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소설)
희망, 여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다
김경숙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68|145×210×14mm|224쪽
18,500원|ISBN 979-11-308-2238-9 03810 | 2025.4.22
■ 도서 소개
우리 시대의 삶과 현실을 응시하는 작가의 성찰과 희망
김경숙 작가의 소설집 『희망, 여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다』가 푸른사상 소설선 68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시대와 현실을 깊이 응시하며, 고립과 은둔이 심화하는 일상 속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에게 치유의 도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줄기 희망을 전한다.
■ 작가 소개
김경숙
1968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2015년 단편소설 「아무도 없는 곳에」로 5.18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설집 『아무도 없는 곳에』, 공저 『그녀들의 조선』, 장편소설 『걸똘마니들』이 있다.
■ 목차
작가의 말
치파오
바우덕이,너를 닮은 사람
집으로
바람이 전하다
즈려밟은 꽃
아떼
작품 해설 : 소설의 고전적 질문들 : 외로움, 삶의 가혹성과 비극성을 응시하는_ 고명철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의 초고를 언제 쓴 것일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으로 성급하지 않게 퇴고의 과정을 반복했던 기억만 있다.
쓰는 내내 아무도 내게 슬픔이 두려움과 닮아있음을 일깨워주지 않았지만, 매번 슬픔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슬픔은 우리에게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신은 슬픔을 통해 인간의 지혜가 깊어진다고 위로하지만, 그 말이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언어의 힘을 믿으며, 치유의 의지로 말을 찾는다.
강요된 품위가 아닌, 유창함이나 달콤함을 넘어, 진솔한 말로써 이야기가 독자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을 꺼낸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공감을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슬픔의 깊이를 묘사하는 말들 그 자체로, 치유의 도구가 되길 소망한다.
■ 작품 세계
김경숙의 여섯 편의 소설을 읽는 것은 문화콘텐츠 중 서사물을 소비 및 향유하는 데 있지 않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인간 존재 본연의 외로움의 상처를 앓고 있다. 그의 외로움에 대한 성찰적 응시는 웅숭깊다. 외로움을 회피하지 않는 이 응시의 힘은 외로움으로부터 빚어진 삶의 상처를 자기 치유하도록 하는 경이로움을 낳는다. 인간 삶의 가혹성과 비극성을 에워싼 삶의 비관주의를 마주하도록 하는 소설의 힘을 작가가 신뢰하기 때문이다.
강조하건대, 이것에 대한 서사적 재현에 충실한 김경숙의 작품은 소설의 운명을 정직하게 조우하고 있다. 김경숙 서사의 매혹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정치적 윤리 감각의 실종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인터넷 서사물의 범람 속에서 유희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악 무한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서사적 재현에 기투하는, 김경숙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소설의 운명에 정직하게 응전하는 작품을 모처럼 만난다.
―고명철(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시대와 현실을 깊이 응시하는 저자는, 고립과 은둔이 심화하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 그리고 가혹한 삶의 문제를 이 소설집에 생생하게 그려낸다. 외로움과 고통의 소용돌이에 함몰되지 않고, 이를 껴안음으로써 삶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인간은 여러 사회적 관계를 이루고 살지만,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엄습하는 외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치파오」에는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학자였으나 지금은 아버지에게서 유전된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나’가 등장한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단절되고 아무와도 소통을 하지 못하던 ‘나’는 재외동포 출신의 간병인 ‘치파오’를 만나게 된다. 지나칠 정도로 ‘나’의 일상 경계를 넘나드는 ‘치파오’의 간병은 ‘나’의 외로움의 감옥을 서서히 허물어뜨린다. 「집으로」에서 부모를 일찍 여의고 조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 ‘영옥’은 화재 사고를 당해 얼굴에 심한 화상을 당한 뒤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러한 영옥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은 또한 절대적인 조부모의 사랑이다. 신체 장기이식 매매를 소재로 한 「바람이 전하다」, 무능하고 폭력적인 한국 남편과 국제결혼을 한 필리핀 여성의 가혹한 삶을 그린 「아떼」 등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견뎌내는 인물들을 볼 수 있다.
여기 실린 여섯 편의 소설에는 삶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치유의 도구가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는 다양한 얼굴을 한 슬픔의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한 줄기 햇살 같은 희망을 전한다.
■ 작품 속으로
그녀는 오자마자 파우치를 열어젖히고는 번들거리는 땀을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조금도 내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녀 앞에서 나는 생명 없는 존재 같았다. 그녀뿐 아니라 모두가 날 그렇게 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치파오는 파우치에 부착된 거울을 통해 번들거리는 땀을 화장 솜으로 찍어낸 후, 검고 긴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으며 돌돌 말아 핀으로 고정했다. 치파오는 그렇게 내 집에 오자마자 자신부터 돌봤다.
(「치파오」, 14~15쪽)
나는 도심의 소음과 붐비는 인파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갈로 덮인 비포장길에 서 있다. 건널목만 건너면 집이다. 나는 평화로운 눈으로 한가하고 조용한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노후화된 모습 그대로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순간 초록불로 바뀌었다. 신호가 바뀌는 것을 확인하고 걸음을 떼는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공처럼 튕겨 올랐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고, 순간의 충격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기대에 부풀어 집 앞 신호등 앞에 서 있던 나를 불행이 또 덮쳤다. 예견된 불행일까. 또 누군가 계획한 불행은 아닐까. 차가 내 몸을 던지듯 때리며 멀어졌다. 나는 내동댕이쳐졌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나를 바람이 다가와 흔든다. 나는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주변의 모든 것이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바람이 전하다」, 146쪽)
어둠이 서서히 종수를 덮기 시작했을 때, 종수는 그 어둠에 의지해 구두코로 풀숲을 후볐다. 풀뿌리가 드러나며 수분 없는 흙이 먼지를 만들었다. 종수는 깊은 한숨을 내어 쉬며 움푹 파인 구덩이 속에 연분홍색 립스틱과 원목 인형을 묻었다. 자신을 괴롭혀온 상한 마음을 흙으로 덮어버렸다. 그것은 양심이었다.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불안을 다스리며, 죄의식마저 묻어버렸다. 그런 뒤 그것이 영원히 눈에 띄지 않길 바라며 꾹꾹 밟았다. 마치 꽃을 밟듯이 지르밟았다.
(「즈려밟은 꽃」,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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