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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대구일보] 정원도, <귀뚜라미 생포 작전>

by 푸른사상 2016. 6. 21.

오피니언│착한 자영업 / 정원도

 

 

어머니 낡은 스웨터의 터진 손목처럼

제때 결제 안 해주면

빚이 되는 것이 두려워

 

그 빚 갚아 나가는 데만 신경쓰다보면

자영업자의 일 년은 겨울 곶감

금방 바닥난다

 

나무들이나 풀들의 살림도

딱 그런 자영업이다

땀 흘려 잎을 피우고, 꽃을 피워

맺은 열매 다시 땅으로

바람에 다 날려 보내는 것이

 

미리 꾸어다 쓴 햇볕이나 바람에게

땅에게, 구름에게

재빨리 갚아나가는

착한 자영업자의 마음이다

- 시집 『귀뚜라미 생포 작전』(푸른사상사, 2011)
 

 


 

 

배포가 큰 사람은 빚도 척척 잘 내고 사업도 키우고 재산도 불리지만 주변머리가 그다지 없는 대개의 서민은 빚이라면 덜컥 겁부터 난다.
영세한 자영업자는 빚 안 내고 장사하는 게 장땡이다.
고만고만한 장사에 빠듯한 살림, 집세 내고 각종 세금 공과금 빼고 카드수수료 빠져나가면 겨우 가족들 건사할 정도다.
그리만 되어도 큰 다행이고 현상유지만 해도 좋겠는데 그조차 여의치 않아 큰 손실을 감수하고 하던 업을 접는 경우가 더 많다.
자영업을 하다가 말아먹는 사람에게 유일한 위안은 그런 실패가 나뿐 아니라 주위에 부지기수로 널려있다는 연대의식 정도이다.

어제 방송된 ‘SBS스페셜’에서는 자영업자들이 처한 현실을 파헤쳤다.

중고주방용품점을 운영하는 한 업자는 사업 시작한 이래 지금이 최대 호황이라고 한다. 
지난 해 폐업한 자영업자수가 9만 명에 육박하여 5년 내 최고 수치이다.

개업하는 가게 10곳 중 6곳이 3년 안에 문을 닫는다.
하지만 빚을 내서라도 자영업을 하겠다고 뛰어드는 사람은 여전히 많아 중고용품을 찾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최근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IMF때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그들에게 가장 큰 부담은 임대료다. 
임대료 인상 법정상한선 9% 이상을 받을 목적으로 2년 계약기간이 끝나면 무조건 나가라는 통보를 받기 일쑤다. 

요식자영업자들이 열심히 장사를 해도 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현실이다. 
하물며 영업부진으로 보증금을 까먹고 시설비품을 고물로 처분하고서 빚을 떠안은 채 폐업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들에겐 차라리 아무 것도 안 하고 먹고 노는 실업자 처지가 부럽기조차 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입장은 다 같은데 노동자의 절규는 사회의 관심을 받으나, 영세자영업자들의 비애는 나 몰라라 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 해 개정된 '상가임대차 보호법'도 따지고 들면 허점투성이다.
임대인이 바뀌어도 5년 계약갱신은 보장한다고 하지만 5년간 떼돈을 벌어 거액의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자영업자의 일 년은 겨울 곶감처럼 금방 바닥난다.
’ 자영업자의 살림이 나무와 풀들과 같다고 한다.
‘땀 흘려 잎을 피우고, 꽃을 피워 맺은 열매 다시 땅으로 바람에 다 날려 보내는’ 것처럼 스스로 알아서 제팔 제 흔들며 제 살림을 살아간다.
‘미리 꾸어다 쓴 햇볕이나 바람에게 땅에게’ 재빨리 갚아나가는 나무처럼 대부분의 착한 자영업자들은 빚이나 외상을 재깍재깍 갚아왔다.
그들에겐 꼬박꼬박 월급을 타먹는 봉급생활자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꾹 누르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도 어쩌지 못하는 자영업자의 처지다.
저 나무와 풀이 제자리를 떠나지 못하듯이

 

 

 

 

대구일보/2016.06.21/

출처 : http://www.idaegu.com/?c=8&uid=343085

 

 


 

푸른사상의 시선 시리즈 『귀뚜라미 생포작전』에 있는 「착한 자영업」이라는 시가

 

대구일보에서 소개되었습니다!!

 

더불어 자영업자들이 살아남기 힘든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어요.

 

감사합니다 현실을 힘겹게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는 시집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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