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문학(희곡)
공공공공
주수자 지음|145×210×14mm|208쪽
18,000원|ISBN 979-11-308-2137-5 03810 | 2024.2.19
■ 도서 소개
현실과 환상의 카오스 속에서
낯선 세계의 중심에 내던져진 자신의 고독과 대면하는 무대
주수자 작가의 희곡집 『공공공공』이 푸른사상에서 출간되었다. 작품 속 인물들은 현실과 환상의 카오스 속에서 낯선 세계의 중심에 내던져진 자신의 고독과 대면하는 길로 들어선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자유로운 극 형식 속에 밝고 쾌활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어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 저자 소개
주수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1976년부터 프랑스와 스위스, 미국에서 살다가 돌아왔다. 2001년 『한국소설』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버펄로 폭설』, 시집 『나비의 등에 업혀』 등을 펴냈다. 2017년 희곡 「빗소리 몽환도」 「복제인간 1001」을 연극 무대에 올렸고, 2020년 소설집 『빗소리 몽환도 Night Picture of Rain Sound』가 영국과 몽골에서 출간되었다. 공저로 『보르헤스 그리고 창작』 『아!와 어?』 『소나기 그리고 소나기』, 역서로 『시대를 앞서간 명작 스마트 소설』이 있다. 2013년 제1회 스마트소설박인성문학상을 수상했다.
■ 목차
■ 작가의 말
빗소리 몽환도
복제인간 1001
공공공공
방랑밴드:사랑의 적에게 총을 쏘다
■ 해설 : 주수자의 희곡 세계를 들여다보다_ 김광림
■ 책머리에 중에서
누구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여기가 아닌 저기, 이곳이 아닌 저 멀리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내재적 갈망인지도 모르겠다. 미지의 곳으로부터 왔기에 다시 돌아갈 낯선 곳을 찾아 헤매는 무의식적 행로일 수도 있겠고. 아무튼 바닷가에 살면서 관찰해보건대 인간에겐 이상한 심리 패턴이 있는 것 같다. 바다를 만나려고 멀고 먼 길을 여행하여 마침내 도착하지만 잠시 머무를 뿐, 곧 다른 영지를 찾아 떠나기 일쑤다. 물론 물놀이를 하거나 모래 쌓기를 하거나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보곤 해도 머무르는 이는 드물다. 여정엔 끝이 없다지만 원하던 대지의 끝인데도. 이후론 죽음과도 닮은 만경창파만이 겹겹이 출렁이고 있는데도.
어찌 보면 나도 마찬가지다. 소설을 쓰다가 시집에 관심을 두다가 마스크를 쓰고 젊은이들과 연극을 하더니 희곡집에까지 이르렀다. 나도 매번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장르가 어디 따로 존재하겠는가. 어느 시대에 누가 장르라는 벽을 글쓰기에다 세워놓았을까. 원래 글쓰기만이 있을 뿐인데.
그럼에도 장르를 뛰어넘어보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른바 소설은 묘사와 대화 중 단연코 묘사가 압도하지만 연극에서는 말만으로 어떤 세상을 리얼리티 있게 만들어내는 점이 놀라웠다. 그런 측면에서 언어를 뿌리에 두고 있는 바는 동일하지만 연극이 영화보다 훨씬 문학에 가깝다. 아니 근대소설이 출현하기 전에 희곡이 문학의 본류였다는 것과 셰익스피어가 왜 희곡 작가였는지도 덤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에 실린 희곡들은 대학로에서 여러 번 무대에 올려진 작품들이다. 「빗소리 몽환도」는 내 단편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현실과 환상에는 경계가 없다는, 빗소리 음향이 중심에 있는 일인극이나 다름없다. 「공공공공」은 비록 감옥에 있더라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주인공이 외치고 있지만 관객의 참여가 필수적인 연극이다. 또한 「복제인간 1001」은 예술과 과학 간의 오래된 갈등과 충돌을 당대에도 실현 가능한 사건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방랑밴드:사랑의 적에게 총을 쏘다」는 SF 뮤지컬로 유토피아란 없고 지금 여기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구식 테마를 가지고 있다.
■ 추천의 글
주수자의 희곡은 출구가 없는 무대에 갇힌 인물을 통해 실종된 운명을 짊어진 삶을 형상하고 사회적 소외와 함께 인간 심연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한다. 비극과 희극, 배우와 독자의 대극적 실존 앞에 출현한 텅 빈 ‘공(空)’은 제삼자의 내상을 봉합하는 덧없는 치유의 빗소리가 되어 나의 심장에 꽂힌다. 현실과 환상의 카오스 속에서 우리는 문득 낯선 세계의 중심에 내던져진 자신의 고독과 대면하는 길로 들어선다.
그곳에 주수자가 창조한 주인공들이 은거하고 있다.
― 고형렬(시인)
■ 작품 세계
옛부터 문학을 비롯한 예술행위는 리얼리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왜냐면 인간의 사고, 즉 언어는 그 지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의 공연을 전제로 써지는 희곡의 경우는 다른 예술 장르보다 더욱 리얼리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무대라는 시공간에서 살아 있는 배우가 살아 있는 관객과 소통해야 하므로 다른 장르보다 리얼리티를 강조하게 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 이론을 따르면 희곡은 단순히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일깨우고 인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야 한다. 즉 리얼리티를 뛰어넘는 어떤 형이상학적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희곡이 ‘사실성이라는 리얼리티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 혹은 ‘어떤 방식으로 사실성에서 벗어나는가’ 하는 작가의 태도와 이를 구현하는 테크닉에서 작품의 특성이 드러나고 그것을 통해서 작가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주수자의 희곡들은 매우 독특하다. 리얼리티를 대하는 관점과 표현이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는 계속 우리가 경험하고 있거나 보고 느끼고 있는 현실이란 하나만이 아니라 무수한 다른 현실들이 개입하고 있다는 시선을 갖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일상에서 대부분의 우리는 또렷한 하나의 사실을 선택하지만 실상은 다른 현실들이 이미 개입되어 있고 은밀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독특한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선지 그는 현실과 가상세계 사이에 굳이 애써서 어떤 통로를 만들지 않는다.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어떤 부연 설명도 없다. 그의 인물들은 그런 절차 없이 곧바로 현실과 비현실의 장면들을 자유롭게 오간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당위성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전달된다는 것이 그의 희곡들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 김광림(극작가,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해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주수자 희곡집 『공공공공』에 실린 네 편의 희곡은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여러 차례 공연되었던 작품이다. 이 희곡들은 출구 없는 무대에 갇힌 인물을 통해 실종된 운명을 짊어진 삶과 인간 심연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한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작가는 자유로운 극 형식 속에 특유의 밝고 쾌활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자유롭게 오간다. 「빗소리 몽환도」에 등장하는 도서관 청소원인 공상호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다가 책 속으로 들어가 줄리엣과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가 책 밖으로 튀어나온 듯한 어떤 비현실적인 여자와 남자의 현실적 문제에 자연스레 개입하게 된다. 시공간이 혼동되고 현실과 환상이 섞이면서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한편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감옥에 갇힌 무기수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공공공공」, 현재의 문제를 미래적 관점으로 그린 「복제인간 1001」,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이 거침없이 교차되는 SF 뮤지컬 「방랑밴드」도 눈길을 끈다.
주수자의 작품 속 인물들은 현실과 환상의 카오스 속에서 낯선 세계의 중심에 내던져진 자신의 고독과 대면하는 길로 들어선다. 자유롭고 신선한 상상의 세계를 통해 소외된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달하는 것이다.
■ 책 속으로
줄리엣:네, 그래요! 근데 당신은 누구시죠?
공상호:(당황하며) 아, 으, 저 보잘것없는 도서관 청소부입니다. 또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독자이고요.
줄리엣:독자?
공상호:아, 네. 그나저나 정말 죄송합니다. 무례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 같은 아름다운 여자가 그런 방식으로 죽는 걸 도저히 볼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독자란 그저 방관자로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책이 우리를 바꾸듯이 독자도 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해석 정도는 달리할 수 있다는 거죠. 따라서……
(「빗소리 몽환도」, 16~17쪽)
예술이:(울부짖듯이) 솔직히 말해주세요. 진실을…….
IT CEO:이십여 년 전이었지. 하 박사가 동물 복제에 성공했던 때였네. 세상은 필사적으로 그를 반대했네. 몇몇은 제주도에 은신해서 일을 이어갔지. 그들은 후원을 필요로 했고 나는 기꺼이 자금을 댔지. 난 가족도, 후손도 없네. 그래선지 나는 나에게 생명을 남겨주고 싶었네. 난 단지 미래의 추억을 남기고 싶었지. 우여곡절 끝에 우린 성공했고 누군가가 이 생명에게 예술이란 이름을 붙이자고 주장했지.
예술이:아, 그러니까 제가 당신의 ‘복제양 돌리’군요. 세간에서 말하듯이 저는, 당신의 부품 대용인가요?
IT CEO:(강력하게 고개를 저으며) 오, 오! 전혀, 아닐세! 그건 절대 아니네!
(「복제인간 1001」, 89~90쪽)
간수:흥, 교활하다고? ‘갑’만이 진짜 교활할 수 있는 거야. 게다가 자네도 괜한 궤변으로 교활하게 나를 속이고 있잖아, 아닌가? 흥, 자넨 늘 말해왔지, 감옥에서도 자유가 있다고. 그러면서 왜 그 젊은 놈에게 도망가라고 부추겼는가? 그걸 말해보라구!
무기수:그랬지, 내가 그렇게 말했지. 자유가 바깥에 있지 않다고. 이 조그만 호두알 같은 감방에 갇혀 있어도 무한한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나에게는 그건 진실일세. 하지만 그놈은 사과할 사람들도 있고, 세상에 나가서 죄지은 것들을 갚아야 되거든. (「공공공공」,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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