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5 신간도서

박현우 시집, <머문 날들이 많았다>

by 푸른사상 2025. 5. 9.

 

분류--문학()

 

머문 날들이 많았다

 

박현우 지음|푸른사상 시선 204|128×205×8mm|120쪽|12,000원

ISBN 979-11-308- 2246-4 03810 | 2025.5.12

 

 

■ 시집 소개

 

소외된 존재들과 함께하는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시

 

박현우 시인의 시집 머문 날들이 많았다가 푸른사상 시선 204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이웃을 비롯한 사회적인 존재자들과 친밀감을 토대로 개인적인 윤리와 아울러 사회적인 윤리를 만들어간다. 소외되고 파편화된 자신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자세로 사회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 시인 소개

 

박현우

전남 진도에서 출생하여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오랜 기간 재직했다. 참교육운동을 하던 1989풀빛도 물빛도 하나로 만나(부부교사 부부시인 공동시집)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달이 따라오더니 내 등을 두드리곤 했다』 『멀어지는 것들은 늘 가까운 곳에 있었다 가 있으며, <시가 꿈꾸는 그림, 그림이 꿈꾸는 시>(부부시화전, 그림 홍성담 외 7인)를 개최하였다. 한국작가회의 이사를 역임했다.

 

 

■ 목차

 

1부 아적은 꽃

늦맺이 / 틈을 메우며 / 아적은 꽃 / 입동 / 그러고도 한참 / 배동 / 울컥 / 은목서가 있는 풍경 / 정류장 옆 느티나무 / 월영(月影) / 아무래도 나는 / 통증 / 고하도 가는 길 / 상외상(像外像) / 광장의 밤 / 바다를 건넌 사람들

 

2부 아무리 맵다고

꽃 편지 / 조기 교육 / 소주잔 받던 날 / 아무리 맵다고 / 어떤 인연 / 소만 죽추 / 밥은 먹고 사냐 / 봄동 / 첫눈 몸살 / 간지런 데가 있는갑소 / 보따리 두 개 / 고맙다는 말 / 매미 / 뻥을 튀기는 리어카 옆에서 / 구두를 닦으며

 

3부 갔다가 또 와

사거리 집 감나무 / 갔다가 또 와 / 하늘다람쥐 한 마리가 / 목련꽃이 웃었다 / 하루 / 참새가 놀던 자리 / 지우개를 찾습니다 / 드들강에 앉아 / 가을비에 부르는 이름 / 칼국수 먹는데 / 청보리밭에서 / 총각김치 / 지금은 수술 중입니다 / 애증의 그림자 / 위위불진(爲爲不盡)

 

4부 진도, 그 거리쯤에서

벽파항 / 피뻘등 / 진도, 그 거리쯤에서 / 감서리 / 댓돌에 눈이 가네 / 현우랑께 그라네 / 자네 참 용하네 / 수심(愁心) / 초헌 잔 올려놓고 / 파문 1 / 파문 2 / 마지막 꽃도 지네 / 겨울, 소화네 집 / 큰 나무 그늘 / 동천(冬天)

 

작품 해설 : 긴 시간의 너른 품맹문재

 

 

■ '시인의 말' 중에서

 

고백

 

내 벽을 쌓고 그렇게

바람 따라 바람도 없이 흔들리고 흐르고

꽃잎보다 뿌리를 섬기던

낡은 족보 가슴에 담아

 

그렇게 쓴

 

견고하다 자찬한 벽들에 금이 가면

틈 비집는 무명의 씨앗처럼

역설이 역설을 만난

무화과처럼

 

머문 날들이 많았다

 

 

■ 작품 세계

  

박현우 시인의 시 세계를 형성하는 주요 요소이자 토대는 시간 인식이다. 시는 본질적으로 시간 예술에 속하므로 시간성을 띠는 것이 그의 시 세계를 부각하는 특징이라고 볼 수 없지만, 지배적인 면이기에 주목된다. 시인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이나 상황을 시간 인식으로 반영한다. 지나간 시간을 단순히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나 미래의 시간으로 연결해 존재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시인의 시간 인식에는 자기를 긍정하는 세계관이 들어 있다. 이 세계 속에서 자기 존재를 부정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견지한다. 자기의 처지를 비관적으로 여기기보다는 만만하지 않은 삶의 조건들을 기꺼이 품고 나아간다. 분노나 불안 같은 정서에 굴복당하지 않고 세상에 눈감는 자가 되지 않”(꽃 편지)는 자세로 사회적 참여를 늘인다. 이기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사고로 타인과의 친밀감을 높이고 신뢰를 쌓는다.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들은 자기 이익의 추구에 함몰되어 다른 이들과 경쟁할 뿐 연대의 기회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공동체 가치를 추구하지 못해 너무 많은 뻥에 뻥튀기를 당”(뻥을 튀기는 리어카 옆에서)하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당한다. 시인의 시간 인식은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자기애를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적 존재성을 자각해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품는 인간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시인은 시간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구성해 현실을 인식하는 거울이나 미래를 지향하는 푯대로 삼는다. 결과보다도 과정에 대한 이해와 탐색으로 사람들과 함께하는 세계관 및 역사관을 제시한다. 시인의 그 시간 인식은 사실을 기억하는 감각과 사회적 정서가 더해져 넓고도 무겁다.

― 맹문재(문학평론가, 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늦맺이

 

저거 제구실이나 할까 몰라

 

강아지풀 아늘거리는 길

한세상 짚고 가는 지팡이

 

폭우에 쓰러진 콩대 붙들어 매다가

구부정한 허리 펴던

 

뿌리까지 마음이 통했는지

느지막이 가지마다 구실이 생겼다

 

머문 날이 많았지만.

 

 

청보리밭에서

 

마당 가득 보릿대 쌓이고

타작기도 신명 나게 난장을 칠 적이면

일꾼들 얼굴 가득 땀 먼지 범벅되어

번들거리곤 했지

 

이따금 시원케 바람이라도 칠 양이면

흩날리는 꺼시라기에

타작기 멈춰두고 땀을 훔치며

 

워따메 징한 것들 그 틈에 사타구니 파고든다며

우스갯소리 잘도 하던 개울재 아짐도

새참이 늦어서 선소리가 안 나온다며

타작기 늦추던 선배 아재도 없는

 

고창 청보리밭 축제 사람들 틈에 끼어

까칠한 땡볕 속 거닐다 보니

한 시절도 어느덧 바람의 시가 되어

깔끄럽게 출렁이고 있었네.

 

 

갔다가 또 와

 

장성 사거리 자라뫼 밭에 가니

갈아엎은 이랑 사이 뾰족이 솟는 풀

 

저리 모진 것들과 함께한

 

처가 마지막 지키시는 이씨 할머니

뒷짐 지고 나와

 

가버린 시절 허리 굽히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것이 그리움이라

 

손수 짠 들기름 손에 안기며

갔다가 또 와~”

 

이승의 더없는 여운이여.

 

 

마지막 꽃도 지네

 

별도 없는 밤, 바람만 거세

잡히지 않는 사랑은 어둠에 묻혀

누군가 흘리는 외로운 달빛

떨어져 쌓이네 흩어지네

 

처음처럼 새롭던 꽃잎도 향기도

나만 홀로 길어내는 우물물인 듯

넘치는 사연들 기다림 되어

제 무늬마저 보내고 나면

 

줄기마다 굵어오던 아픔이 아직 남아

씨방을 톡톡 터트리는 것이어서

얼굴 붉히며 멀어진 꽃잎처럼

남몰래 자분자분 떠오를지 몰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