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문학(산문)
이 시대의 가짜와 진짜
이익섭, 정진홍, 김경동, 이상일, 이상옥, 안삼환, 곽광수, 김명렬, 정재서, 장경렬 지음
숙맥 18|153×224×15mm|240쪽|20,000원
ISBN 979-11-308-2369-0 03810 | 2026.4.8
■ 도서 소개
이 땅의 인문학자로서의 남은 소명
숙맥 동인지 18집 『이 시대의 가짜와 진짜』가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필자들은 AI가 인류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지 예측하기 어려운 혼란의 시대에 한국 인문학자들의 소명과 책임을 이야기한다. 원로 학자들의 묵직한 사유와 성찰이 담긴 글들이 돋보인다.
■ 필자 소개(전공 및 대학)
이익섭_ 국어학 서울대학교
정진홍_ 종교학 서울대학교
김경동_ 사회학 서울대학교
이상일_ 독문학 성균관대학교
이상옥_ 영문학 서울대학교
안삼환_ 독문학 서울대학교
곽광수_ 불문학 서울대학교
김명렬_ 영문학 서울대학교
정재서_ 중국고전문학 이화여자대학교
장경렬_ 영문학 서울대학교
■ 목차
▪ 책머리에
이익섭_ 상허와 모국어
정진홍_ 죽음보다 무서운 것
김경동_ 나이가 뭐길래
이상일_ 아흔두 살의 낭만적 실존적 고독감 / 문화기획자 강준혁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 <구름이 흐르는 숲> 관람 수상기
이상옥_ 별의별 것을 입에 넣던 시절 / 사라진 들꽃들을 곡함 / 바람꽃이라고? / 대입 무시험 전형 낙방기 / 대학 초임 교원 시절 전후 / 이 시대의 가짜와 진짜
안삼환_ ‘문림의향’에서 희망을 보다 / 부여에 다녀와서 / 경산의 코발트 폐광에 다녀와서 / 시간강사 / ‘완산 녹두님’의 귀띔
곽광수_ 프랑스 유감 IV-12
김명렬_ 휴대전화 (2)
정재서_ 죽음과 관련된 세시풍속의 신화, 종교적 기원 / 망국, 살아남은 자의 슬픔 / 한 온정주의자의 부끄러운 고백
장경렬_ 좋아하는 수필을 찾아서 / 들꽃과도 같은 수필과 마주하여 / 인공지능기술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 엮은이 후기
■ 숙맥 동인 모임 연혁
■ ‘책머리에’ 중에서
우리 동인들은 오랜 세월 동서양에서 전승되어 온 인문적 가치와 규범을 나름대로 후학들에게 전수하였다고 믿고, 지금은 한발 물러서서 시대의 흐름을 관조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만약 이 땅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인문적 가치와 규범이 위기에 처할 때, 젊은 인문학자들이 이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도록 그들을 돕고 성원해야 할 소명을 통감한다. 비록 우리 동인들이 이제는 닥쳐오는 위기에 주체로서 바로 일선에 뛰어들 기회가 없을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지금까지 이 땅의 스승들인 원효대사와 퇴계와 율곡, 그리고 혜강과 수운이 물려준 제반 가치들을 수호하고, 우리 인류의 미래의 삶을 더욱 자유롭고 윤택하게 만드는 데에 이 땅의 인문학자로서의 남은 소명을 성의정심(誠意正心)으로 계속 수행해나갈 것이다.
■ 책 속으로
‘상허’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모국어’와 엮인다. 그의 글이 우뚝함은 결국 그의 모국어 사랑이 그 바탕에 있기 때문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이익섭, 「상허와 모국어」, 17쪽)
하지만 죽음보다 무서운 기억의 상실을 두려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 다행스럽다. 이 정황에서 우리에게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다른 일이 아니다. 아직 기억의 상실을 염려하는 지금, 아직 기억을 살아가는 지금, 마음껏 한 없이 너그럽고, 착하고, 맑고, 따듯하고, 넉넉하게 그 지금을 살아가는 일이 그것이다. (정진홍, 「죽음보다 무서운 것」, 70쪽)
문명을 창안하여 기술 혁신을 성취하고 삶의 생산성을 고양하게 됨으로써 인류는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는 것이 역사적 현실입니다. 이를 계기로 인류는 장수라는 현상에 가치관을 얹어 누구나 가능하면 오래 살 수 있기를 염원하는 시대로 오게 된 것입니다. (김경동, 「나이가 뭐길래」, 75쪽)
굿의 제단이, 하늘과 땅이 너를 기다리며 찾고 있다. 현실적으로 네가 돌아오도록, 그래서 모두 연결되도록. 누군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찾으며 결합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결합의 매듭이 바로 현실의 우리라면 화가의 점과 선이나 무용가의 몸이나 춤은 잔디밭이나 대나무 소나무나 숲이나 하늘과 땅, 심지어 관객들조차 서로 연결되기를 염원하면서 이곳에 모인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음악에 맞추어 리듬을 따라 춤추기만 하면 그 동안 흩어졌던 우리와 세계와 우주는 모두 맺어지고 엮이고 매듭을 이룬다. 잘 춤추면 그런 태초의 신화가 이루어진다. (이상일, 「<구름이 흐르는 숲> 관람 수상기」. 103쪽)
인공지능과는 달리 인간의 두뇌는 태생적으로 완벽하지 못하다. 완벽하다면 인간의 지능이 아닐 것이다. 서양에는 “호메로스도 깜빡할 때가 있다”는 속담이 있는데 만고의 문호인 호메로스의 작품에도 결함이 있거늘 일반 작가들에게 어찌 결함이 없겠느냐는 뜻이다. 완벽하지 못함은 인간의 숙명적 결함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모자람이 있기에 우리는 인간에게 또는 인간의 창작품에 더 끌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상옥, 「이 시대의 가짜와 진짜」, 136쪽)
‘문림의향’인 장흥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희망’이 생긴다. 독일의 철학자 블로흐가 말한 저 ‘선현(先顯)’이 보이는 듯하니까 말이다. ‘선현’이란 먼 바다의 수평선에 맨 먼저 살짝 보이는 입항 선박의 돛대 깃발 같은 것이며, 아직도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미래에의 ‘희망’이다. (안삼환, 「‘문림의향’에서 희망을 보다」, 145-146쪽)
일본에 대한 그의 큰 호감을 접해 다소 곤혹스러움을 느끼면서, 나는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월남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것처럼 일본의 식민지였으며,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우리의 황후를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기까지 했고, 우리말을 없애려고까지 했는데, 이런 잔혹하고 부조리한 일들을 프랑스가 월남에 가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내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곽광수, 「프랑스 유감 IV-12」, 171쪽)
옛날 선비는 손에 늘 책을 쥐고 있다 하였는데, 나는 제법한 선비도 못 되지만, 손에 늘 전화기를 쥐고 있으니 “수무석기(手無釋機)”라고나 할까 하고 자조(自嘲)하지만, 시력이 좀 버텨 주어 그나마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도 오래 누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김명렬, 「휴대전화 (2)」, 180쪽)
그럼에도 나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겪었던 망국민으로서의 쓰라린 경험이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겠다는 각오와 더불어 타자에 대해서도 우리와 똑같은 고통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면 극복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질 들뢰즈가 생태적 평형의 세계를 위해 ‘동물-되기’와 ‘여성-되기’를 주장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소이((所以))에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정재서, 「망국, 살아남은 자의 슬픔」, 192쪽)
수필은 시나 소설만큼 화려하지도 않고 요란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작위적이지도 않아서, 이를 읽고자 하는 사람만큼이나 쓰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수필이나 수필가가 널리 명성을 떨치는 시나 시인 또는 소설이나 소설가보다 수적으로 우세한 것은 아닙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요란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작위적이지도 않기란 작위적인 동시에 화려하고 요란하기보다 한결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장경렬, 「들꽃과도 같은 수필과 마주하여」,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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