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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마음 울리는 일상의 노래… 이은봉 신작 시집 ‘첫눈 아침’

by 푸른사상 2011. 1. 10.

마음 울리는 일상의 노래… 이은봉 신작 시집 ‘첫눈 아침’

 


“하루치의 마음, 이름 붙이자면 ‘수치의 극치’라고나 해볼까/(중략)/먹고 살아야지 악착같이 자식들 키워야지 열 번 스무 번 다짐하다가도 오조조, 온몸에 닭살독살 돋는 밤, 그렇게 어금니를 깨무는 밤”(‘하루치의 마음’ 부분)

이은봉(58·사진) 시인의 신작 시집 ‘첫눈 아침’(푸른사상)은 ‘오조조’라는 의태어가 보여주듯 기침처럼 선명하게 안을 긁고 나오는 파열음의 시편들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마음을 건드리는 시편이다.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고 말을 꾸미지 않아야 하며 과장이나 너스레라는 먼지를 털어내야 쓸 수 있는 경지다. 그 경지는 꾸밈없는 생활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방학 중인데도 가족들과 떨어져 광주에서 홀로 지낸다 책이라도 몇 줄 읽자는 것인데, 이제는 이렇게 지내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아내와 아이들도 홀가분하다고 한다”(‘성에꽃 눈부처를 읽는 밤에’ 부분)

충남 공주 출신인 그는 20여년을 오롯이 서울의 가족과 떨어져 직장(광주대 문예창작학과)이 있는 광주광역시에서 홀로 지내는데 이골이 날 정도다. 좀 더 젊었을 때의 시편에서는 생활의 비애나, 회한 같은 게 묻어나오기도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공주와 서울과 광주라는 삼각지점을 연결하는 지리적 도형 안에서 시력 30년의 파노라마를 그려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서웠지요 마흔 대여섯의 봄날이었지요 3월 어느 날이었지요/아, 거기 금강가 공주에서 아, 벌써 옛날이 되어버린 아, 1970년대 초반의 친구들이 모였지요/후배 놈이 시집을 냈다는 것인데, 그걸 축하하자는 것이었는데 실은 다 핑계였지요/순식간에 스물두어 살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지요.”(‘신파조 봄날’ 부분)

스물두어 살에서 마흔 대여섯을 거쳐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지나간 세월과 풍경이 마치 꿈의 행간처럼 무의식적으로 숨어 있다. 그 행간에는 반독재 구호가 거리를 덮던 1985년 정월, 코감기를 훌쩍이며 원고를 쓰던 정릉동 지하실의 단칸방도,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던 처갓집 골방도, 시운동을 함께 펼쳤던 친구의 넓적한 얼굴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 한 장 한 장의 옛 사진들이 영사실의 필름처럼 촤르르 돌아갈 때 이제 온갖 것이 고향이자 타향이라고 한바탕 웃는 시인이 이은봉이다.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은뱅아아… 아, 아버지! 함부로 내 이름 부를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는데,/(중략)/은뱅아아 언제나 큰 소리로 내 이름 부르던 아버지, 끝내는 두 손으로 번쩍 올려지던 아버지, 낙엽처럼 가벼워지던 아버지,”(‘아버지’ 부분)

시인은 어느 덧 급성 췌장염으로 병원에서 두 달 동안 앓다가 작고하신 아버지의 목소리환청처럼 들리는 나이에 이르렀다. 홀가분하고 편한 나이처럼 그의 시편들도 홀가분하고 편하다. 그 편함은 그의 시가 진실을 토대로 뱉어내는 투명한 기침이기에 가능하다.

정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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