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07일(月)
김영번 기자
‘구보 박태원은 소설가 이전에 시인이었다.’
곽효환 시인이 구보 박태원(1910∼1986)의 시 19편과 관련 연구 성과를 담은 문학 학술서 ‘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푸른사상)을 펴냈다. 곽 시인은 책 머리말에서 모더니즘 소설가로 알려진 박태원의 시 세계를 조명하게 된 계기부터 소개했다. 그는 “구보 박태원의 새로운 면모를 접하게 된 것은 2009년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준비하면서였다”며 “박태원의 장남 박일영, 차남 박재영 두 분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혹은 알려지지 않은 구보의 낯선 면모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박태원의 유족이 가져온 자료 뭉치를 검토하던 곽 시인은 박태원이 소설가이기 이전에 시인이었다는 점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구보의 문학적 출발이 시에 있었다는 사실에 한동안 말을 이을 수 없었다”고 희귀 자료를 접한 느낌을 전했다.
박태원은 1925년 9월7일자 조선일보에 ‘할미꽃’(이하 꽃의 ㄲ은 ‘ㅅㄱ’)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는 처음 시를 선보였다.
“나는들로다니며/꽃을차?都?님일흔이내몸의/알만는꽃을// (중략) //님일흔이내몸에/알만는곳은/건너벌판할미꽃/그거로구려으!”(시 ‘할미꽃’ 중에서)
이어 박태원은 1926년 3월 ‘조선문단’에 시 ‘누님’이 당선되면서 17세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하게 된다. 또 1927년 ‘아들의불으는 노래’ 등 두 편, 1929년 ‘외로움’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곽 시인은 “구보는 10대 후반에 이미 100여 편 이상의 시를 왕성하게 창작한 문학청년이었고 춘원 이광수에 의해 여러 지면에 시를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보는 소설을 발표하면서도 꾸준히 시를 창작했고, 1930년에는 1월과 2월 사이에 ‘窓(창)’ 등 8편의 시를 동아일보에 선보이기도 했다.
곽 시인은 책 1부에 박태원의 시 19편을 모두 담았고, 2부에서는 구보가 남긴 시론 등 산문을 실었다. 3부에서는 곽 시인이 구보의 시 19편을 분석한 논문 ‘진과 미와 열을 아로새긴 성명(性命)의 시-구보 박태원의 시 연구’를 담았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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