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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간행도서

안준철, 『오래된 아침』

by 푸른사상 2026. 4. 17.

분류--문학(시)

오래된 아침

안준철 지음|푸른사상 시선 224|128×205×8mm|136쪽|13,000원

ISBN 979-11-308-2371-3 03810 | 2026.4.17

■ 도서 소개

연둣빛으로 반짝이는 생의 실록

안준철 시인의 시집 『오래된 아침』이 푸른사상 시선 224로 출간되었다. 시인의 오랜 사유와 언어의 결정체인 작품들은 연둣빛 실록이다. 관조와 성찰의 시간 속에 미래의 죽음까지 넘어서는 삶의 가치를 담고 있다. 깊은 시간성을 통과 중인 시인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영혼의 발자취는 정갈하고 아름답다.

■ 저자 소개

안준철

1954년 전주 출생으로 전남 순천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임했다. 1992년 제자들에게 써준 생일시를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 『생리대 사회학』 『나무에 기대다』 『꽃도 서성일 시간이 필요하다』, 산문집으로 『아들과 함께하는 인생』 『그 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등이 있다. 교육문예창작회와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전주에서 산책가로 살고 있다.

■ 목차

제1부

눈꽃 / 오래된 아침 / 꽃보다 폐허 / 연두 / 등짝 / 나의 애마 첼로를 타고 / 두 여자 / 할머니의 돌 / 어떤 작명 / 오후 / 첫, 분홍 / 산길 쓰는 남자 / 여름숲에서 / 역전시장 정류장에서 / 명태대가리전 / 공지

제2부

의자 / 저녁이 한 일 / 강아지풀을 위하여 / 서리꽃 / 매화나무 근황 / 당번 꽃 / 간절함이란 / 봄을 훔치다 / 나는 꽃이다 / 정체성에 대하여 / 행복 / 살붙이 같다는 말 / 비와 거미줄 / 손님 / 발바닥 꽃

 

제3부

다시, 여수 동백 / 맨발의 사랑 / 꿀차 / 정자나무집과 가을과 하루살이 / 이중주 / 저녁이라는 장르 / 잠이 눈처럼 와주기를 / 사랑이의 가을 / 강천사 가는 길 / 나뭇잎 얼굴 / 죽은 물고기를 위한 노래 / 다음에 궁남지에 올 때는 / 착시 / 황홀의 시 / 내 안의 하양

제4부

첫차 / 징검다리 / 가슴으로 한 말 / 무용(無用)에 대하여 / 쇠의 침묵 / 쌀죽 / 비를 혼자 놀게 두고 / 잠자리와 고요에 대하여 / 노란 킥보드의 노숙 / 꽃을 보고 온 날 / 관람료 / 흔한 가을 / 그루터기 그림자 / 공백기 / 이른 봄 / 꽃들의 영정사진

▪ 작품 해설 : 이 깊은 시간성의 언어 _ 오민석

■ ‘시인의 말’ 중에서

다시 봄이다.

오래전, 어머니가 연두인 나를 바라보셨듯이

연두의 연두의 연두인 첫 손주 유담이를

할머니가 된 아내가 바라보고 있다.

무얼 더 바랄 것인가?

다만, 내 가난한 시가 세상의 마을로

한 발짝만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기를!

■ 작품 세계

시인에게 시간성에 대한 의식을 불러일으킨 모티프는 “연두”이다. 시인에게 연두는 어린 생명과 희망과 봄을 가리키는 시간의 지표이다. 시인은 이미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 어머니에게 연두는 먼 과거이며 유년의 시인이고, 노년의 시인에게 연두는 현재이며 시인의 “첫 손주 유담이”(「시인의 말」)이다. 그렇지만 연두는 과거-현재-미래의 선형linear적 시간에서 벗어난 시간이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비선형적으로 오가며 모든 시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것은 반복되며 부활하는 시간이며 모든 시간에 힘을 불어넣는 에너지이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시간이라기보다 차라리 사건이며 시인을 본래적 삶으로 끊임없이 회귀시키는 힘이다. (중략)

이 시집이 보여주는 안준철 시인의 삶의 모습은 대체로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정제되어 있다. 그는 삶의 작은 파도들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관조와 성찰의 깊은 시간성 속에 자신을 담가 놓는다. 그는 수시로 죽음의 미래를 환기하며, 죽음의 필연성 앞에서도 진정으로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궁구한다. 죽음의 시간성에 대한 그의 사유는 존재의 본래성을 지속적으로 환기하고, 그런 과정에서 그는 마침내 죽음마저도 ― 소멸이 아닌 ― 새로운 가능성의 시간으로 읽어낸다. 이 시집은 마치 수도사처럼 이렇게 깊은 시간성을 통과 중인 한 영혼의 아름다운 발자취이다.

― 오민석(문학평론가 · 단국대 명예교수)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한 편의 시를 위해 하루를 평생처럼 걷는 시인이 있다. 자전거에 심호흡을 불어넣은 애마 ‘첼로’와, 생철학의 상징어인 ‘사랑이’가 증인이다. 걸음마다 고요하고 정갈한 맨발의 숨결 속에서 자연의 육성인 생명 찬가가 낮고(깊고) 잔잔하게(따스하게) 울려 퍼진다. 안준철에게 시는 연꽃과 함께 쓰는 일기이자 생사의 간극을 뛰어넘는 유서이며, 연둣빛 생의 실록이다. 그는 소슬한 안갯속 겨울 길도 화창한 연둣빛으로 숨쉬고 걸으며 생각한다. 그 청명한 상춘의 율동 속에서 무지개 일곱 색 너머의 여색(餘色)을 밝혀내는 현미경에게만 그의 시는 ‘격의 없는 존엄’의 아랫목을 허락한다. 삼라만상은 아침이슬 한 방울에서 신비로운 저녁노을의 성찬을 음미하는 그에게 종자기(鍾子期)의 지음(知音)을 부여한다. 이런 그에게 시에 기교나 난해를 요구하는 것은 상투적 시론에 오염된 반자연적 사족일 뿐이다. 안준철의 시는 ‘산은 산이다’를 ‘산은 물이다’로 재해석한 후, 다시 ‘산은 산이다’로 귀환한 오랜 사유와 언어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돌이킨 ‘산’이 말라르메의 ‘실어’와 김현승의 ‘절대고독’을 순례한 만법귀일의 순수에 터잡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 김규성(시인)

■ 시집 속으로

오래된 아침

아침 일곱 시 반

밤새 내 투정을 받아주느라 흐트러진

이부자리 가지런히 해놓고

아침에 눈 뜨기가 무섭게

읽어댄 책도 제자리에 얌전히 두고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선다

이렇게 내 발로 걸어 나와

아침을 맞으러 갈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한 달 두 달은 아니겠고

일 년 이 년도 아니겠고

그 이상은 모르겠고

십 년인들 이십 년인들

살아온 날을 생각하면

눈 깜짝할 새겠지만

딴은, 이월에서 삼월이 얼마나 멀더냐

헐벗은 가지에서 새 움이 돋고

매화에서 살구꽃까지가 얼마나 멀더냐

어젯밤 운동장을 돌다가 말고

맨발로 서서 본 별빛은

멀고도 먼, 아슬하고도 아슬한

과거의 과거의 과거가 보내온 윙크인 것을

저 우주 끝에서 막 당도한

이 오래된 아침이라니!

연두

이런 생각을 왜 처음 해보는 것인지

사흘 전, 귀 빠진 날이었다

오랜만에 동네 뒷산에 올랐다가

어머니 생각이 난 것인데

연두 때문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어머니도 날 낳으시고

며칠 뒤라도 몸이 우선해져서는

마당에 나오셨다가

연두를 보셨겠구나

나도 어머니에겐 연두였겠지만

아니, 내가 더 연두였겠지만

먼 산의 연두보다도

더 연두였겠지만

아, 당신 품 안의 연두와

봄 산 먼발치의 연두를

번갈아 바라보셨겠구나

갓 오십에 꽃잎 떨구신 어머니는

살아보지 못한 나이 칠십이 되어서야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인지

아른아른한 봄날

그립습니다, 어머니!

무용(無用)에 대하여

 

정년 퇴임 후 십 년이 지났다

휴일도 아닌 평일에 점심 먹고 집을 나와

시내버스 타고 전주한옥마을에 와서

오후 내내 꽃소식이 당도했는지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어슬렁거리는 동안

나를 찾는 전화가 한 통도 없었다

이 한산함이라니!

꽃들의 영정사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도 못 되고

만 사흘을 피다가 갔구나

어제 찍은 사진은 영정사진이었네

 

꽃 진 자리에 잠자리가 앉아 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잠자리가 찾아올 것이다

내게 잠자리를 보내신 이가

너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다가 왔느뇨

물으시면 할 말이 하나 더 생겼다

전에는 이렇게 대답을 할 참이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왔습지요, 라거나

또 몇 가지가 있었다

꽃들의 영정사진을 찍어주다가 왔노라고

이제는 말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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