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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생각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송영택 옮김, 『말테의 수기』

by 푸른사상 2026. 5. 27.

분류--문학(소설), 독일문학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송영택 옮김|세계 문학을 읽는다 12|146×210×17mm|288쪽

19,000원|ISBN 979-11-92149-75-2 03850 | 2026.5.22

■ 도서 소개

릴케의 문학과 인생에 대한 고민을 담은 유일한 장편소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반자전적 장편소설 『말테의 수기』(송영택 옮김)가 <세계문학을 읽는다 12>로 출간되었다. 19세기 후반, 낯선 도시 파리를 방황하는 청년 말테의 시선을 통해 릴케는 인간과 인생에 대해 질문하고 그 해답을 구하고 있다.

■ 저자 소개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1875~1926

20세기 최고의 독일어권 시인 중 한 명. 소년 시절부터 꿈과 동경이 넘치는 서정시를 썼고, 루 살로메의 영향과 예술가들의 교류를 통해 문학에 깊이를 더했다. 『형상시집』과 『시도시집』을 통해 독자적인 시의 경지를 개척하였고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같은 대작을 남겼으며, 특히 『말테의 수기』는 그가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 옮긴이 소개

송영택

193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53년 『문예』에 시 「소녀상」이 추천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과에서 독일 문학을 공부했고, 한동안 그것을 가르치기도 했다. 『너와 나의 목숨을 위하여』라는 시집을 펴냈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상당수 번역했다.

■ 목차

■ 책머리에

■ 등장인물

9월 11일, 툴리에 거리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회상하다

젊은 무명 시인

우르네클로스터의 외갓집

국립 도서관에서

마음속의 불안과 공포

어머니와 잉게보르크

어린 시절 보았던 환각

어머니의 죽음과 친척들에 대하여 회상하다

그리운 아벨로네

여인들의 슬픈 사랑

슐린 가족을 방문하다

외할아버지 브라에 백작

아버지의 죽음과 가문의 몰락

이웃 사람들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다

오트레표프와샤를 대공의 최후

독서에 대해 생각하다

공원의 신문팔이

역사 속 인물에 대한 단상

다시 떠올리는 아벨로네

방탕아의 이야기

■ 작품 이해하기

■ 릴케 연보

■ ‘책머리에’ 중에서

프라하에서 보낸 어린 시절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1875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이지만 그때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방 도시였다. 릴케는 이곳에서 소수 지배 계층인 독일인이었다. 아버지는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철도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부유한 가문 출신인 어머니는 허영심이 강하고 욕심이 많았으며 시와 예술을 동경하였다. 어머니는 릴케보다 먼저 태어나 일찍 죽어 버린 딸 대신 릴케를 애지중지 키웠다. 어린 시절의 릴케는 머리를 기르고 여자아이의 옷을 입어야 했다. 어머니는 릴케에게 어릴 때부터 시를 외우게 하고 프랑스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릴케는 그러한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실제로 시인이 되고 싶었던 어머니의 소원을 본의 아니게 이루어 준 셈이다.

한편 아버지는 군인이 되고 싶었던 소망을 아들에게 투영했다. 열한 살에 릴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육군 유년 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했다. 학교 성적은 좋았지만 떠들썩한 기숙사 환경이나 엄격한 훈련 같은 것은 섬세한 소년에게는 괴로운 일이었다. 결국 육군 고등실과학교에 진학한 지 1년 만에 릴케는 학교를 중퇴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21세 때 프라하를 떠나 뮌헨의 대학에 입학했는데, 그 이후로 다시는 프라하로 돌아가지 않았다.

루 살로메와 로댕의 영향

뮌헨에서 릴케는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만났다. 릴케보다 열네 살 연상이고, 철학자 니체가 사랑했을 정도로 지혜로운 여성인 살로메와 교류하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살로메의 고향인 러시아로의 여행 또한 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릴케는 살로메의 권유로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세프 마리아 릴케’라는 이름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로 바꾸었고, 살로메의 남편과 셋이서 떠난 첫 번째 러시아 여행에서는 톨스토이를, 살로메와 둘이서 떠난 두 번째 여행에서는 파스테르나크와 드로진 등 러시아의 문호들을 만났다.

1899년과 1900년의 두 차례에 걸친 러시아 여행에서 돌아온 릴케는 보르프스베데라는 독일 북부의 예술가 마을에서 조각가 클라라 베스토프를 만나 1901년에 결혼했다. 그러나 그 이듬해 아내와 딸을 두고 혼자서 파리로 떠나 아내의 스승인 조각의 거장 로댕의 평전을 쓰게 되었다.

로댕과 화가 세잔의 영향을 받아, 이 시기의 릴케는 영감(靈感)에 의지하지 말고 끊임없이 창작할 것. 아름다운 것만 지향하지 말고 확실히 존재하는 것을 만들어 낼 것, 그렇게 하면 아름다움은 자연히 거기에 깃들이게 되리라는 예술관을 확립하게 된다.

또한 릴케는 사랑에 대해서도 자기만의 신념을 세웠다. 사랑을 받는 것은 타 버리는 초와 같지만, 사랑하는 것은 끝없이 타오르는 등불 자체라고 보고, 일방적으로 끝없이 베푸는 사랑이야말로 사랑의 극치라고 생각했다. 반자전적 소설 『말테의 수기』에는 그러한 릴케의 가치관이 드러나 있다.

신에 대한 찬미와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고백

만년의 릴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무상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과업에 자신의 사상과 예술의 모든 것을 쏟아서 『두이노의 비가』를 쓰기 시작한다. 『두이노의 비가』는 장중하고 격심한 한탄의 여운과 독특한 이미지의 결정(結晶)이라는 점에서 20세기의 시 가운데에서도 돋보이는 걸작으로서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한 통찰과 존재론적 불안, 신에 대한 찬미와 유한한 인간으로서의 고백 등 릴케 문학의 본령이 담겨 있다.

릴케의 건강은 계속 악화되었고, 1926년에는 장미 가시에 찔린 상처가 패혈증으로 악화되어 그해 12월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 출판사 리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사후 100주기를 맞이하여 출간되는 그의 반자전적 장편소설 『말테의 수기』. 주인공인 말테 라우리스 브리게는 덴마크 귀족 출신의 청년 시인이다. 한때 기세가 높았던 가문은 지금은 몰락했고 말테는 낯선 도시 파리의 하숙방에 기거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시를 쓰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대도시이지만,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죽기 위해 몰려드는 암울한 도시이기도 한 파리를 관찰하면서, 말테는 유년 시절의 기억, 내면의 불안과 동요, 신앙, 질병과 가난, 역사와 예술 등 70개가 넘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릴케는 말테의 시선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생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며 그 해답을 탐구한다.

『말테의 수기』는 명확한 기승전결이 있는 사건과 갈등을 빚는 인물들 등장하는 소설이 아니라, 주인공 말테의 사색과 기억, 단편적인 일상과 그에 대한 명상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소설이다. 이 책에서는 독자들이 이 작품에 조금이라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단락을 나누어 소제목을 붙이고, 단어 풀이를 추가했다.

■ ‘작품 이해하기’ 중에서

덴마크의 무명 시인이 대도시에서 겪은 고민과 혼란의 기록

『말테의 수기』는 말테 라우리스 브리게라는 덴마크 귀족 출신의 청년 시인이 낯선 도시 파리에서 남긴 수기의 형식으로 된 소설이다. 말테는 파리에 머무르면서, 낮이면 시내를 방황하고 밤이면 글을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유년 시절은 할아버지 브리게 시종장의 죽음, 외할아버지 브라에 백작가에서의 알 수 없는 체험들, 그리고 젊은 나이에 죽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어머니의 막내 여동생인 아벨로네를 동경하고 그리워하던 추억도 있다.

말테는 유년 시절의 기억, 내면의 불안과 동요, 신앙, 질병과 가난, 역사와 예술 등 70개가 넘는 주제에 대해 글을쓰고 있다. 그는 책을 좋아하여 센 강변의 헌책방 앞을 지나다니는 것을 즐기고, 국립 도서관에서 시를 읽으며 그 시인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말테는 과거를 떠올린다. 덴마크의 귀족 가문, 병으로 신음하는 친척들, 음산한 성, 죽음이 일상처럼 존재하던 어린 시절 등을. 특히, 외할아버지와 친족들의 죽음으로 인해 말테는 죽음을 추상적 개념이 아닌 구체적 체험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말테는 타인의 죽음을 보며 자신의 죽음을 연습한다.

보들레르의 산문시, 특히 『시체』 등을 본보기로 하여, 아무리 추악하고 비참한 것도 외면하지 않고 불안을 철저히 체험하려는 말테에게는 바깥 세계와 내면 세계, 과거와 현재가 모두 동시에 불안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까 소설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이나 기괴한 인물이 실제인지 아닌지 따질 필요 없이, 그저 말테의 “불안의 어휘”로 읽으면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을 원서로 읽는다면 철저하게 정밀한 묘사에 놀랄 것이다. 한 획 한 점도 소홀히 하지 않는 치밀한 시적 산문이란 이를 두고 말함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말테는 성경 속의 돌아온 탕아 이야기를 인용한다. 탕아는 절망한 나머지 나를 사랑하면 안 된다고 눈물을 흘린다. 사람들은 그를 오해하지만 그는 세상의 그 누구도 자기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직 하느님만이 그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하느님도 좀처럼 그를사랑하지 않으려 한다.

릴케가 『말테의 수기』를 쓰기까지

『말테의 수기』는 릴케가 남긴 유일한 소설이지만, 일반적인 소설과는 다르게 사건 중심의 줄거리가없다. 『말테의 수기』라는 제목에서 알 수있듯이 일기 형식의 글이다. 짤막한 글이나 편지, 그 밖에 말테가 떠올리는 여러 가지 여러상념들이 나열되어 있다.

릴케는 1903년부터 1904년까지 로마에 머물면서 얀스 페테르 야콥센과 쇠렌 키르케고르의 저서를 읽기 위하여 덴마크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전에 파리에 있을 때 겪었던 일들이 아직도 마음속에 강렬한 여운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 적어 놓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그 글의 주인공은 야콥센과 같은 나라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릴케는 처음에는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의 에발트와 그의 친구가 나누는 대화처럼, 어느 청년이 덴마크의 말테라는 젊은 시인의 이야기를 소녀에게 들려 준다는 형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청년이 무심결에 그만 말테가 남긴 일기가 있다고 말하고, 그 때문에 소녀의 채근에 못 이겨 말테의 수기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릴케는 소녀와의 대화는 뒷전으로 돌리고 그 대신 말테의 수기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몇 해 동안은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으며, 1908~1809년에야 다시 진지하게 여기에 매달려서 1910년 라이프치히에서 완성, 출판했다.

■ 작품 속으로

추억만 가지고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추억이 우리의 피가 되고, 눈이 되고, 표정이 되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것이 되고, 이제는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게 되어서야 비로소 뜻밖의 우연한 순간에 시 한 편의 첫 단어가 추억의 한가운데에서 불쑥 솟아나고 그로부터 시가 시작하는 것이다. (30쪽)

보들레르의 「시체」라는 기이한 시를 너는 기억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맨 마지막 연을 빼고, 그는 조금도 거짓말을 쓰지 않았다. 그런 일이 생겼을 경우 그는 어떻게 했을까? 공포 속에서, 오직 혐오스럽게만 보이는 모든 존재를 꿰뚫는 타당한 존재를 보는 것이 그에게 지워진 부담이었다. 선택도 거부도 없었다. 너는 플로베르가 수도사 이야기 『성 쥘리앵의 전설』을 쓴 것을 우연이라고 믿는가. 나병 환자의 침대에 누워서 애인의 잠자리처럼 따스한 마음의 온기로 환자의 몸을 녹여 준다 ― 거기까지 결심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정말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 결심은 틀림없이 훌륭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내가 파리에서 환멸에 슬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다. 아무리 추악한 현실일지라도 현실을 위해서라면 나는 스스로 모든 꿈을 묻어 버릴 수가 있다는 것에 나 자신이 놀라고 있을 정도다.

아, 이것을 조금이라도 너에게 적어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현실이라는 것을 친구와 나눠 가질 수 있을까. 아니, 현실은 고독 속에 가두어 두지 않으면 안 된다.(81~82쪽)

나는 때때로 천국은 왜 생겼을까, 죽음은 왜 생겼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가장 귀중한 것을 천국이나 죽음 곁에 소중하게 놓아 두었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잡다한 일이 많고, 소중한 것을 바쁘기만 한 우리의 신변에 놓아 두기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너무나 긴 세월이 흘러 버렸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하찮은 일에 매달리며 자신의 귀중한 것을 어느덧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 공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는 것에 지금은 다만 무서워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을까.(181쪽)

누가 뭐래도 나는 성서에 나오는 방탕아의 전설은 어디까지나 남의 사랑을 거절하려고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온 집안 사람들이 그를 사랑했다. 그는 그렇게 자라났다. 어린 마음에 세상이란 그러한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사람들의 따뜻한 애정에 자기도 모르게 길들여졌다.

그러나 소년이 된 날부터 그는 그 습관을 버리려고 결심한 것이다. 그는 각별히 분명하게 그것을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하루종일 바깥을 돌아다닌다든가, 정이 든 개도 데리고 다니지 않게 된 것은 아마도 가축까지도 자기를 사랑하게 되는 것을 피하려고 그랬을 것이다.(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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