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신을 잃어버렸어요
이성혜 지음|푸른사상 시선 187|128×205×8mm|144쪽|12,000원
ISBN 979-11-308-2141-2 03810 | 2024.4.22
■ 시집 소개
저녁 같은 어둠을 환하게 지펴주는 시편들
이성혜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신을 잃어버렸어요』가 <푸른사상 시선 187>로 출간되었다. 얽혀 있는 선 같은 기억을 풀어낸 시편들은 저녁 같은 어둠을 환하게 지피고 얼어붙은 길을 햇살로 녹인다. 시인은 감각적인 시어와 유려한 문체로 인간 내면의 풍경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 시인 소개
이성혜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시와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인천작가회의 회원이다.
■ 목차
제1부
가족은 각각의 상황을 산다 / 술 먹는 남자 / 배려 / 연두 리본의 욕망 / 빈방 / 4월의 어느 날 / 넝쿨, 뿌리 찾아 가는 중 / 목적이 떠난 자리 / 이별의 배경 / 점박이 연두 나비 날다 / 보도 위를 구르는 오렌지 / 이야기 / 폐가 / 문, 그리고 문
제2부
신을 잃어버렸어요 / 레드 라이딩 후드 / 가방의 신전 / 중독, 그치지 않는 / 안개에 부치는 에피소드 셋 / 자라나는 바람 / 무얼 보았나? / 비상, 활짝 피는 붉음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 충동, 고양이 하품같이 / 문신 1 / 시계는 안녕하신가요? / 사제 폭탄 / 키로키 바(Bar) 가는 길을 아세요? / 무제
제3부
들끓는 빨강에 대한 변명 / 장미여관 / 창틀에 놓인 화분 / 살아 있는 방 / 새와 장미와 메론 / 원의 경로 / 사과를 위한 변명 / 고흐에게 쓰다 / 태양을 숨겨-버린 남자 / 제인의 코르셋과 만나는 밤 / 도대체 뭐란 말인가? / 웰빙 프로그램 / 카르페 디엠 / 아담의 성기
제4부
남은 2초 / 물박물관에서 물을 주지 않는다 / 비워진 여자-비어 있는 남자 / 소금사막 / 널다 / 시간의 그림자 / 문신 2 / 백야 / 현기증 1 / 현기증 2 / 나폴리 다방 1 / 나폴리 다방 2 / 나폴리 다방 3 / 밑줄 긋기 / 고요한 작업
작품 해설 : 시를 쓰는 일은 마음을 쓰는 일이다 - 최종천
■ '시인의 말' 중에서
머물렀던 순간에도 늘 길 위를 흐르고 있었다
어디에 놓았을까
걸었던 흔적의 웅덩이 하나!
■ 추천의 글
이성혜 시인은 기억의 넝쿨이 무성하게 뻗어나가 활짝 꽃 피고, 그 꽃들에 연두 나비가 날아오기를 희망한다. 시인은 희미해진 기억을 찾아 나래를 펼치고, 무지개 같은 기억을 담으려고 수레를 끌고 언덕을 넘는다. “색조차 기억나지 않는 이별은 밍밍해서 서럽지 않”(「이별의 배경」)다고 노래할 정도로 정열적이다.
시인의 기억은 저녁 같은 어둠을 환하게 지피고, 얼어붙은 길을 오렌지 같은 햇살로 녹이고, 연보 같은 외로움을 연민한다. 한 물결에 생활을 쓴 가족 기록부를 집으로 가져오고, 흑백 사진 속에 들어 있는 창문을 열고 환희의 순간을 맞는다. 검은 웅덩이에 소복하게 쌓여 있는 꽃잎들을 꽃비로 흩날리기도 한다.
얽혀 있는 선 같은 기억을 풀어낸 시인의 시들은 “신이 발에 맞춰 자라나”(「신을 잃어버렸어요」)듯이 생소하다. 봄밤의 꽃 그림자같이 오묘하고도 매혹적이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 작품 세계
어떤 시가 순수하게 사실만으로 써질 수 있을까? 그 문제는 사실 뒤의 진실마저도 사실적인 표현을 통하여 보여야 한다는 것이겠다. 이것은 예술로서의 시가 형식의 문제이지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는 예술의 본질적인 것과 관련된 문제이다. 진실은 비물질적인 것이고 정서적이지만 그 진실이 사실이 되면 이제 논리적인 대상이 되는 것이다. 마음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몸을 사용하여 밖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마음이란 행위를 통하여 비로소 알려질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이 기호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때, 기호란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다. 형식을 다른 말로 하자면 바로 몸이다. 모든 사물은 형식이며 인간의 삶은 형식을 공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로부터 예술이 형식의 문제라는 것이 밝혀진다. 리얼리즘이란 그러한 참여적인 태도를 취하기 마련이다. 여기 소개하는 이성혜 시인의 시편들은 그러한 예술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시를 통하여 굳이 말하거나 이해시키려 들지 않는다. 아주 냉정하게 현실의 일부분을 찍어 도려내어 보여줄 뿐이다. 시인의 기교는 탁월하고 이미지 조형술은 시의 최우선인 언어의 총화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언어를 과감하게 부리고 언어와 언어들의 에로티즘이 황홀하다. 시인이 다루는 제재가 현실 참여시와 다르다고 하여 리얼리즘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 최종천(시인)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연두 리본의 욕망
존재가 있었나? 자각이 먼저 눈을 떴을까요?
설산을 기어 당도한 무릎이 하얗게 무너집니다
긴 잠, 그건 시간 안의 일인가 시간 밖의 일이었을까요?
지워진 문틈으로 일렁이는 신(神)의 옷자락 소리를 듣습니다
한 조각 일렁임이 세포를 건드리자 가슴을 관통하는 전율!
몽글몽글 스미는 전율에 이유 모를 조급함이 담겼습니다
예언, 예언입니다
길, 길을 내야 한다는……
온몸에 들끓는 간지럼을 없는 손가락으로 박박 긁으며
죽어버린 한 생이 또 다른 생을 위해 길을 준비합니다
제 몸을 비켜 자신이 벗어날 통로를 만들고
있었지만, 처음인 그 길에
병아리 솜털같이 순진한 얼굴을 내밉니다
봄, 내면을 숨긴 광포한 열정!
베르사유 궁전을 휩쓴 겹겹 드레스 자락보다 빠르게
거침없는 욕망으로 휘날립니다
신을 잃어버렸어요
이유 모를 총질과 아비규환에서 도망쳤는데요 맨발이네요 무한 앞에 방향 잃고 여기-저기 신을 찾아 헤매요 신이 신을 낳고 낳아 내가 바로 그 신이라 나서는 신 많은데 신이 없네요 조악한 모양 싸구려 재질 엉성한 바느질 가짜-모조-짝퉁, 내가 찾는 신은 디자인 재질 바느질이 최상급,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유일한 신! 이라니까요 상하지도 더럽혀지지도 않는 발 때문에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신을 찾아 헤매요 왈패들 왈짜를 막아주는 주막집 주모 추락하려는 절벽에서 손을 내미는 청동 활 남자 토기에 물을 떠주는 여자, 원치 않는 구원들이 나타나 신 찾기를 끝낼 수 없게 하네요 때로는 강풍에 돛단배처럼 휘리릭 대서양으로 나아가고요 때로는 잠자는 지중해 시간에 묶이기도 하고요 중력 잃은 허공에 떠 있기도 하면서 근원에서 황혼토록 신을 찾아 신고-벗고! 드디어 닮은 신을 찾았는데 작아요 신 찾기를 끝내려 꾸-욱 밀어 넣었어요 어, 신이 발에 맞춰 자라나네요 무얼 찾아 헤맨 걸까요? 신에 발만 넣으면 원하는 대로 편하게 맞춰주는 차안(此岸)인데요!
원의 경로
삐끗, 왼발이 쏠리자 어그러진 원의 중심으로 우주가 쏟아진다
로마네스크 문양 카펫 위로 홍조 띤 파동이 깃털처럼 일고, 선잠 깬 고양이가 아가리 속 송곳니를 내보인다
일탈하는 원 하나를 주워 스커트에 슥슥 닦고 양손에 힘을 준다
쩌 억,
앙다문 우주의 입술이 벌어진다
사과를 먹는다는 건 태초를 먹는 일, 안과 밖의 색이 다른 거짓을 먹는 일, 거짓인 줄 알면서 끊임없이 유혹에 빠지는 일, 여기저기 구르며 불순에 접붙이는 일, 겉과 속이 같은 종(種)을 숭배하게 되는 일
사각사각, 한입 크게 거짓을 베어 문다
원이 남긴 싱싱한 자궁이 내일로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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