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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간행도서

박재학, 『저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

by 푸른사상 2026. 6. 1.

분류--문학(시)

저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

박재학 지음|푸른사상 시선 227|128×205×8mm|112쪽|13,000원

ISBN 979-11-308-2375-1 03810 | 2026.5.29.

■ 도서 소개

저녁 밥상의 온기와 낡은 구두의 편안함을 닮은 시집

박재학 시인의 시집 『저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가 푸른사상 시선 227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예속되어 사는 삶을 거부하고, 타인을 어루만지고 품어주는 본래의 삶을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야생의 시간을 꿈꾼다. 냄새를 인간 존재의 문제로 인식하고 사회 계층의 상징으로 부각시킨 면도 주목된다.

 

■ 저자 소개

박재학(朴載鶴)

2013년 시집 『길 때문에 사라지는 길처럼』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지난 세월이 한나절 햇살보다 짧았다』 『끼니 거르지 마라』가 있다. 2022년 대전문학관 ‘시확산 시민운동’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2019년, 2023년, 2026년 대전문화재단 창작기금을 수혜하였다.

■ 목차

제1부 첫 마음은 늘 맑은 사랑이라서

단추 / 수건 / 낡은 운동화 / 검은 비닐봉지 / 신호등 / 문자메시지 / 톡톡톡 / 액자 속 액자 / 유리문의 얇은 안부 / 주름진 압력 / 전단지 / 활명수 / 세 가지 이야기 / 냄새

제2부 자갈밭 위에서도 밥은 익어갑니다

장남 / 순식간 / 발길질 / 고추장삼겹살 / 소신공양의 식탁 / 짬뽕 / 순대내장국밥 / 수박 / 고단 / 일 / 취한 밤 / 코이 / 이명 / 어른아이

 

제3부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둔 안부

할미꽃 / 밥물 끓는 소리 / 서방은 한량 나는 일꾼 / 편지 / 낡은 사진 / 불현듯 / 건강검진 / 시월 초하루 / 가슴으로 옮긴 집 / 십리사탕 / 감나무집 / 끝내 / 비 오는 날 / 꿈

제4부 그냥, 저녁이라서 다행인 풍경

태풍 / 억새 / 출생 / 봄눈 / 신호 위반 / 저녁 인사 / 희망 사항 / 빈 맘 / 보고 듣고 깨닫고 / 아껴야 할 것 / 길들여지다 / 흔들렸지만 / 곁 / 사선

작품 해설 : 새로운 야생의 시간을 위하여 _ 고영직

■ ‘시인의 말’ 중에서

별일 없는 안부가 그리운 날들입니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떤 날은 저녁 밥상의 온기를 담고 싶었고, 어떤 날은 낡은 구두의 편안함을 적고 싶었습니다.

그저 당신이 지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툭, 하고 내려놓을 수 있는 쉼터가 되었으면 합니다.

머물다 가는 따뜻한 볕이 되기를, 당신 곁에 머무는 작은 반딧불이 되기를, 이 시집이 당신의 곁에서 오랫동안 같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맑은 물 한 잔 같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내 곁을 지켜준 모든 존재에게 이 투명한 거울을 바칩니다.

작품 세계

(전략) 박재학 시인은 시집 『저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에서 “흔들리는 것들을 감싸는 것이 내 일”(「억새」)이라고 자임했던 본래의 삶의 태도를 회복하고자 한다. 이것은 소위 ‘K-장남의식’(「장남」)의 발로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타락한 순결과 너덜너덜한 양심과/때로는 지려놓은 생활”(「수건」)마저 ‘닦는’ “수건의 삶”을 살고자 했던 본래의 심성을 회복하겠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예속되어 사는 삶을 거부하고, 누군가를 어루만지고 품어주려고 한 본래의 삶을 회복하려는 삶의 태도가 강하게 느껴진다. 더 이상 “불현듯/한 사람에게 길들여져/나를 놓치고 살던 때”(「길들여지다」)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놓치고 살던 때”란 결국 내 고유의 야생성을 잃어버린 삶이 아니던가.

그래서일까. 시집 『저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는 본래의 야생성을 되찾고자 하는 박재학 시인의 시적 여정을 잘 보여주는 시집으로 읽힌다. (중략)

시인은 지금 세상은 여전히 “불덩이 같은 세상”(「발길질」)이지만, “나는 노을의 끝자락을 잡고 조금 천천히 하자고 했다”(「시월 초하루」)처럼 더 이상 평가시스템에 짓눌린 시간이 아니라 ‘다른 시간’을 사유하고 그런 삶을 살고자 실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나는 “계절로 가는 녹색 신호가 바뀌지 않았는데 가을이 게릴라처럼 습격해 가을 타는 것들을 안아줄 새도 없이 작별 인사를 하게 되었다”(「신호위반」) 같은 표현들에서 시인 본래의 감싸고 품어주려는 성정(性情)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후략)

― 고영직(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추천의 글

박재학 시인의 시 세계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냄새의 시학이다. 시인은 시든 꽃병에서 흘러내리는 꽃 냄새나 시계추 위에 앉아 흔들리고 있는 저녁내는 물론이고, 할머니가 발라 수저에 올려주던 갈치 살 같은 냄새를 좋아한다. 신문지로 몸을 덮고 벤치에 누운 노숙자나 일자리가 없어 새벽 인력사무소 간판 아래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냄새도 기꺼이 맡는다. 흙먼지 같은 세상을 걸어 다닌 신발의 고린내, 비닐봉지에 담긴 생선의 비린내, 술 취한 사내들의 방뇨로 풍기는 전봇대의 지린내, 헤엄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시큼한 체취, 온몸에 붙은 파스 냄새, 입안의 단내……. 시인은 그 냄새를 인간 존재의 문제로 인식하고 사회 계층의 상징으로 부각시킨다.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 시집 속으로

수건

닦는다

타락한 순결과 너덜너덜한 양심과

때로는 지려놓은 생활까지

닦고 닦다 스스로 너덜해지면

빨려

줄에서 펄럭이며

낱장으로 흩어지는 바람 냄새를 맡기도 한다

 

흙먼지 뒤집어쓰거나

똥을 치우고 얼룩을 지우다가 가는

수건의 삶을

누구도 귀하게 여기지 않아

마지막엔 불태워지거나 쓰레기통에 처박히지만

부고(訃告)도 없이 사라지지만

오늘도 한 장의 수건이

노동의 표정이 선명한 얼굴을 닦고 있다

저녁 인사

흔들리는 구절초 사이로 초록빛은 출렁이고 오후를 뛰놀던 햇빛은 쏟아져 흩어지고 바위를 흔들며 폭포수는 떨어지고 굴참나무 잎들은 물결 소리를 내며 찰랑이고 방울 소리 날아와 부딪혀 와르르 무너지고 참새 떼는 뭉쳤다 흩어지고 땅거미는 왼쪽부터 쌓여가 나는 거북이처럼 창 쪽으로 느릿한 걸음을 옮겨 기울어지는 하루에게 잠깐 손을 흔들어 주고

희망 사항

새로움이 돋는 내일이면 좋겠다

먹먹한 가슴이 풀어지는 날이면 좋겠다

행복의 보푸라기가 날리다 노을처럼 가면 좋겠다

나는 하품을 하고 너는 수채화를 그리는 동화 같은 날이면 좋겠다

눈부신 나신이 꿈같은 눈에 갇혀 사랑을 나누는 일이 홀연했으면 좋겠다

밤새 내리던 비 멈추고 푸른 하늘로 날아가는 기러기 같은 모습이면 좋겠다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 난 곳을 보듬는 희디흰 손이었으면 좋겠다

무수한 벼랑을 지나 두려움 없이 뛰어다니다 허기를 달래겠다고 밥 한 술 뜨는 날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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