해도 되는 달 / 더 좋은 이별의 달, 12월 / 입춘의 비타민이 필요할 때? / 토껴라, 토끼 /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
제3부 반성, 존재, 그리고 반복
반성하지 않는 절망 / 다시, 고도를 기다리며 / ‘자살’ 또는 ‘살자’ / 미친 존재감 / 두 개의 달이 뜬다면 / 삐딱한 작가들 / ‘방콕’에서 성지순례 / 친절한 혁명 / 스티브 잡스의 가슴 / 지금은 시험 중……
제4부 다시 불러내는 사람들
이 멋진 한 세상을 / 벼슬을 못하면 어떻게 살아? / 죽은 게 아녀! / 백수광부의 처가 아직도 살아 있다니 / 강물처럼 걷기 / 두 여행 / 그래도, 경주에 간다 / 황제를 기다리며 / 아, 전태일! / 다시, 다산(茶山)을 만나며
제5부 아직도, 지나가는……
도가니탕, 잘하는 집 어디 없나요? / 말빚이 얼마죠? / 인문학적 꼰대질 / 스무 살은 못 말려! / 3월에 내리는 눈 / 스프링 개구리 / 나비 효과의 효과 / 빵장수 공주님과 빵장수 야곱 / 아Q여, 정말 이겼습니까? / 완득이 어머님, 감사합니다
■ 참고도서
■ 출판사 리뷰
글자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활자중독증이라고 한다. 그런 이들에게 독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쾌락이다. 책 속에서 그들은 광대무변한 세계를 꿈꾸며 자유로운 상상력을 키우고 사유의 지평을 넓힌다. 고단한 현실을 잊고 위로를 받으며 새 날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작가와 친구가 되고 등장인물과 공감하며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해간다. 저자는 책이 주는 그 즐거움을 독자들에게도 전해주려 한다. 그것은 아낌없이 나눠 쓰는 공공재이기 때문이란다.
이 책에는 활자중독증에 빠진 한 독서광을 매혹시킨 130여 권이나 되는 책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저자는 그 책들의 줄거리를 소개하거나 주제를 파악하거나 논지를 간추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자유롭게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에 촉발된 다양한 생각들이 곁가지를 뻗어가게 놔둘 뿐이다.
■ 저자 소개
황영경
200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아네모네 피쉬』, 공저로 『경계의 도시에서』(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 창작지원)가 있다. 현재 신한대학 미디어언론학과 교수.
■ 들어가면서
19세기 프랑스의 청년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세상의 모든 삶을 다 살아보고 싶다고 목말라했다. 나는 일찍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어보고 싶다는 가상스런 꿈을 꾸고는 했다. 내 방이 따로 있을 리 없는 어렸을 적에는 식구들이 잠을 자야 하는 소등의 시간이면 곤혹스러웠다. 낯에 읽었던 책 속의 세계로 자맥질해 가며 긴긴 밤을 견디고는 했다. 잠꼬대도 했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 몽예(夢囈, 잠꼬대)라는 호를 가진 문인(남극관)이 있었다. 지독한 독서광이었던 그는 어렸을 적부터 눈병이 날 정도로 책 읽기를 즐겨 해서 온 집안의 걱정을 샀다. 그의 할아버지(남구만, 숙종 때 문인)까지 나서서 손자의 독서를 경계할 정도였으니.
나 역시도 문제아였다. 책 귀신에 씌었는지, 더디 발달되는 시력 때문에 어머니의 가슴을 철렁하게도 했다. 철이 다 들 무렵까지도 ‘방콕’에서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배 깔고 엎드려 책만 읽던 맏딸년이 얼마나 밉살스러웠을까마는, 비교적 관대하셨던 어머니께 감사를!
나는 책에 한에서는 아주 이기적이기까지 했다. 여행 중에도 그것을 읽겠다고 머리맡 스탠드의 조도를 낮추기 위해 신문지를 씌워놓고 룸메이트를 힘들게 한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더 나빠진 시력 때문에 그렇게까지 탐욕스러울 수는 없지만.
내게 활자중독증이라는 병세가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굴러다니는 종이 쪼가리에 박힌 깨알 같은 글자들을 더듬어 읽으면서 허기진 성장의 통증을 스스로 치유했던 모양이다.
외삼촌이 고등학교 졸업 우등상으로 타온 두툼한 『동아새국어사전』이 어느새 내게로 넘어왔을 때(아마 어머니가 친정 나들이에서 집어다 주셨을 것이다), 세상이 언어의 질료로 이루어진 것을 알았다. 먼지처럼 부유하는 말글의 입자들, 그렇거니 세상은 계속 말해져왔고 또 멀리 무궁하게 말해져야만 할 것이다.
도서관의 뒷 서가와 헌책방에서 발견한 고색창연한 서책들 속에서 문(文)을 숭배하다가 미친 선비 유림들, 백척간두의 벼랑으로 기필코 밀고 갔던 그들 필생의 한에 감전된다, 전율한다.
진실은 칼끝에도 펜 끝에도 한 점 묻지 않는다.
현실의 갑갑한 문이 나를 가둘 때 책 속에 열린 여러 겹의 덧문을 자꾸만 밀고 나가면 거기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가 있었다. 책만 한 박물관과 성채가 어디 있으랴.
앞서 간 사람들의 삶의 궤적과 사상, 의식들을 책이라는 물리적 집체가 없었다면 어찌 접할 수 있을까. 그 모든 누군가의 고뇌와 비통으로 태어난 문장들에게 경배를 드릴 수밖에.
하루 두 끼 정도의 구메밥에다 책과 원고지만 주어지면 종일 감옥에 갇혀도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은 적도 있었다. 오로지 읽고 쓰는 일에만 집중해서 살고 싶었고, 앞으로도 또한 그러할 삶을 열망하면 가슴이 뛴다.
조르주 베르나노스는 말한다. “이 책을 다 쓰면 내 영적 운명은 다 채워지는 것일 터, 영혼들이 내 빵을 먹을 것이기에.”(『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에서) 그렇다, 언젠가 내게도 더 이상의 시력이 허락되지 않을 때, “책! 책!”을 외치며 고요히 또 다른 영역의 세계로 넘어 들어가는 마지막 꿈을 미리 꿀 때면 황홀한 심사마저 피어오른다, 회심의 미소와 함께. 이게 다 책이 주는 마력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줄 치고 메모하는 습관 때문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 미련이 남은 책장을 넘기면서 밑줄이 그어진 문장들과 난필로 적바림해놓은 문장들을 다시 옮겨 적는 일도 내 독서의 방법이다. 정금 같은 문장들을 되새김질하듯 곱씹으면서 내 것으로 가지고 싶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아낌없이 나눠 쓰는 공공재여야만 했다.
여기에 수전 손택의 말을 빌려와 추인한다. “책들이 사라진다면 역사도 사라질 것이고, 인간 역시 사라질 것”이라고. 신문 칼럼이라는 지면상의 이유로 경골어류의 등 가시처럼 ‘쎄’고 딱딱했던 얘기들을 다시 매만지면서 가차 없이 버려진 잔가시들과 살점들도 추려서 살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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