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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간행도서

박숙희 소설집, <오이와 바이올린>

by 푸른사상 2024. 1. 2.

 

 

분류--문학(소설)

 

오이와 바이올린

 

박숙희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55|146×210×16mm|264쪽

18,000원|ISBN 979-11-308-2127-6 03810 | 2023.12.26

 

 

■ 도서 소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밀한 삶의 기록

 

박숙희 작가의 소설집 『오이와 바이올린』이 <푸른사상 소설선 55>로 출간되었다. 예술의 진정한 가치, 동성 간의 사랑, 성차별, 반려견 문제 등 현대사회의 다양한 면들을 보여주는 아홉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평범한 인물들이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기존의 문화와 관습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 작가 소개

 

박숙희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쾌활한 광기』 『키스를 찾아서』 『이기적인 유전자』 『사르트르는 세 명의 여자가 필요했다』 『아직 집에 가고 싶지 않다』, 그림에세이 『너도 예술가』 등을 펴냈다. 2014년 첫 전시회 이후 지금까지 열 번의 개인전을 개최한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 목차

 

▪작가의 말

 

그냥 전화했어

여씨

오이와 바이올린

그 여자

나는 2번이다

너무 사소한 죽음

동거의 조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날개가 아니다

시인 이상

 

작품 해설 : 이 평범하고도 특별한 우리 삶_ 박덕규

 

 

■ '작가의 말' 중에서

 

홍천에 사는 친구 집으로 가던 고속도로 위에서 긴급 호송, 법무부, 라는 글자가 차 문에 쓰여 있는 봉고차를 보았다. 안이 보이지 않는 차 안에는 손에 수갑을 찬 회색 죄수복의 남자 혹은 여자가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이어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지옥의 서막은 어처구니없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라는 문장과 함께 새로운 한 편의 소설이 머릿속에서 꿈틀거렸다. 나에게 소설은 주로 외부에서 포착한 소재가 계기가 되어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소설을 쓰다 보면 어느새 나는 소설과 한 몸이 된다. 해서 내가 쓰는 소설이 아프면 나도 쓰리고 아팠고 문장 한 줄에 영혼을 통째로 내어주기도 했다. 바깥에서 건져 올린 그들의 이야기가 어쩌면 들키기 싫은 내 이야기일 수도 있기에 더 그랬다. 아니다. 기어이 발설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를 타인의 이름을 빌려 교묘하게 감추는 것. 바로 그것이 소설이라는 장르의 실체일지도 모른다. 내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인 듯 능청스럽게 꾸밀 줄 아는 나는 음흉한 미소와 함께 때로는 앓으면서 때로는 열정에 달뜬 채 소설을 썼다. 그렇게 쓴 소설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게 되면서 한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너를, 그리고 나를 다시 만난다. 1995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발표한 이 소설들은 낯익으면서 낯설다. 한 편의 소설을 끝낼 때마다 내 삶의 어떤 부분도 소설과 함께 일단락되었고 때문에 오늘의 나는 어제 소설을 쓰던 때의 내가 아니다. 그래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소설들은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다가갈 것이다.

 

 

■ 작품 세계

 

박숙희가 주요 대상으로 삼은 존재는 예술가 부류(「그냥 전화했어」의 하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날개가 아니다」의 장형수, 「시인 이상」의 이상)도 있지만, 회사원(「여씨」의 여씨)이나 술집 손님(「오이와 바이올린」의 G와 K) 등 도시인(「동거의 조건」의 주요 인물들)도 있고, 그냥 평범하다 할 수 있는 서민들(「그 여자」의 ‘그 여자’, 「아주 사소한 죽음」의 아버지)도 있다(「나는 2번이다」의 시점인물인 강아지까지!). 이들은 그 신분이나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모두 동시대를 살아왔거나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로 작중인물로 채택돼 있다. 이 시대 어디에서건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자 동시에 각자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특별한 인물’이다.

박숙희 소설의 관찰과 사변은 이 ‘평범’과 ‘특별’ 사이를 오가는 방법적 매개다. 독자는 이 매개의 남다른 독서 과정으로써 ‘읽는 묘미’와 더불어 그것이 드러내는 ‘평범’ 뒤에 숨은 ‘특별’을 이해한다. 그것은 동시에 그 ‘특별’ 또한 우리의 흔한 ‘평범’이라는 것을 아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평범하다고 그저 평범한 것이 아니며, 특별하다고 그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 둘은 서로 얽히고설키며 ‘삶’이라는 형태를 이룬다. 세상 사람들은 이 단순한 것을 모른다. 박숙희 소설은 때로 우스꽝스럽고 때로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로 속인의 무식을 찌른다.

― 박덕규(소설가,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박숙희 작가의 소설집 『오이와 바이올린』에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 동성 간의 사랑, 성차별, 반려견 문제 등 현 시대의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주는 아홉 편의 소설이 실렸다. 손님과 종업원, 친구 사이, 가족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 맺는 관계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관습과 모순을 돌파하는 이 시대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표제작인 「오이와 바이올린」에는 와인바에서 일하는 미혼의 30대 여성이 등장한다. 매일 새로 맞이하는 손님들을 눈여겨보며 일과를 보내던 그녀에게 구애의 손길을 뻗친 남성들이 있다. 작가는 ‘꼬인 것 없이 시원한데 왠지 밍밍한, 그러면서 쉽게 질리지 않는’ 오이 같은 남자인 G와 ‘바이올린 선율처럼 섬세하고 예민한’ K, 두 남자 사이에서 그들을 저울질하는 여성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 여자」의 줄거리는 화자의 맏시숙이 네 번째 여자를 집으로 들여오면서 시작한다. 시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장례식장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시누이들과 싸움이 붙었다가 발광하는 그녀의 충격적인 모습을 보며, 마찬가지로 며느리인 ‘나’는 일종의 통쾌한 기분마저 든다. 한편 회사에서 온갖 일을 다 하는 인물로 묘한 존재감을 주는 인물 ‘여씨’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여씨」, 예술의 가치를 자본의 척도에서 규정하는 현실을 그린 「그냥 전화했어」, 강아지 시점으로 전개되는 「나는 2번이다」 등도 주목된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관찰과 정교한 문체로 한 인간의 내적 갈등, 실존적 고민을 담아낸 이 소설집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밀한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 작품 속으로

 

그리면 그릴수록 그림과 멀어진다는 말을 종종 했거든, 하연이. 살아서 펄떡거리는 어떤 느낌, 그것을 그리고 싶어서 붓을 들었는데 그 느낌을 캔버스에 옮기기도 전에 생생하던 그것이 죽어버린다는 거야. 그러니까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은 이미 죽은 그림이라는 거지. 하연이 그렇게 수많은 그림을 그렸으면서도 한 번도 전시회를 열지 않은 것 또한 그 때문이야. 제주에서라도 개인전을 가져보는 게 어떻겠냐고 수도 없이 권했는데 그럴 때마다 하연이 그렇게 말했거든.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죽은 그림을 전시장에 걸어놓을 순 없다고 말이야. 화폭에 담으려고 하는 순간 달아나버린 그 느낌이 다시 자기를 찾아와줄 때까지 기다리는 하연의 모든 그림은 그러니까 늘 미완성인 거지, 말하자면. (「그냥 전화했어」, 32~33쪽)

 

오이와 바이올린. G가 오이라면 K는 바이올린이다. 꼬인 것 없이 시원한데 왠지 밍밍한, 그러나 쉽게 질리지 않는 남자가 G였다. K는 섬세하며 날카로워 다치기가 십상인, 그리고 끊어질 듯이 이어지는 그래서 온전히 다 듣고 있으면서도 뭔가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예민하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 바이올린 연주를 떠올리게 하는 남자였다. 게다가 무엇보다 K는 웃음을 잃은 남자였다. 늘 뭔가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는데 그 집중이 그를 약간 화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남자였다, K는. 그에 반해 G는 느닷없이 웃음을 토해내 상대를 놀라게 만들곤 했다. 맥락에 맞지 않는 웃음 때문에 약간 부족해 보일 때도 있었지만 나는 G의 헤픈 웃음이 싫지만은 않았다. G가 입을 활짝 연 채 그런 웃음을 터뜨릴 때마다 어쩌면 G는 완전히 솔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맛을 남기지 않는 오이처럼. 게다가 G는 영혼 따위 운운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아갈 것 같은 남자였다. (「오이와 바이올린」, 79쪽)

 

― 뭐가 그렇게 잘났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데 지깟것들이 뭐라고 나를 업신여기느냐 말이야. 누구라도 할 말 있으면 이리 나와봐. 내가 전부 상대해줄 테니까. 이놈의 집구석, 내가 오늘 끝장을 내버리고 말 테니까.

자신의 알몸을 무기로 내세우며 발광하는 그녀의 몸짓은 위험하면서도 처연해 보였다. 너무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장면이었지만 무슨 일인지 나에게는 그다지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뭐랄까,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녀의 벗은 몸, 그것이 약간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아무튼 그랬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은밀한 바람은 불과 몇 초 사이에 끝장나고 말았다. 곧이어 부엌에서 달려 나온 시누이 두 사람과, 그들 편일 수밖에 없는 시집의 다른 여자들이 죄다 합세해 형의 여자를 개 끌 듯이 어디론가 끌고 가버린 것이다. (「그 여자」,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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