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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간행도서

오현석 소설집, <나는 죽어가고 있다>

by 푸른사상 2024. 1. 2.

 

분류--문학(소설)

 

나는 죽어가고 있다

 

오현석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54|146×210×15mm|240쪽

18,000원|ISBN 979-11-308-2124-5 03810 | 2023.12.22

 

 

■ 도서 소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인생을 들여다보는 깊은 사유

 

오현석 작가의 소설집 『나는 죽어가고 있다』가 <푸른사상 소설선 54>로 출간되었다. 현역 경찰관이라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인 작가는 체험을 바탕으로 갖가지 사건과 사람들을 소설로 그린다. 불행을 겪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포착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놓지 않고 인간 실존의 극한이 어디까지인지를 묻는다.

 

 

■ 작가 소개

 

오현석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으며, 광주북부경찰서에서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생오지문예창작촌에서 소설 쓰기를 배워 2020년 『전남매일』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오랫동안 수사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접한 사건들과 사람들을 소설로 담고 있다.

 

 

■ 목차

 

▪작가의 말

 

그들의 얼룩

어쩌다가

그가 왜

보이지 않는 것들

나는 죽어가고 있다

답은 예스뿐이야

 

작품 해설 : 파국에서 회복으로 _심영의

 

 

■ '작가의 말' 중에서

 

어린 시절 활자와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일기 한 장 쓰지 못할 정도로 글쓰기에는 젬병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늦은 나이에 소설 쓰기에 입문한 건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하면서 어색합니다. 하지만 그땐 절박했고, 그래서 선택했습니다. 저는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늘 한쪽이 채워지지 않아 우울했습니다. 그 공간을 채우기 위해 몰아치기로 소설을 읽기도 하고, 매일 술을 마시거나 쓰러질 만큼 운동도 해봤지만, 그거로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누구든 공허함을 느낄 것입니다. 어떤 누구는 공허함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사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어떤 누구는 메우려 하는데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아 헤매며 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후자 쪽으로 매일 흔들리고 흔들렸습니다.

그러다 저의 흔들림을 안 지인의 소개로 자기계발서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요지는 하루에 한 권씩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삶이 바뀐다는 거였습니다. 그 글을 믿고 엉망인 저의 습관을 바꾸기 위해 일주일에 한 권 정도를 외우다시피 읽었습니다. 결론은 한마디로 낚인 거였습니다. 읽어도 피부에 닿지 않는 글은 그 말이 그 말이고, 삶이 변할 것 같진 않았습니다. 단지 변한 게 있다면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얕은 시냇물처럼 세치 혀만 바삐 움직였다는 겁니다. (중략)

주변 사람들에게 소설가를 석공에게 비유하곤 합니다. 넓은 산에서 글감이 될 만한 돌을 찾아, 그걸 캐서 구도를 짠 후 매일 정으로 조금씩 쪼아 석상을 만드는 작업과 같은 거라고요.

지금도 여전히 눈알을 번득이며 돌을 찾고 있고, 매일 정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오랜 기간 경찰 수사 부서에 종사하면서 많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났고, 가장 잘 아는 것도 경찰 수사와 관련된 분야입니다. 지금도 경찰 수사와 관련해 장편을 쓰고 있고, 수사와 사법 체계의 부조리한 것에 대해 재미있으면서 의미 있는 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 추천의 글

 

『나는 죽어가고 있다』의 주인공들은 시간으로도 끝내 면제받지 못한 불행을 겪는다. 사랑, 결혼, 출산, 일, 병듦, 늙음 그리고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떠맡은 삶의 여러 얼굴들일 테지만, 오현석은 기어이 예리한 펜촉으로 얼굴의 살갗을 찢고 헤집는다. 펜촉에 끌려온 비체(卑體, abject)들은 온갖 오물들을 쏟아낸다. 오현석은 오물들을 통해 인간 실존의 극한이 어디까지인지를 에두르지 않고 묻는다. 비체 혹은 앱젝트를 이토록 끈질기게 추적하는 작가는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 귀하고 소중하다. 가파르게 그의 글을 쫓아가다 보면, 마지막엔 파닥이는 작은 새의 심장을 만진 것 같은 따뜻함이 느껴진다. 인간에 대한 연민의 시선과 인생을 들여다보는 깊은 사유가 뜨거운 파토스로 조율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이화경(소설가)

 

 

■ 작품 세계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듀이(John Dewey)에 따르면, 경험이란 언제나 개인과 당시의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으로 말미암아 성립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통해(일차적 경험/이차적 혹은 반성적 경험), 즉 경험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삶이란 타자/대상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라는 경험의 축적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란 자아와 세계에 눈뜬 한 인물이 그가 대면한 고통의 경험을 통해 정신적인 승화/성장에 이르는 서사다. 그렇게 볼 때 오현석 소설의 인물들은 전통적인 서사의 흐름 속에 위치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경험을 통해 자아에 대한 성찰과 세계에 대한 이해에 이르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서사적 주인공은 그러나 자신의 경험세계가 곧 진리라는 동굴의 이데아(Idea)에 갇힐 염려가 없지 않다. 문제는 소설의 인물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동굴에서 벗어나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오현석 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주목할 지점이라 하겠다. (중략)

오현석 소설은 파국에서 회복으로 나아가는 전통적인 소설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서술 전략에서도 오랜 숙련을 통한 지혜가 드러난다. (플라톤의) 동굴에 갇혀 있던 수인이 사슬을 풀고 동굴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더 큰 위대함은 그가 동굴 밖에서 눈을 멀게 할 정도로 밝게 빛나는 태양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것은 동굴 속에서의 경험세계를 넘어서는 자유와 진리의 세계를 맞이하는 모험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더욱 성숙해진다. 하나를 잃고 다른 하나를 얻는 셈인데,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크고 의미 있고 가치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남는 장사다.

이제 독자들은 오현석의 다음번 소설에서 그가 얻게 된 자유와 진리의 표상으로서의 성숙한 세계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 심영의(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오랫동안 수사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접한 사건들과 사람들을 소설로 그리는 오현석 작가는 소설집 『나는 죽어가고 있다』에서 갖가지 불행을 겪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의 시선과 인생을 들여다보는 깊은 사유로 인간 실존의 극한이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곡절을 겪고 있다.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남성이 가족을 위해 온갖 모욕을 견디는 데 마다하지 않거나, 아내가 자신을 해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더구나 노인이 된 남성은 가족에게 무용한 존재로 취급받기 일쑤다. 생존을 위협하는 비극의 향연 속에 파국으로 치닫는다.

표제작인 「나는 죽어가고 있다」에는 직장에서 입찰 실패 건으로 상무에게 심하게 깨진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설사로 고통받는 한 남성이 등장한다. 고양이들이 묽은 변을 배설하다가 죽었다는 뉴스를 본 그는 인근 유치원 원장이 먹이에 약물을 섞어놓았을 것이라는 해석에 이르면서, 설사의 원인으로 아내를 의심하게 된다. 증거를 잡기 위해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기까지 하는데, 직장 상사를 향한 불만과 아내가 자신을 살해할 것이라고 믿는 피해의식이 점점 자신을 갉아먹는다. 「어쩌다가」에서는 50년 이상 염색 공장에 근무하다 퇴사한 ‘순봉’이 등장한다. 집과 공장밖에 모르던 그가 퇴사한 이후로 갈 곳이 없어진다. 아내에게도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된 그는 노인 복지회관에서 춤을 배우다 엉뚱한 사고를 쳐 곤경을 겪게 된다. 집 안팎에서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지던 그는 노년의 비루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범죄 가해자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다룬 「그가 왜」, 호텔에서 벌어진 대낮의 살인 사건을 다룬 「그들의 얼룩」 등도 주목된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대면한 고통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자아와 세계에 눈뜬 이들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될 미래를 기대하게 된다.

 

 

■ 작품 속으로

 

남편은 미로처럼 얽혀 있는 사무실 책상 사이를 빠르게 걸어나갔다. 그의 펄럭이는 바짓가랑이에서 대나무 잎 스치는 소리 같은 스산한 휘파람이 들리는 듯했다. 가족이 있어 열심히 살아야 했고, 그래서 먼 타국까지 가서 건설 현장 노동자로 살았던 그가, 돈이 있다고 해서 습성처럼 흐르는 강물의 물결을 바꾸며 살 수 있겠는가? 임 팀장이 그러한 것처럼, 그도 아내가 사라진 자리는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와 그의 가족에게 새겨진 얼룩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그 빈자리에는 상처만이 가득해 쓰라림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의 얼룩」, 42쪽)

 

순봉은 주차된 차의 높이보다 몸을 낮추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카트를 잡은 손에 힘을 뺐다. 차가 횡단보도에 가까워질 찰나였다. 팔을 쭉 뻗어 카트를 내밀었다. 순간 타이어 마찰음이 노인의 귀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차는 카트를 충격했다. 순봉의 손에서 튕겨 나간 카트는 도로 바닥을 뒹굴었다. 순봉은 흐느적거리면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눈을 감고는 주위의 소리에 촉각을 기울였다. 차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다. 허리춤에 손을 대고 신음을 냈다.

“외제제제, 외제제제.”

(「어쩌다가」, 70쪽)

 

한편으론 나의 내장이 부실한데도 그녀에게서 원인을 찾고 있는 건 아닌지,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한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나의 내장은 튼튼했고, 지금껏 이토록 길게 설사해본 적이 없었다. 아침밥을 먹고부터 시작했고, 일주일 동안 지방 출장 갔을 때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음에도 설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출장을 마치고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다시 시작한 것이다.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뭐란 말인가? 아침식사 준비로 귀찮은 그녀의 불만이 독으로 변해 음식 할 때 손끝으로 흘러나오기라도 한 걸까. 하여튼 미칠 지경인데, 이를 다른 사람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망상증 환자를 보듯 나를 경멸스럽게 쳐다볼 것이다. 그러나 당해보지 않는 자, 함부로 단정하지 마라.

(「나는 죽어가고 있다」, 154~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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