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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신간도서

푸른생각/ 박정선 소설, <거룩한 길>

by 푸른사상 2024. 4. 23.

 

분류--문학(소설)

 

거룩한 길

 

박정선 지음145×210×13mm224

16,900ISBN 979-11-92149-48-6 03810 | 2024.4.20

 

 

■ 도서 소개

 

독립군의 산실 신흥무관학교 설립자였으나

역사 속으로 묻혀버린 거룩한 이름, 이석영

 

박정선 소설가의 장편소설 거룩한 길이 푸른생각에서 출간되었다. 일제강점기 시대,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재산과 가족을 모두 바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했던 6형제의 숭고한 일대기가 이 책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그 거룩한 이름을 다시 불러낸 이 소설은 청소년들에게 진정한 애국과 진정한 독립운동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가르쳐 준다.

 

 

■ 작가 소개

 

박정선

소설가,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대학원 졸업 문학석사, 1987문학정신시조 등단, 2007영남일보신춘문예에 소설 당선, 장편소설로 백년 동안의 침묵』 『동해 아리랑』 『가을의 유머』 『유산』 『순국등이, 소설집으로 청춘예찬 시대는 끝났다5. 시집으로 바람 부는 날엔 그냥 집으로 갈 수 없다8, 서사시집으로 독도는 말한다』 『뿌리, 에세이집으로 고독은 열정을 창출한다, 평론집으로 고독의 경지』 『존재와 사유』 『타고르의 문학과 사상 그리고 혁명성』 『인간에 대한 질문손창섭론』 『사유와 미학』 『해방기 소설론등이 있다.

심훈문학상, 영남일보문학상, 부산문학상 대상, 김만중문학상, 해양문학대상(해양수산부 문화재단),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천강문학상, 아라홍련문학상 대상, 부산시문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예창작, 인문학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 목차

 

명문가의 후계자

가문 정신

죽지 말고 살아서 싸우라

망명을 결심하다

나라를 빼앗기다

6형제의 선택

원세개의 도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다

험난한 만주 생활

가슴 아픈 이별

다시 선택의 기로에서

왕을 북경으로 모셔라

혼란스러운 임시정부

마지막 정착지 상해

단칼에 치거라

거룩한 장례

에필로그

 

작가의 말

부록 1_ 이석영 가문의 계보

부록 2_ 귤산 이유원 연보

부록 3_ 영석 이석영 연보

부록 4_ 우당 이회영 연보

 

 

■ 책머리에 중에서

 

나는 2011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을 그린 소설 백년 동안의 침묵을 썼다. 그리고 2020년에 우당 선생의 형님 이석영의 독립운동사를 그린 소설 순국(, )를 썼다. 그리고 이번에 쓴 거룩한 길은 두 권짜리로 된 순국5분의 1로 줄인 작품이다. 청소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쉽게 읽히기 위해서이다.

오늘날, 이회영으로 대표되는 6형제는 대한민국 제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독립운동 가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회영은 우리 국민들에게 매우 익숙한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다. 대략 정리하면 우당 이회영은 20대 청년 시절부터 관직 진출을 포기하고 을미사변부터 을사늑약을 거치는 격동의 시기부터 뜻이 맞는 동지들과 항일운동을 이끌면서 자금을 담당했다. 그러나 젊은 이회영은 부자도 아니었고 나라의 녹을 받는 관료도 아니었다. 모든 자금은 그의 둘째 형님 이석영이 맡아 주었다. 이회영이 항일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인삼밭을 경영하고, 삼림을 조성하고, 제재소를 운영한 것이나, 또한 민족 교육을 위해 신학문을 가르치는 상동학원을 운영한 것, 전국에서 찾아오는 동지들을 규합하는 것, 각처에서 항일투쟁을 하는 동지들을 이끄는 것 모두 이석영의 재산이 자금줄이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분리할 수가 없다. 두 사람은 실과 바늘, 물과 물고기라고 할 수 있다. 이회영을 조명한 소설 백년 동안의 침묵에서도 이석영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듯이 이석영을 조명한 순국거룩한 길에서도 이회영을 떼어 놓고는 이야기를 전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형제들은 비극적인 순국을 하고 말았다. (중략)

도대체 조국이 뭐길래, 그들은 그토록 처절하게 살아야만 했을까. 지금도 더러 독립운동이 해방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제가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굳어졌고, 굶주리며 쫓기며 계속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독립운동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들은 독립운동만 포기한 게 아니라 조국을 버리고 친일파로 돌아섰다.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나라를 포기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그래서 더욱 그들은 빛나야 한다). 독립운동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에서 독립운동의 본질이 갈린다. 당장 일제를 몰아내고 해방을 쟁취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비록 해방의 날이 묘연하다 하더라도 끝까지 조국을 버리지 않고 싸우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기 때문이다.

 

 

■ 출판사 리뷰

 

일제강점기라는 참담한 역사를 건너오면서 독립운동가들은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그것은 엄연히 현재진행 중에 있다. 박정선 소설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을 조명한 소설 백년 동안의 침묵에 이어 우당 선생의 형님 이석영의 독립운동사를 그린 순국(, )을 발표한 작가이다. 이번에 새로 발표한 거룩한 길은 청소년들부터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순국의 분량을 대폭 줄이고 내용을 비교적 쉽게 수정한 작품이다.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재산과 목숨, 모든 것을 바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형제들의 숭고한 일대기가 이 책에 실려있다.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이 항일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인삼밭을 경영하고, 삼림을 조성하고, 민족 교육을 위해 신학문을 가르치는 상동학원을 운영한 것, 동지들을 규합하여 항일운동을 이끌었던 것은 모두 형님인 이석영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석영은 조선 땅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 부자 영의정 이유원의 양자로 모든 재산을 상속받았다. 이석영은 관직도 높아 정승의 반열에 오를 위치에 있었던 터라 부와 명예를 한몸에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나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게 되자 전 재산을 처분하여 형제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했다. 낯설고 척박한 만주 땅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의 초석을 다졌다. 이만 석 재산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모든 것을 조국에 바친 그는 말년에 굶어 죽어 유해조차 찾을 수 없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우당 가문의 형제들은 당시에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에게 독립을 향한 용기와 희망을 주었고, 지금 이 시대에는 애국에 대한 시대정신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형제들의 이름들을 이 책에서 다시 불러내어 독자들에게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자문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이 책은 철저하게 조국을 위해 산화한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모든 독자에게 진정한 애국이 무엇이며 진정한 독립운동이 무엇인지, 지금 이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인도해 준다.

 

 

■ 작품 속으로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힘든 선택을 하는 것이 우리 가문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가장 힘든 선택이라고 했느냐?”

그것이야말로 가문의 명예다운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백사 할아버님의 혼을 골수에 새겼구나. 그래, 나라가 어려울 때 명문가는 마땅히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백사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우리 가문의 정신이니라.”

영의정 이유원 대감은 백사 할아버지처럼 나라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목숨까지도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말했고, 석영은 그 뜻을 알아들었다.

(16)

 

결국 우리 금수강산을 왜적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조상 대대로 명족으로 살아온 우리 가문이 왜적의 노예가 되어 생명을 이어 가려고 한다면 어찌 명문가의 후예라 할 수 있겠는지요.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은 우리 가문에 대해 나라에 공을 세운 대한 공신의 후예로서 나라의 은덕과 세상의 존경을 대대로 누려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들은 국가와 운명을 함께해야 할 위치에 있으니, 죽기를 각오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 나라를 구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 줄 압니다. 이것은 이 나라의 민족 된 도리일 뿐만 아니라 일찍이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셨던 백사 할아버님의 후손 된 도리일 것입니다.”

(61)

 

학교를 인계하고 나자, 국내에서 삼일만세운동이 불붙고 있었다. 때에 맞추어 만주와 조선의 국경 지대로 독립군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만주 각처마다 독립군이 형성되었고, 각처의 독립군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지휘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독립군이 점점 눈부신 성과를 올리자 국내와 해외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독립군에 들어가기 위해 몰려들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교관들은 그런 청년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켜 독립군에 보내 주느라 바빴다. 그렇게 모여든 독립군들은 대규모 군대를 이루었고 그들은 국경 지대에서 일제와 크고 작은 전투를 수십 차례 치렀다.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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