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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연합뉴스] 한혜영, <큰소리 뻥뻥>

by 푸른사상 2014. 5. 20.


마음의 상처 치유해줄 동시집 '큰소리 뻥뻥'





재미동포 한혜영 시인 출간…"어른과 아이 함께 읽기를"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바윗돌에 공룡 발자국이 선명하다/ 포르르 내려온 참새가/ 제 조그만 발을 견주어 보며/ 큰소리 짹짹! 친다/'우리 아빠의, 아빠의/ 아빠 발이 이렇게 컸단 말이지!'/ 공룡 발자국이/ 제 조상의 것이라고/ 큰소리 뻥뻥! 치고 있다."

단순한 노래를 넘어 아이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동시를 찾는 부모들에게 추천할 만이 책이 나왔다. 

재미동포 시인 한혜영(60·여) 씨의 두 번째 동시집 '큰소리 뻥뻥'이 그것. 표제가 된 이 시는 내세울 것 없고 지기는 싫을 때 어른처럼 아이들도 큰소리를 치지만 어설프기 마련인데, 참새에 비유해 그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사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동시로 풀어냈다. '청개구리 아파트'와 '벌레야 놀자'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무궁화 이파리에서/ 옥잠화 이파리로 폴짝!/ 청개구리가 이사를 간다/ 눈 깜짝할 사이/ 20평에서 60평으로 늘려서 간다/ 청개구리는 좋겠다/ 이파리마다 푸르고 환한 방이라서/ 만대로 바꿔 살아도/ 전셋돈 올려 달라는 주인도 없고." <'청개구리 아파트' 전문>

"녹두 알갱이에 구멍이 뽕!/ 뚫려 있다/ 문짝도 달지 못한/ 가난한 벌레의 집/ 착한 벌레가 살 거야/ 동글동글 똥을 누고/ 꼬물꼬물 잠을 자는/ 벌레의 단칸방을/ 기웃기웃해 보다가/ 문득/ 소리쳐 부르고 싶어진다/ 벌레야 놀자!" <'벌레야 놀자' 전문>

아이들의 세계 역시 갈등과 혼란이 존재하기 마련. 사회와 질서를 배우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상처를 받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 문제인데, 시인은 시기·질투·폭력·'왕따' 등이 '소문'에서 비롯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개미들이 쏙닥거리면서/ 소문 속으로 들어갔어요/ 개미를 쫓아/ 두더지가 들어가고/ 두더지를 쫓아/ 너구리가 들어갔습니다/ 멧돼지가 그 뒤를 쫓았고요/ 다음은 반달곰이 따라갔어요/ 하루 이틀 소문이 커지더니/ 사흘 뒤에는/ 코끼리까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문' 전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한 요즘 세태를 풍자하면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지만 작가는 이내 '어깨를 걸어요'를 통해 화합을 이야기한다. 

"강이 살아 있는 것은/ 물들이 어깨를 걸고/ 출렁거리기 때문이래/ 논물, 산물, 시냇물…/ 본래 이름은 다 버리고/ 강물이 되었기 때문이래." <'어깨를 걸어요' 전문>

이 외에도 시인은 짧지만 재미있는 동시를 여러 편 선보인다. "똥고집이라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게 만들어준 '변비', "나는 무엇을 보든지/ 눈에다가 불을 켜고" 본다는 '손전등', "날마다 책가방만 메고 다녔지/ 공부하는 거라고는 본 적이 없다"는 '거북이',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자 "기어이 빚을 받아낸 모양"이라는 '아하, 그래서 조용했구나' 등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한 씨는 1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동시는 내 안의 아이가 짓는 것"이라며 "그가 본 것과 들은 것을 들려줄 때 나는 그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려고 애를 쓸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난감할 때가 있다고 한다. 그 아이의 목소리라고 믿었던 것이 어른 목소리로 흘러나왔을 때라고 고백한다.

그는 "내가 나를 속이는 일이 없기를, 내 안의 아이가 오래도록 건강하기를 바란다"면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그는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1990년 미국 플로리다주에 이민했다.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동시집 '닭장 옆 탱자나무', 장편동화 '팽이꽃', '뉴욕으로 가는 기차', '비밀의 계단', '날마다 택시 타는 아이', '이민 간 진돌이', 시집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뱀 잡는 여자', '올랜도 간다' 등이 있다. 1997년 미주 '추강 해외문학상' 신인상과 계몽문학상 등을 받았다. 

푸른사상, 96쪽, 9천900원.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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