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5 신간도서

신문수, 『파란의 시학: 물의 풍경들』

by 푸른사상 2025. 12. 6.

 

분류--문학 일반, 문예미학

파란의 시학: 물의 풍경들

 

신문수 지음이론과비평총서 26152×224×17mm296

28,000ISBN 979-11-308-2343-0 93800 | 2025.11.30

 

 

■ 도서 소개

 

물에 대한 인간 상상력의 지형도

 

신문수 교수의 파란의 시학: 물의 풍경들이 푸른사상의 <이론과 비평총서 26>으로 출간되었다. 물에 대한 이론적 성찰을 토대로 벼루에 담긴 먹물에서부터 길바닥에 고인 빗물, 논두렁의 물, 그리고 우물 등을 시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색으로 기술하고 있다. 아울러 늪, 호수, , 그리고 바다의 물 풍경을 동서고금의 문학예술 작품을 통해 조망하고 있다.

 

 

■ 저자 소개

 

신문수

서울대 영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에서 영문학석사, 하와이대에서 영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 한국외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로 정년퇴직하였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2006년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과 함께 한국생태문화연구회를 창립하여 2019년까지 대표로 일했고,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2011), 한국문학과환경학회 회장(2006), 한국영미문학교육학회 회장(2005~2007)을 역임했다.

저서로 풍경, 혹은 마음의 풍경』 『묵시의 풍경들』 『타자의 초상인종주의와 문학』 『시간의 노상에서미국문화 원류 탐방(2) 모비딕읽기의 즐거움, 편저로 미국의 자연관 변천과 생태의식』 『미국 흑인문학의 이해󰡕, 역서로 문학 속의 언어학』 『자연』 『프로이트 예술미학등이 있다.

 

 

■ 목차

 

책머리에

 

1물길, 그 들머리에서

1. 삶의 물, 물의 삶

2. 물의 인문학

3. 물의 윤리학

 

2관조의 물: -거울의 풍경들

1. 관조의 징검다리: -거울

2. 우물: 삶의 거울

 

3홍수 풍경

1. 홍수 사회: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

2. 각성의 현장: 박화성의 홍수 전후와 최서해의 큰물진 뒤

 

4늪과 호수

1. 우포늪: 물의 신전

2. 맑고 깊은 물의 향연: 다시 월든 호숫가에 서서

 

5

1. 「 흐르는 강물처럼 」 : 이해와 사랑의 사이

2. 두물머리 풍경: 유배에서 풀려난 다산을 생각하며

 

6바다

1. 이어도의 바다: 숙명과 해방의 사이

2. 상실과 죽음의 바다: T.S. 엘리엇의 드라이 샐베이지스

3. 모비딕의 바다: 생사의 파노라마

 

7예술 속의 물

1. 윈슬로 호머의 해양 풍경

2. 물을 품은 건축: 안도 다다오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머리에 중에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한동안 발걸음이 반사적으로 연못으로 향하곤 했다. 작은 연못에 불과한데 왜 자꾸 그것에 이끌리는 것일까. 물과 연못에 대한 이 매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근저에는 어떤 집단무의식이 자리하고 있을까. 연못에 비치는 나무들과 그 사이에 걸려 있는 새벽달의 청신한 모습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물론 좋았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한 대지의 눈을 가까이 두고 있다는 설렘도 컸다. 바람이 세찰 때 연못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모습에서 말러 교향곡 54악장 아다지에토의 선율을 느끼기도 했다. 현악기와 하프로만 연주되는 선율에서 간간히 들리는 하프 소리가 연못의 작은 파란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지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가르치는 도덕경의 유명한 대목에 심선연(心善淵)이라는 구절이 있다. 물처럼 그윽하게 마음을 쓰는 덕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물처럼 자유자재로 변신하면서도 연못처럼 그윽한 깊이의 경지이런 자재로우면서도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가 우리 삶이 근원적으로 희구하는 것이 아닐까. 연못은 이렇게 산간에 들어와 둥지를 튼 마음의 본래적 지향을 상기시켜주기도 했다.

연못을 찾아 고요한 물을 응시하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물 풍경은 이제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어떤 물의 정경이든 연상의 파장을 일으키곤 했다. 어릴 적 여름 폭우가 그친 뒤 개울가에서 뜰채로 새우와 송사리를 잡던 일, 집 근처 저수지에서 물수제비뜨던 일, 동네 인근을 지나는 동진강 수로에서 자맥질하던 일, 홍수로 번진 한강물을 구경하러 갔던 일, 월든 호수에서 땅거미가 질 무렵 수영하던 일, 하와이 바닷가의 백사장에 앉아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의 바다를 바라보던 일 등등이 연못의 물결을 따라 점멸하곤 했다. 이 사사로운 추상들은 다시 그에 상응하는 텍스트의 세계로 옮아가곤 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학작품과 그림들은 이런 마음의 공명이 불러일으킨 느낌과 해석의 소산이다. 사실 어디를 막론하고 스미고 번지는 물의 자재로운 유동성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다른 사람과 본성적으로 소통하려는 욕구와 흡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언어 표현의 다채로움, 곧 수많은 비유, 운율, 리듬, 활음 등과 같은 텍스트를 채색하는 문채(文彩)들은 물의 일렁임, 뒤채임, 파문, 갑작스런 요동, 그리고 서로 뒤엉키며 발설되는 다양한 물소리를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파란의 시학이란 이 책의 제목은 이런 맥락에서 얻어진 것이다.

 

 

■ 출판사 리뷰

 

지구 표면의 70퍼센트가 물이고,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의 70퍼센트도 물이다. 자연과 인간, 문명과 사회도 어쩌면 대부분은 물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형태를 변화시키며 스며드는 물의 성질은 어떠한 환경에도 결국에는 적응하며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특성과도 닮았다. 물은 때로는 수증기 상태로 공기 중에 스며들고, 때로는 거센 폭우로 쏟아져 홍수를 일으킨다. 갈증을 적시는 한 잔의 물과 오대양 가득 출렁이는 물이 따지고 보면 같은 물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그러한 물의 변화와 상징에 의탁하여 문학과 예술 작품들을 남겼다. 신문수 교수의 파란의 시학 : 물의 풍경들은 그와 같은 작품들을 분석하였다. 생명의 원천이며 신화, 전설, 철학의 중요한 의미소인 물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를 시작으로 윤동주의 자화상, 오정희의 옛우물,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 박화성의 홍수 풍경, 소로의 월든, 노먼 매클린의 흐르는 강물처럼, 이청준의 이어도, 허먼 멜빌의 모비딕등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문학 작품들, 거기에 윈슬로 호머의 바다를 소재로 한 회화 작품과 안도 다다오의 건축 세계까지, 저자는 다채로운 물의 풍경을 산책하며 미학적 상상력에 기반한 풍요한 지식의 향연을 펼친다.

 

■ 책 속으로

 

일찍이 명말 청초의 화가 석도(石濤, 1642~1707)화어록(畵語錄)에서 화가가 그리는 산과 물, 그 각각의 자질과 그 상관성을 논하면서 물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물이 휘감아 유유히 돌아가며 또 조용할 때 그 면이 평평하게 고른 것은 하늘이 준 합법성 때문이요, 아무리 먼 데라도 다 채우며 통하여 이르지 않는 데가 없는 것은 하늘이 준 찰찰한 투과력 때문이요, 열길 속이라도 마음이 우러나듯 말갛게 비치고 아롱지는 선명함과 깊은 그 순결은 하늘이 준 착함 때문이다. 濙洄平一也以法. 盈遠通達也以察, 沁泓鮮潔也以善.”

물의 평정성, 팬 곳을 채워가며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의 끈기와 침투성, 깊으면서도 맑은 물의 선명성을 강조한 글이다. 특히 물이 계곡을 휘감아 돌면서도 평정한 수면을 유지하는 것을 자연의 이치라 하는 것은 흔들림 속에서도 고요함을 구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물을 통해 동적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무심한 자아의 길을 교시 받고자 하는 것이다. (54~55)

 

일몰이 가까워지면서 우포늪 생명길은 어느덧 출발지로 돌아와 있다. 이번이 세 번째 탐방이지만 우포늪은 이전과 또 다른 모습이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면 자연은 변환을 거듭하며 스스로를 생성해가기 마련이다. 허나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은 이미 중병에 걸려 있는 지구 생태계에 상처내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우포늪, 물의 신전에서 나는 물 생태계의 놀라운 복원력을 확인한다. 한편에 훼손과 마모와 사멸이 자행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소생과 복원과 생성의 운동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게다가 늪을 지키고 보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도 배가되고 있다. 물론 이런 의지와 실천적 노력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자연 생명을 지키려는 운동이 부지불식간에 오히려 그 상처를 덧내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해보아야 한다. 우포에서 늪만 보는 것은 근시안적인 것이리라. 늪을 훼손하고 방치했던 탐욕과 물신주의 이념과 그것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마음도 함께 보아야 할 것이다. 우포가 우리에게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면, 이 반성의 마음 또한 그 희망의 일부여야 한다. 나는 그 희망의 소리를 왕성하게 번져가는 물풀의 출렁임에서, 징검다리의 낭랑한 물소리에서, 사초군락지의 억새를 스치는 바람소리에서 들었다. (132~133)

 

바다는 시인 묵객에게 실로 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 대상이다. 무한경의 수평선,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 흰 포말을 일으키며 몰려드는 파도 등은 삶의 유비로서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그러기에 허먼 멜빌은 명상과 물은 영원히 결합되어 있다고 쓴 바 있다. 호쿠사이(葛飾北)가 후가쿠 36경을 그리면서 거기에 굳이 가나가와 앞바다의 거대한 파도 형상을 끼워 넣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맹자는 물을 볼 때는 반드시 격동하는 파란을 보아야 한다고 썼다(觀水有術 必觀其瀾). 평탄하게 흐르는 물만을 보고서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맹자는 험준한 산간 계곡을 몰아치는 파란의 급류를 우선 염두에 두었겠지만, 갈기를 세워 달려왔다가 속절없이 스러지기를 반복하는 바다의 파도 또한 그에겐 변전무쌍한 삶의 은유로 제격이었을 것 같다. (249)

 

비스듬히 기우는 석양의 햇살 속에서 물과 푸른 대지와 하늘이 하나로 조화를 이룬 고요한 풍경을 나는 온몸으로 느끼곤 했다. 이 순간 클라크미술관은 나에겐 오브제로서의 건축, 눈에 보이는 형태로서의 건축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체험의 공간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셈이다. 이 한가롭고 맑은 분위기, 그 한미청적(閑美淸適)의 세계는 필시 내가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희구하고 있었으나 구체화할 수 없었던 어떤 원형적 형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기에 이 정경이 그처럼 잔잔한 희열감을 불러일으켰으리라. 그 순간 그 일체적 정경은 나에겐 조화로운 자연의 모습이자 세계의 전체상으로 보였다. 시선을 거꾸로 하여 다시 근경의 물을 바라보면 거기에 푸른 초원과 나무와 하늘이 비친다. 근경은 원경으로 퍼져 나가고 원경은 근경에 아른거린다. 물의 풍경 속에서 존재는 현상이 되고 현상은 존재의 본질을 다시금 되묻는다. 사라져가는 석양의 햇살 속에서 물을 관조하고 있노라면 풍경은 이렇게 사유의 문을 연다. 물의 풍경은 보이지 않던 세계의 몸을 현시하며 나를 끌어들이고 나는 그 속에 안겨 생각에 잠긴다. 말하자면 풍경을 통해, 풍경에 의해 나는 사유하는 존재,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인간다운 존재로 환원되는 것이다. 나의 사유는 또한 세계를 향해 있으니 나는 존재하는 것들의 세계 속에서 그 세계를 마음속에 품으면서 가장 순수한 나의 존재와 만나는 것이다. (285~28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