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문학(시)
시로 쓴 생물도감
원종태 지음|푸른사상 시선 219|128×205×6mm|114쪽|12,000원
ISBN 979-11-308-2344-7 03810 | 2025.12.10
■ 시집 소개
자연의 보석을 시로 완성한 생명의 노래들
생태활동가 원종태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시로 쓴 생물도감』이 푸른사상 시선 219로 출간되었다. 시인의 고향에 자생하는 생물들을 총체적으로 담아낸 ‘생물도감’이라 할 만한 시집으로 자연을 향한 시인의 언어는 성숙하고 시 세계는 불경의 구절처럼 넓고도 깊다. 시인이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고 함께해온 결실로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목소리를 주옥같은 보석들로 담아낸 귀중한 시집이다.
■ 시인 소개
원종태
경남 거제도 산골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보냈다. 1994년 『지평의 문학』에 「향우회」 외 7편을 게재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풀꽃 경배』 『빗방울 화석』 『멸종위기종』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경남작가회의 회원이다. 고향에서 작은 책방과 생태연구소를 운영하며, 생태계 보존 운동을 하고 있다.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작은 도서관 / 독수리의 부고 / 뻐꾸기는 왜 아프리카로 날아가나 / 동박새 한 마리가 지구를 멈춘다 / 숲새 / 칼새 / 바위를 품는 새를 보았다 / 굴뚝새 / 호랑지빠귀 우는 밤 / 새를 심었는데 꽃이 피었다 / 흰눈썹황금새의 탄생 / 조류 충돌
제2부
일보일배 일체투지 / 달팽이 성자 / 충무띠달팽이 / 도토리거위벌레의 낙법 / 늦반딧불이 / 수달 천년 / 인자한 고양이 씨 / 고라니 눈에 찍히다 / 귀뚜라미 / 연목구어 / 물고기 풍경 / 덤붕
제3부
나도수정초 / 흰진달래 / 해당화 / 바람꽃 / 수국 / 흑매 / 감꽃 / 산벚꽃 / 단풍 / 음의 나무 / 족도리풀 / 진달래 / 꽃삽 / 음지를 사랑한다 / 연꽃씨 한 알 / 괭이눈 / 가는잎그늘사초 / 물매화의 사랑법 / 그 꽃 / 감나무 빌딩 / 나무의 슬하
제4부
모퉁이에 달맞이꽃이 피어 있는 약국 / 숲속 책방 / 김목신 씨 / 달의 뒷면 / 세상에 이런 일이 / 탑 / 평형 / 불일폭포 / 우포늪에서 온 엽서 / 가라산 코끼리 바위 / 은어는 돌아오지 않는다 / 바닷가 독수리 식당 / 기수역에서 / 거제 노자산
▪ 작품 해설 : 풀잎의 사전, 새의 문장 : 생명적 상상력 _ 김하기
■ 시인의 말
숲은 이를테면 서양식으로는 생물 코뮌
동양식으로는 생명 그물 인드라망
주석이 필요 없는 경전
해설이 필요 없는 고전으로 가득한 도서관이다
나드는 문도 없고 벽도 없고 지붕도 없다
무엇이든 읽어도 되지만 읽지 않아도 좋다
이곳에서 독서법은 걷는 것과 침묵하는 것
숲은 과묵하여 우주의 푸념을 다 들어주고는 소문 내지 않는다
그리하여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비밀은 영원에 가깝다
숲을 걸으면서 틈틈이 만난 것들로
네 번째 시집을 낳았다
쓸모없는 것들,
다시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
■ 작품 세계
이번 4집은 3집에 이어 그의 고향에 자생하는 생물들을 총체적으로 담아낸, 말 그대로 ‘생물도감’이라 할 만한 시집이다. 그의 1집부터 4집까지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을 향한 그의 언어는 점점 더 성숙해지고, 시적 세계는 불경의 구절처럼 넓어지며 깊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는 그가 생을 시와 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고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바라보아온 그의 오랜 태도가 만들어낸 결실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시 한편 한편이 주옥같은 자연의 보석들로 그의 생물도감을 완성하고 있다. (중략)
시집은 네 개의 부로 구성된다. 1부는 새에 관한 탐구, 2부는 동물로 범주를 확장하고, 3부는 식물도감, 4부는 결국 ‘인간’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구성은 이전 3집에서도 시도되었으나, 이번 시집에서는 분류 체계가 더욱 명료해지고, 자연을 구성하는 생명들 사이의 위계와 연관성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즉, 『시로 쓴 생물도감』은 관찰의 범위를 자연 전체로 확장하면서도 인간을 그 생태적 연속선 위에 위치시키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오래된 단절을 시적 언어로 치유하고 재구성한다. (중략)
원종태 시인은 이 시집에서 자연과 인간을 서로 성찰하는 거울로 삼고, 새와 동물, 식물의 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여 갓 잡아 올린 은어와 같이 싱싱한 존재로 건져 올렸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독자는 자연에 맞춰 자연스레 속도를 늦추게 된다. 시인이 「동박새 한 마리가 지구를 멈춘다」에서 전한 것은 과장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게 하는 자연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시로 쓴 생물도감』은 느림의 기록이자, 존재가 말을 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한 시인의 집중된 귀의 역사다. 독자는 책을 덮는 순간, 자연의 목소리가 여전히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깨닫는다. 이처럼 그의 시에는 깊은 울림과 긴 여운이 담겨 있다.
― 김하기(소설가)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동박새 한 마리가 지구를 멈춘다
출근길이었는데 차들이 멈춘다 갑자기
막 둥지를 벗어난 노란 주둥이 한 점
도로 황색 중앙선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파르르 눌어붙어서 떨고 있다
도롯가에서는 엄마 새가 동동
찍찍 힘을 내라고 울어 쌓는데
근처 밭에는 투명한 그물이 날개를 펴고
산기슭에는 길냥이 밥그릇이 입을 벌리고
세상은 참 험하다
차들은 일제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멈춰서 잠깐 멈춰서는
동박새 새끼를 응원한다
엄마한테 가라 어서 숲으로 가라
엄마가 기다린다 엄마가 울고 있다
집으로 가라
손 한 모금 크기밖에 되지 않는 동박새
얄궂은 새 한 마리가 가끔은
지구를 멈추기도 한다
해당화
당신은 무슨 깃발 아래서 싸우나요
해당화가 정색을 하고 묻는다
꽃 피는 일이란 예비된 패배
아무런 승산이 없는 시간
그냥 흔들리는 것 그러나
진력을 다해 피는 것이라고 대답하려다가
모래언덕처럼 하나마나한 말의 끄나풀이여
청라의 물결 위에 붉은 잎 진다
당신은 무슨 깃발 아래서 싸우나요
꽃 피는 당신이 깃발이면서 왜 묻는가
숲속 책방
산골 마을에 책방을 열었다
책 한 보따리만 한 두어 평에
소일 삼아 텃밭을 일구고
배추 모종을 얻어다 심었다
처음 보기에 듬성듬성했던 것이
자라기 시작하자 쏘물다
어깨들끼리 멱살잡이다
바람이 싸움을 말려보지만
잘 통하지 않는다
온갖 벌레들이 숨기에 좋다
벌레들이 배추 잎을 갉아 먹는 소리가
책 읽는 소리 같기도 하다
약두구리 텡쇠 병추기 물컹이
지나가는 할매들한테 남세스럽다
약 안 치면 못 묵는다는데
조금은 미안한 일이어서
쭈그리고 앉아 벌레를 잡는다
잡으려다 또 미안해져서
그냥 이름이라도 찾아서 불러본다
달팽이 대고둥 산민달팽이
노린재 산바퀴 배추흰나비 팔랑나비
섬서구메뚜기 각시메뚜기 청솔귀뚜라미
깡충거미 넓적배사마귀 청개구리
나의 친근한 벌레들
텃밭에 생물 도감이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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