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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대구일보] 맹문재 시집, <기룬 어린 양들>

by 푸른사상 2015. 11. 13.

전태일 / 맹문재


나는 완전에 가까운 그의 결단을/ 지천명처럼 믿네//
그에게는 하루 14시간의 작업이나/ 단수(斷水) 같은 월급이/ 문제가 아니었네/ 위장병이나/ 화장실조차 막는 금지도/ 문제가 아니었네// 바늘로 졸음을 찌르며/ 배고파하는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준 일이/ 문제였네// 내게 인정으로 배수진 치는 법을/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 최후까지 알려줄 것이네

-맹문재 시집『기룬 어린 양들』(푸른사상,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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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태일 열사가 몸을 불사른 지 45년 되는 날이다.
그동안 전태일에 대한 숱한 평가 작업이 있었고, 그를 기리는 여러 사업들을 해왔으며 또 하고 있다.
여전히 노동문제가 우리사회의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임에도 새삼 전태일 정신의 현재적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다루어져 왔다.

다만 전태일 정신을 단지 노동문제나 자기희생의 정신만 강조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되리란 생각이며 전태일 정신의 진정한 계승이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전태일 정신은 무엇이며, 그 정신을 어떻게 올바로 계승할 것인가. 그의 소신공양은 한국 노동운동사의 새로운 전기를 연 계기가 되었음을 누구도 부인 못한다.

 어떤 경제학자나 사회학자의 전 생애를 바쳐 쌓아올린 연구업적과도 맞바꿀 수 없는 노동자들의 삶에 획기적인 변혁을 가져다준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삶의 진정한 의미와 노동자의 권익에 대한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으며, 성장 일변도의 정책이 반드시 최우선이 되어야하는가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갖게 되었다.

 

맹문재 시인은 그러한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훗날 공고를 나와 노동자의 삶을 산 이력을 갖고 있다.

‘전태일 평전’을 끼고 다닌 시인에게 전태일의 삶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시인은 인간의 고유한 가치가 어떤 권력에 의해 억압되거나 유린당할 수 없다고 결연히 대항했던 전태일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를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열악한 노동현실에만 시선을 두지 않고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준 일이 문제’라는 진술처럼 더불어 살아가는 그의 온기에 더 주목했다.

시집『기룬 어린 양들』은 ‘시인의 말’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전태일 이후 지금껏 “노동을 하다가 세상을 뜬 노동자들”의 삶을 시로써 낱낱이 기록한 것들이다.

시인은 그들이 당한 폭력적인 착취와 탄압에 분노했으며, 그들의 저항에 함께 주먹을 불끈 쥐었다.

 

또 그 현장의 참혹에 전율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름 없이 자신의 삶을 내던진 그들 희생이야말로 한국사회와 역사를 조금씩 전진시켰다고 그는 믿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유명 정치인보다도 그들의 죽음을 무릅쓴 헌신적인 삶이 역사적ㆍ사회적인 의미를 갖는다.

 

오늘은 그의 고향임에도 지금껏 외면 받아온 대구에서 처음으로 전태일을 기리는 ‘시민문화제’가 ‘2.28공원’ 전역에서 열린다.

전태일뿐 아니라 그의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의 고향도 대구다.

지금까지 전태일에게 덧씌워진 ‘과격불순분자’라는 편견을 벗게 하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거듭나게 할 좋은 기회다.

 

대구일보 / 201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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