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쌀과 살 / 손인선
나는/ 쌀이라 하는데/ 포항 사시는 할머니는
살이라고 해요//
“할머니, 살이 아니고 쌀.”/ “그래, 살이 아니고 살.”
아무리 말해도/ 할머니는 쌀을/ 살이라 해요//
쌀밥을 많이 먹어/ 밥심으로/ 농사짓는다는 할머니//
할머니가 말하는/ ‘살’은/ 쌀도 되고/ 살도 되고
힘도 되지요
- 동시집 『힘센 엄마』 (푸른사상, 2013)
동시를 어린이들이 쓴 어린이시와 혼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현대의 동시는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즐기며 읽는 장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동시라고 해서 꼭 어린이를 화자로 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며, 요즘의 동시는 동심이 바탕에 깔린 현대시 한 편이라 해도 무방할 작품들이 많이 있다.
이 시 역시 친숙하면서도 기발한 소재를 동시적 화법으로 시화하여 독자와의 소통을 넓혀나간 작품이라 하겠다.
흔히 경상도 사람들의 사투리습관을 희화하는 용례로서 이 ‘쌀과 살’을 들먹이지만 경상도 사람이라고 해서 ‘쌀’을 발음 못해 ‘살’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구강구조가 잘 못되어 쌍시옷 발음을 못하는 걸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포항출신 이병석 국회부의장이 국회 본회의 진행도중 ‘쌀’을 ‘살’로 발음한 것을 두고 의원들이 장난스럽게 이를 호통하자 본회의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던 일이 있다.
빵 터진 것은 이 부의장이 웃음을 머금으며 단호하게 ‘저는 죽을 때까지 이 발음을 구분할 수 없다’고 한 대목이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그냥 오래전부터 쌀을 살이라고 발음해왔기 때문에 그리 말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발음을 따지는 이유는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전달하기 위함이다.
뜻만 정확히 전달된다면 굳이 발음의 디테일에 신경 쓸 까닭은 없다.
실제로 ‘쌀’의 어원이 사람의 ‘살(肉)’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쌀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양식이므로 쌀을 먹으면 살이 되기 때문에 ‘살’이 ‘쌀’이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쌀이기 이전에 살이어서 하나도 우스울 게 없는 것이다.
그리고 쌀은 우리 민족에게 살과 피, 그리고 정신 그 자체이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한다.
농경문화를 이어온 우리 조상들은 쌀에도 생명과 영혼이 담겨 있다고 믿어 왔다.
볍씨에서 나락으로 가을에 열매를 거둬들이는 과정은 곧 사람의 일평생 과정이며, 쌀을 먹는 사람은 쌀의 영혼과 기를 받아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여겼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것은 쌀밥이 아니라 ‘살밥’인 것이다.
그 살이 지금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오늘 마트에서 보니 햅쌀도 할인판매를 하고 있었다.
사먹는 사람에겐 반가울지 모르지만 풍년이라도 농부의 마음은 무겁다.
소비부진과 재고과잉, 조생종 작황호조의 결과다.
본격 벼 수확을 앞두고 재고물량이 시장에 대거 방출되면 쌀값 폭락은 심화될 게 뻔하다.
풍작으로 쌀값이 크게 떨어지면 내년 변동직불금 예산도 증액될 수밖에 없다.
변동직불금 지급 방식은 쌀값이 1000원 떨어질 때마다 400억 원씩 늘어난다.
이대로 가면 올해 농업보조 총액한도(1조4900억원)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앞으론 “할머니, 살이 아니고 쌀”이라고 채근하며 ‘쌀’을 ‘살’로 발음한다고 해서 히쭉히쭉 웃지만 말고 어른 아이 막론 ‘살’로서 삶의 힘을 키울 일이다.
살도 되고 힘도 되는 쌀이다.
대구일보/2016.09.12/
출처 : http://www.idaegu.com/?c=8&uid=348223
푸른사상의 동시선 시리즈인 손일수 선생님의『힘센 엄마』에 있는 「쌀과 살」이라는 시가
대구일보에서 소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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