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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간행도서

나태주, 『섬을 건너다보는 자리』

by 푸른사상 2026. 6. 1.

분류--문학(시)

섬을 건너다보는 자리

나태주 지음|푸른사상 시선 228|128×205×8mm|132쪽|13,000원

ISBN 979-11-308-2376-8 03810 | 2026.5.29

■ 도서 소개

온갖 생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아름다운 섬의 노래들

나태주 시인의 시집 『섬을 건너다보는 자리』가 푸른사상 시선 228로 재출간되었다. 풀꽃 시인이라 불리는 그의 시적 여정은 긴 시간을 돌아와서도 한결같이 잔잔하고 따뜻한 생명의 노래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다. 시인의 노래는 우리 마음속에서 온갖 생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섬 하나를 찾으면서 우주가 깃들 수 있도록 한다.

 

■ 저자 소개

나태주(羅泰柱)

1945년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나 공주사범학교와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대숲 아래서』 『누님의 가을』 『막동리 소묘』 『풀꽃』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등이, 산문집으로 『대숲에 어리는 별빛』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등이 있다. 흙의문학상, 충남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향토문학상, 편운문학상, 황조근정훈장,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유심작품상, 김삿갓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 목차

제1부 서러운 봄날

멀리 / 더 멀리 / 싸락눈 / 분꽃 / 새벽 / 섬 / 시인 / 고백 / 첫 친구 ― 현명이 1 / 나이 ― 현명이 2 / 징검다리 1 / 징검다리 2 / 징검다리 3 / 서러운 봄날 / 기미(機微)

제2부 우렁각시

하루 / 희망 / 조선소나무 / 좋은 길 / 꽃 / 우렁각시 / 두부 / 유리 조각 / 낙서 1 / 낙서 2 / 약속 / 하늘의 고리 ― 일찍이 여자들이 도를 닦아 부처 되었다는 말 들어본 적은 없지만 / 목백합나무 그늘 아래 서서 / 손가락과 발가락과 / 들 밖의 길

 

제3부 먹물빛

군소리 / 대화 / 논병아리 / 울안 / 먹물빛 / 직소폭포 앞 / 새들이 왔다 / 꽃사슴 / 논두렁길 / 고삐 / 그 마을에 가서 / 섬을 건너다보는 자리 / 이리도 맑고 고우신 날 / 눈 / 이월에 오는 눈 / 남도 기행

제4부 추억이 말하게 하라

예감 / 오르간 소리 / 어린 세상이런 듯 / 겨울밤 / 밥 생각 ─ 메르헨 / 철 이른 느낌 / 소나무 ─ 메르헨 / 외할머니랑 소쩍새랑 / 추억이 말하게 하라 / 좋았을 때 / 산이 사라지다 / 개구리 / 아침 밥상 / 해 질 녘 / 오막집

작품 해설 : 천지만물의 그윽한 비의 _ 정순진

■ ‘시인의 말’ 중에서

나 어렸을 적, 우리 고향 마을에 한 홀애비 사내가 살고 있었다. 그는 마을의 꼭대기 오두막집에 혼자서 살면서 마당에 갖가지 화초를 심어 가꾸며 살았다. 또 그는 집짐승을 많이 길렀다. 혼자서 사는 사람이니 그러려니 싶었다. 그는 잘 웃지 않는 사내였고 말의 터수까지 적은 사내였다. 언제나 다문 입술에 어둑한 표정으로 골목길을 다녔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를 무서워했다. 어른들은 그가 사는 집을 ‘꼬작집’이라고 불렀고 그를 ‘꼬작집 홀애비’라고 불렀다.

헌데 그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하고 노는 것보다 자기가 기르는 집짐승하고 놀기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가끔 자기가 가꾼 꽃밭에서 꽃을 꺾어다가 그걸로 꽃다발을 만들어 자기네 집 염소나 소의 뿔에 걸어주면서 놀고 있는 것을 어린 우리는 멀리서 숨어서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 뚱한 얼굴에 무척 흐뭇한 웃음까지 지어 보이던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약간 미친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또 그는 저녁이면 통소를 잘 불었다. 더욱이나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면 어김없이 그의 집에서 통소 소리가 들렸다.

이승 아닌 것같이 으슥하고 깊고 먼 달빛 속에 녹아 사내가 부는 통소 소리는 더욱 으슥하고 깊고 멀리 그리고 아득하게 달빛 바다로 돛을 달고 떠나가곤 하였다. 사람들은 더욱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허지만 아무도 그가 부는 통소 소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나 그가 사는 ‘꼬작집’에는 그가 가꾸는 꽃들과 여러 마리의 집짐승들과 통소 소리가 또 그렇게 평화롭게 어울려 정답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시, 나의 시도 이제는 내가 어렸을 적 만났던 ‘꼬작집 홀애비’ 사내가 불던 통소 소리쯤 되었으면 좋겠다. 그가 만들어 그의 소나 염소의 뿔에 걸어주던 꽃다발쯤이었으면 더욱 좋겠다.

작품 세계

『섬을 건너다보는 자리』를 읽으며 나는 시인의 눈을 통해 천지만물의 그윽한 비의를 보았다. 그것은 물론 눈으로만 보아서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귀로 듣고, 코와 입으로 음미하며 온 마음과 온몸을 열어야 가능한 것인데 시인을 따라 그런 귀한 체험을 맛볼 수 있었다. 이런 섬(자연)을 보며 인간을 바라보는 일은 인간의 오랜 지혜이다. 인간의 눈은 밖을 향해서만 열려 있으니 우린 하늘에, 정화수에, 사람에, 자신을 비추어볼 수밖에 없다. 우리 마음속에서 온갖 생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섬 하나를 찾는 일은 우리에게 우주가 깃들 수 있도록 하는 일이리니, 우리의 몸과 마음을 천지만물의 집으로 삼는 일인 것이다.

― 정순진(문학평론가, 전 대전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두부

 

푸슥슥 떡가루 눈 내리는 아침

개울가 길을 막아 만든 간이 시장통

겨울인데도 알몸에 짐승 털옷만 걸친

김희선이란 어린 여배우

저 혼자 좋아 배꼽을 내놓은 채

키들키들 웃고 있는 화장품 가게 앞을 지나

김이 무럭무럭 나는 두부 함지가 보이길래

하도 먹음직스러워 뒤돌아보았더니

난 또 누구시라고?

그전에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감나무 두 그루 서 있던 우리 집을 찾아

자주 생선 함지 이고 드나들던

그 아주머니가 아니신가

지도 뉘기신가 해꾸먼유 모처럼 만난

반가움에 함박꽃 웃음을 무는 중늙은이 아낙네

두어 개 모스라진 앞이빨

추위에 벌겋게 부어오른 두 볼따구가

아무래도 두부를 닮았다

큼직큼직 가로 세로로 칼질만 되었을 뿐

아직은 뜨끈뜨끈 온기도 남아 있을

두부를 바라보며 나도 두부 장수 아주머니에게

먹음직한 두부쯤으로

보여졌으면 좋겠구나 생각해 본다.

 

 

들 밖의 길

 

한 사람이

걷고 걸어서

들판에 가늘은

길이 하나 생기고

그 길을 따라 새소리며

앉은뱅이꽃 냉이풀꽃서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앉고

이슬의 깃발을 든 각시풀들도

마중 나오고

날 저물어 밤이 오면

하늘의 달님이며

별들도 내려와 그 길을

비춘다.

 

 

섬을 건너다보는 자리

 

가다가 강물이

흘러가다가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다보고 문득

잊어버린 생각이라도 찾아낸 듯

흙과 모래와 자갈돌 불러모아

조그만 섬을 이루고

풀과 나무를 기르니

 

가다가 물에 사는 무릇 고기와

목숨 지닌 것들이 지나가다가 잠시

머뭇거리며 문득

심심해지기라도 한 듯

그 섬 기슭에 깃들여

몸을 부비며 살아가니

 

이 얼마나 보기 좋은

세상입니까?

게다가 철 따라

여섯 발 가진 곤충이며

두 발 지닌 새들까지

찾아와 지절거려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런

사건이겠습니까?

 

사람들이시여 우리 또한

살아가다가 땀 흘리며 가쁜 숨

몰아쉬며 살아가다가

더러는 무릎 꺾고 주저앉아

마음속 고즈넉한

섬이라도 한 채 찾아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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