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이른 봄의 일이다. 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준비하던 시인 곽효환(44)씨는 월북 소설가인 구보 박태원(1909∼1986)의 장남 박일영(72)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1970년대에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미국 이민을 간 일영씨는 문학제에 참가하기 위해 가져온 아버지 구보의 시(詩) 자료뭉치를 곽씨에게 전달했다. 자료를 검토한 곽씨는 근대 모더니즘 소설가로 알려진 구보가 당초 시인으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이 너무 흥미로운 나머지 박태원의 시인으로서의 행적을 조사했다.
구보는 1926년 3월 ‘조선문단’에 시 ‘누님’이 당선됨으로써 불과 17세 나이에 문단에 데뷔했는데 그 배경에 당대 최고 문인이라 할 춘원 이광수가 있었다. 곽씨가 주목한 것은 구보가 춘원에게 주고 왔다는 시편이었다. 구보는 1940년 2월 문예지 ‘문장’에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내가 춘원 선생의 문을 두드린 것은 아마 소화(昭和) 2년인가, 3년 경의 일이었던가 싶다. 두 번짼가 세 번째 찾아뵈었을 때 나는 두어 편의 소설과 백여 편의 서정시를 댁에 두고 왔다.”
소화 2년은 1927년이다. 등단 이듬해, 춘원의 집을 방문해 백여 편에 달하는 미발표 시편들을 놓고 왔다는 구보의 진술이 남아 있는 터라, 시 뭉치에 그 문제의 미발표 시편들이 있는지를 검토한 곽씨는 그러나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시 뭉치는 구보가 월북 전 지면에 발표한 19편이 전부였다. 하지만 곽씨는 소설가가 아닌 시인 박태원을 본격적으로 조명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근 출간된 ‘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푸른사상)은 그 결과물이다.
“아버지 누어 잇든 자리에/ 남어 잇는 銅錢 한 닢./ 헛간에 광이는 덧업시 서 있다./ 나는 조고만 내 손을 본다”(‘힘-싀골에서-’)라든지 “귀뚜람이 안들어도/ 가을 온줄 아옵네// 주인ㅅ집 딸의 눈에/ 사람 그리우는 빛.”(‘가을 마음’) 등 구보가 남긴 시편들은 짧은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구보는 애처롭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을 허식 없이 시에 담아내는 것을 미적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편저자인 곽씨의 평가다.
곽씨는 “구보가 소설에서 신선하고 예민한 언어감각과 함께 내용보다 문체, 형식, 기교를 현대작가의 덕목으로 중시하고 영상기법 채택, 도시감각과 심리주의 기법 도입 등으로 밀고 나간 것과는 달리 시에서는 진(眞) 미(美) 열(熱)로 요약되는 현실에 대한 진정성을 우선 기준으로 삼는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심상을 짧은 시행의 서정성으로 형상화했던 구보는 1935년 이후로 시 창작을 중단하고 소설 창작에 전념한다. 곽씨는 이를 두고 “구보의 후기 시편들은 시어의 압축성과 시적 완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그가 소설에 전념한 것은 1934년 결혼과 함께 가정을 꾸리면서 맞은 생활인으로서의 불가피한 현실 등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에는 일영씨의 아버지에 대한 회상기와 1990년 8월 재미교포 신분으로 둘러본 북한방문기를 싣고 있어 관심을 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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