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소설)
고요의 코끼리
김동숙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69|145×210×13mm|216쪽
18,000원|ISBN 979-11-308-2239-6 03810 | 2025.4.25
■ 도서 소개
세상의 고요를 진동시키는 역동적인 이야기들
김동숙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고요의 코끼리』가 푸른사상 소설선 69로 출간되었다. 작가는 치밀한 문장으로 환대와 적의, 상실감, 고독 등 현대인의 삶의 한 국면에서 마주하는 감정들을 예리하고 세밀하게 그려낸다. 세상의 고요를 진동시키는 역동적인 이야기들은 독자들을 깊게 울린다.
■ 작가 소개
김동숙
2011년 『경상일보』 신춘문예에 「매미 울음소리」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경기문화재단 창작집발간지원에 선정되어 소설집 『짙은 회색의 새 이름을 천천히』를 펴냈다. 2020년 영축문학상을 수상했다.
■ 목차
작가의 말
가장 최근에 만난 사람
고요의 코끼리
노란색 삼선 슬리퍼
짠바람이 불고 있다
불편한 쪽으로 앉으세요
눈부처
낙원 다푸르로 가는 밤
작품 해설 : 정동의 관계론 혹은 감응의 사회학 _ 임정연
■ ‘작가의 말’ 중에서
경적 소리에 눈을 떴다. 깜박 잠이 든 동안 신호등은 초록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차량의 물결을 눈으로만 좇으며 머뭇거렸다. 알 수 없었다.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던 중이었는지.
헤드라이트가 뿜어내는 불빛들은 또렷하게 눈부시었지만, 어둠에 잠긴 주변 풍경들은 흐릿하게 낯설었다. 신호대기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시공간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잠에 들었던 스스로는 더욱 낯설었다. 그러나 나와 마찬가지로 고단한 하루를 마쳤을 차량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경적 소리에 떠밀려 무작정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핸들을 꽉 붙들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나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눈물을 조금 흘린 것도 같았다.
오롯이 글을 쓸 수 없는 나날이었다.
백미러에 불안한 눈길을 무연히 던지다 뒷좌석의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누군가는 차 안의 소리 없는 혼란을 무름하게 감싸며 고요히 앉아 있었다. 고요의 코끼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단히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알 수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중략)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긴 터널 앞에서 내게로 와주었던 고요의 코끼리.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자신 안의 고요의 코끼리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천천히, 조금씩.
혹 고요 지역을 여행하다가 코끼리를 만나면 그 행운을 즐겁게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고요의 코끼리가 잠시 당신에게로 왔습니다.
■ 추천의 글
오래전부터 김동숙 작가의 소설을 읽어봐 왔다. 김동숙의 소설에는 아주 낯선 공간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낯선 일들이 가상공간의 일처럼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잘 아는 바로 이웃과 같은 현실 공간의 일처럼 벌어진다. 표제작이기도 한 「고요의 코끼리」에 등장하는 ‘고요 코끼리’의 얘기도 소설 속 다큐멘터리의 내용처럼 성장한 다음엔 저마다 독립하여 단독 생활을 하는 ‘고요 코끼리’ 종이 실제로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검색해보게 된다.
그보다 더 가상의 현실을 그린 「낙원 다푸르로 가는 밤」도 그렇다. 가상낙원을 그린 소설은 많지만, 그것이 가상인 줄 알면서도 무엇 때문에 현실을 떠나 가상의 세계로 떠나고 싶게 하는지를 함께 생각하게 하는 소설은 많지 않다. ‘낙원 다푸르’는 결코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감시의 눈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며 개인의 생활과 마음속의 생각까지 지배해 나가는 조지 오웰의 『1984』를 저절로 떠올리게 한다.
결국엔 가상의 코끼리 얘기거나 가상의 낙원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실의 얘기로 돌아온다. 작품의 얼개를 짜는 것도 얼개 내용을 채우는 것도 반듯한 문장과 치밀한 묘사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김동숙만의 완성된 세계를 보여준다. 고요의 코끼리가 세상의 고요함을 진동시키기 바란다.
― 이순원(소설가)
■ 작품 세계
김동숙의 소설은 존재의 모서리와 가장자리에 웅크린 마음들을 주목한다. 모호하고 수상한, 그래서 자칫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받기 쉬운 감정의 옹이들을 찾아내 그 응달진 세계를 자신의 문학 공간으로 점유한다. 그렇게 김동숙의 이야기들은 일렁이다 흘러가고, 스며들어 물들이는 마음의 행로를 따라 고요하게 만개한다.
두 번째 소설집 『고요의 코끼리』에 실린 일곱 개의 이야기에도 환대, 적의, 모욕, 수치심, 슬픔, 상실감, 불안, 공포, 고독과 같은 친숙한 감정들이 관계의 변화와 이행을 따라 매 순간 낯선 표정을 지으며 위태롭게 출렁거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삶의 매 국면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예리하고 심원하게 묘파해내는 김동숙의 단단함과 정갈함은 여전하다.
김동숙 소설의 변칙적이고 다면적인 감정 작용을 ‘정동(Affect)’의 관점에서 포착해보고 싶어진 것은 순전히 이런 이유에서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감정이 단일하고 통합된 정서를 일컫는 반면, 감정의 역동성, 수행성, 관계성에 정초한 스피노자-들뢰즈적 개념으로서의 정동은 하나의 감정 안에 존재하는 상이한 정서들의 집합이자 외부의 자극을 감지해 촉발되는 정서적 반응 상태를 의미한다. 나아가 이것은 한 개체의 심리적 범주를 넘어 주체와 대상 혹은 이를 둘러싼 모든 요소들, 즉 이질적인 것과의 마주침에 호응해 변화되는 ‘감응’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김동숙은 존재의 마주침이 야기하는 감정 작용과 이들의 불협화음을 정동의 형식으로 조직해내는 데 능숙하다. 작가의 이런 특기가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는 『고요의 코끼리』에서 감정은 하나의 실체로 고정된 명사로 수렴되지 않는다. 감정은 생성·변형·유동하는 동사로, 타자와 관계 맺게 하고 다른 차원의 사유로 옮겨가게 하는 정동적 전회를 통해 역동적이고도 실제적인 힘으로 수행된다.
―임정연(문학평론가, 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김동숙 작가는 두 번째 소설집 『고요한 코끼리』에서 반듯하고 치밀한 문장으로 환대와 적의, 상실감, 고독 등 삶의 한 국면에서 마주하는 감정들을 예리하고 세밀하게 그려낸다. 세상의 고요함을 진동시키는 역동적인 이야기들이 이 소설집에 펼쳐진다.
이 소설집에서는 취약하고 고립된 존재들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표제작인 「고요한 코끼리」는 동명의 두 사람이 등장한다. 텅 빈 통장 잔고 앞에서 살길이 막막한 ‘유희’는 새 직장을 찾는 동안 빌라 아래층 여자를 대신하여 뇌병변 장애 2급의 32세 남성인 동명의 ‘유희’ 씨를 돌보는 일을 맡는다. 남은 삶을 코끼리와 지내고 싶다며 낡은 다마스 한 대만 남기고 떠난 아버지, 폭설이 내린 어느 날 사라진 유희 씨와 길고양이 등 일련의 사건들로 유희는 자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고양이가 유희 씨가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깨닫게 된다. 한편 비릿한 ‘짠바람’이 부는 항구를 배경으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을 그린 「짠바람이 불고 있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학생들이 침몰된 배에서 결국 돌아오지 못한 딸과 ‘보상’을 운운하는 잔인한 눈길들을 그린 「노란색 삼선 슬리퍼」 등이 눈길을 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긴 터널 앞’에 서 있는 이들에게 사려 깊게 반응하고, 그들의 내밀한 마음에 귀 기울이는 저자의 모습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 작품 속으로
누군가 창문을 두들겼다. 고개를 들자 그제야 경적 소리가 멈췄다. 정장 위에 패딩을 입은 남자가 다마스 안을 살피더니 다시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 보호자에게 유희 씨가 사라졌다고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고양이는 다시 길거리로 돌아간 걸까. 유희 씨는 어딘가에 또 다른 코끼리를 그리러 간 걸까. 내리는 눈 사이로 하늘을 나는 연에 눈을 떼지 못하던 고양이와 유희 씨가 떠올랐다. 고양이도 유희 씨도 없는 다마스 안의 한기가 뼛속을 파고들었다. 자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고양이와 유희 씨가 짧은 시간이나마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몸을 떨었다.
(「고요의 코끼리」, 57~58쪽)
그날 이후 여자의 기억력은 어떤 부분에서는 아스라이 흐릿했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또렷했다. 분홍색 방울에 씨처럼 박힌 하얀 점들, 똑같은 방울을 다시 사주려고 시내에 나가다가 만났던 한동네 사람들, 엄마가 자신의 머리를 때려서 머리방울이 부서졌다고 떠벌리던 소라의 작은 입, 그 입을 막았던 여자의 부끄러운 손바닥. 하나를 자책하고 나면 더 이상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여자를 끝까지 벌하려는 것인지 마주치는 사람과 사물과 장소는 소라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소한 말과 행동까지 떠오르게 했다. 소라를 다시 만난다면,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용서를 구할 수조차 없었다. 차라리 치매라도 걸렸으면 좋겠다고, 남편에게 베어지고 갈라진 속마음을 털어놓고는 했다.
(「노란색 삼선 슬리퍼」, 77쪽)
한때 인터넷에 늪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가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사를 작성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도덕성에 심각한 결함이 밝혀져 기사까지 가짜 취급을 받았다. 그중 몇몇은 죽음으로 결백을 호소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결국 인터넷에서 늪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기사까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무연고자들이 생체 실험을 위해 늪으로 실려 간다는 소이 노숙자들 사이에서 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소문들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노숙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뜬소문으로 치부해버리기 일쑤였다. 간혹 어떤 이들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러나 아까시나무 숲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비명횡사를 면치 못한다는 금기가 알음알음 전해져 근접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낙원 다푸르로 가는 밤」, 161쪽)
'2025 신간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현우 시집, <머문 날들이 많았다> (1) | 2025.05.09 |
---|---|
민정호, <봄에는 기쁘다: 한강의 문장들> (8) | 2025.05.02 |
김경숙 소설집, <희망, 여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다> (1) | 2025.04.22 |
김지수 소설집, <명자꽃이 피었다> (3) | 2025.04.21 |
유민영, <인물로 보는 한국 공연예술사 3> (8) | 2025.04.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