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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간행도서

이정화 산문집, <점등인이 켜는 별>

by 푸른사상 2024. 1. 2.

 

분류--문학(산문)

 

점등인이 켜는 별

 

이정화 지음|푸른사상 산문선 54|145×210×15mm|256쪽

18,000원|ISBN 979-11-308-2125-2 03810 | 2023.12.23

 

 

■ 도서 소개

 

하늘에 떠 있는 별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이야기들

 

이정화 작가의 첫 산문집 『점등인이 켜는 별』이 <푸른사상 산문선 54>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일상과 자연에서 길어낸 인문학적 성찰과 사유를 비롯해 세상살이에 대한 단상, 가족에 대한 애정 등을 온유하면서도 단단한 문체로 그리고 있다. 밤하늘의 별빛을 켜는 점등인이 되고자 하는 저자는 세상의 이곳저곳에 빛을 비추며 인생에 대한 탐색과 인간애를 보여준다.

 

 

■ 작가 소개

 

이정화

자연과 농촌의 미래를 고민하며 스무 해 넘게 환경운동을 했다. 구호와 신념으로 살았던 도시 생활을 접고 일상의 자연과 함께하기 위해 산골로 옮겼다. 자연 속의 삶을 쓴 글로 책을 내게 되어 기쁘다. 숲과 풀과 벌레와 산짐승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 목차

 

▪작가의 말

 

1부 동청도사리암이씨심방

R석 12열 9번 공연 / 개인[犬人]지도 / 연애 감성 물성 / 동청도사리암이씨심방 / 문화 실조증 / 꼬박 / 가시 없는 장미 / 점등인이 켜는 별

 

2부 산골 변사의 시네마

비둘기의 무게 / 산골 변사의 시네마 / 안심골 나부 / 아이고, 두야 / 농월산방을 희롱하다 / 제무씨 / 소낙비는 내린다 / 마리아 은행(銀杏) / 십오 센티미터 / 고려장을 부탁해 / 갑을의 역학관계

 

3부 글자를 품은 나무

도승가(悼蠅歌)―파리를 떠나보내며 / 마이 선 / 말과 씀 / 오리정 별사 / 글자를 품은 나무 / 웃는 문 / 만년 과자 / 장롱 속의 질서장 / 무싯날 / 사과는 해석 / 백 프로 삽질하는 나는 / 기대치

 

4부 인생 만세

속눈썹 / 나가사키 손수건 / 등명여모(燈明如母) / 도로 봄, 다시 봄 / 웰컴 / 도의 도 / 인생 만세 / 소잡고 개죽다 / 표표어어

 

작품 해설 _ 이정화 수필의 지형성:인문학적 서사와 생태적 언술_ 박양근

 

 

■ '작가의 말' 중에서

 

그대가 읽는 수필의 주인공은 바로 접니다. 우리는 각자 인생의 주인공을 맡아 열연하느라 다른 연극을 볼 기회가 적습니다. 그렇지만 남이 하는 연극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궁금해합니다. 함부로 알려고 하다간 속되게 보이거나 사생활 침해가 되지만, 자신을 펼쳐 보이며 인간의 무늬를 그리는 수필 문학이 있어서 나와 남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수필은 고백적 에세이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을 자기 연민에 빠져 쓴다면 그것은 발산이나 한탄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늘 아래 땅 위에 뭐 그리 신선할 게 있을까요. 다 거기서 거기인 사람살이라도 문학 안에서 상상과 형상화되어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걸 보면, 천 개의 다양성으로 펼쳐지는 세상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책을 출산하기 위해 낱말이 적절하게 쓰였는지, 문장이 매끄러운지, 다듬으려고 부지런히 퇴고했습니다. 재주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수필이 호락호락하지 않았죠. 힘이 들 때면 눈으로 읽었고, 기운이 있을 땐 소리 내어 읽어보면 걸리는 구석을 더 쉽게 발견하곤 했습니다. 발성기관에서 나오는 낯선 소리가 다른 이들이 듣는 저의 목소리입니다. 여태 세상에 어떤 목소리를 내며 살아왔던가. 도시에서는 신념으로 무장하고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더랬죠. 산골로 들어와 기쁨도 슬픔도 없이 그냥 흘러가는 자연을 바라보니 비로소 내 서사의 중심엔 내가 있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드디어 내면의 나와 다른 것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나뭇잎 비비는 소리, 풀벌레 소리, 땀이 밴 노동의 소리를 들으며 나 자신을 만납니다.

수필도 한몫했습니다. 글을 쓰며 일상을 들여다보니 아웅다웅할 것도 없는 인생이란 걸 깨닫게 되었죠. 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수필이 가진 매력 가운데 으뜸이었습니다. 문학을 분량으로만 재단할 수는 없지만, 수필 한 편을 소리 내어 읽으면 오 분에서 십 분 남짓한 시간이 듭니다. 시 한 편은 침 마를 새도 없고, 소설은 허기지도록 깁니다. 수필은 머릿속에 상상의 그림을 그리며, 인식의 회로를 바쁘게 움직이며 입 마름에 다다를 즈음에 끝이 납니다.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는 수필 속에는 타인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장치가 숨어 있답니다.

 

 

■ 작품 세계

 

이정화의 수필은 이런 수필 시학을 지닌 점에서 남다른 수월성을 갖는다. 그녀는 기억을 쫓으면서 감성적인 분석과 지적 창의력으로 사물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심층수 같은 교감을 포착한다. 평이한 대상도 그녀의 손과 눈을 거치면 지금까지 드러내지 않았던 존재성을 구현한다. 기억은 체험의 누적이 아니라 상상과 이미지의 집적물이라는 수필 시학도 정립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긴박하고 성실한 시간여행을 진실하게 수행하여 삶 속의 글과 글 속의 삶이 일치하는 퍼스펙티브를 취한다. 이정화 삶이 생의 연기임을 말해주는 단서들이다.

상재된 첫 수필집 『점등인이 켜는 별』은 성찰과 인문학적 해석과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짜인 수필집이다. 생을 살아가는 연기력으로 독자를 교양 세계로 안내하는 필력에는 인간애라는 감성이 넘쳐난다. 그 결과, 인생 여행을 연기하는 배우 같은 인간적 매력과 언어적 세련미를 발휘한다. 그것이 그녀 수필 세계의 요체라 할 것이다. (중략)

이정화의 작품은 작가적, 인간적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온유하면서 강인한 문체, 여성적 시선을 초월하는 인생관, 인문학적 지평을 추구하는 해독력과 자연에 대해 두터운 해석력을 『점등인이 켜는 별』 곳곳에서 찾게 된다. 그 점등인은 인생을 탐색하면서 타자를 위한 길을 닦는 선행(先行)의 화자이기도 하다. 인공 등불이 아니라 하늘에 떠 있는 별빛으로 세상을 비추려는 생태적 자연함도 작가의 고아한 심성에서 비롯한다.

무엇보다 이정화의 수필을 읽으면 다정다감한 은유가 풍부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수필 작가가 사물의 이면에 쌓여 있는 의미를 세상이라는 광 밖으로 풀어내면서 품격 있는 연륜을 쌓는 문도(文道)가 쉬운 게 아니다. 그런데도 이정화는 수필 점등인이 되어 인생 여행 길을 조명해주겠다는 작가의식의 끈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에게 글을 읽는 인생 일락(一樂)을 줄 수 있었다. 그것만큼 뿌듯한 작가의 보람이 어디 있는가.

― 박양근(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점등인이 켜는 별』의 저자인 이정화는 생을 이끌어가는 주체이자 삶을 연기하는 배우로서, 자신이 살아온 내력과 교양 세계에 독자들을 안내하고 있다. 일상과 자연의 한복판에서 길어낸 인문학적 성찰과 사유, 세상살이에 대한 단상, 가족에 대한 애정을 저자 특유의 온유하면서도 강인한 문체로 그려낸다. 그녀는 이 산문집에서 하늘의 별빛을 켜는 점등인이 되어 세상 이곳저곳을 비추며 인생을 탐색하고 인간애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둠을 빛으로, 시련을 희망으로 바꾸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는 표제작인 「점등인이 켜는 별」에 잘 나타나 있다. 그녀는 세찬 바람을 견뎌냈던 지난날들을 뒤로하고 빛이 지천에 있는 시골로 귀향한다. 호수 위에 은은한 잔불을 밝히던 달빛, 밤하늘에서 불빛들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산골 생활을 선택함으로써 아직 제대로 된 불빛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점등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한편 가족을 향한 애정과 기억들도 불러오고 있다. 소박한 일상을 관찰과 사유로 새긴 어머니의 질서장을 살피며 어머니와 자신의 문학적 면모를 살펴보고 있다. 나아가 시골 주민들의 순박한 일상을 스케치하고 해학이 넘치는 일화를 자연애로 감싸며 넉넉한 정을 전하기도 한다. 곡물이 익어가는 황금빛 들녘과 시골에 찾아드는 행상 트럭, 시끌벅적 신명 나는 장터 풍경,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자연과 농촌의 미래를 고민하며 환경운동을 펼치기도 했던 저자는 자연과 함께하기 위해 시골로 귀촌하여 글을 쓰고 있다. 도시에서 잊혀가던 풍속과 전통문화를 독자들에게 음미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에게 이정화의 수필은 소중하다. 피나는 연습으로 열정을 다해 공연하는 연극 출연자들에게 웃음과 눈물로, 경탄의 눈빛으로, 열광하며 호흡을 맞추는 그녀의 예술혼과 인간애를 이 산문집에서 느껴보기를 바란다.

 

 

■ 작품 속으로

 

자연이 내리는 빛은 한낮을 밝힌다. 춘삼월이 되면 개암나무 꽃밥은 작은 바람에도 누릇한 꽃가루를 뿌린다. 봄꽃이 한바탕 흐드러지고 나면 송홧가루가 온 세상을 노랗게 덮는다. 별 같은 감꽃이 담장 위에 떨어질 때면 살구가 시리게 익어간다. 뜨거운 여름 지나 들판이 황금색으로 바뀌고 뒷산에 단풍이 든다. 사계절은 내 마음에도 꺼지지 않는 불을 지핀다. 아무도 힘을 보태지 않아도 그대로의 자연은 흘러간다.

맞은편 산자락의 불빛들이 감국처럼 피어난다. 코끝으로 잔잔한 향기가 스며든다. 처마 끝에 매달린 등이 마파람에 살짝 흔들린다. 희미한 그림자를 뒤로하고 집 근처 가로등 앞에 선다. 나는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여름 저녁이 깊어지면 마당 귀퉁이에 세워둔 호젓한 외등을 켜고, 휘황한 가로등 불의 스위치를 내린다.

(「점등인이 켜는 별」, 54~55쪽)

 

가을 추수가 끝나면 촌부들은 콩 싹 지킬 때처럼 다시 앉은뱅이 신세가 된다. 작은 돌이나 쭉정이를 골라내야 장에 팔 자격이 생긴다. 웃골 아지매는 병원을 풀 방구리 쥐 드나들 듯하면서도 몇 가마니 콩을 다 골라낸다. ‘고마 때려 치아뿌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도 기어이 한 해 농사로 거둬들인 콩을 제값 받고 판다. 그것은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 해 동안 흙 속에서 견디고, 새 떼의 부리를 피하고, 가뭄을 끝까지 이겨내고, 마침내 도리깨질 받아 노랗고 토실한 콩을 출산한 콩 떡잎들에게 갖추어야 할 예의다.

아이고, 두(豆)야! 고생 끝에 낙(樂)이란 말은 콩을 두고 한 말이겠다.

(「아이고, 두야」, 79~80쪽)

 

어머니는 엄혹한 층층시하에 봉제사 접빈객을 모시면서도 내면의 소리를 잠재우지 않았다. 소박한 일상을 관찰과 사유로 새긴 어머니의 질서장 앞에서 회한의 눈물과 풍류의 웃음을 보았다. 하루하루를 담은 공책은 삶의 진솔한 기록이며 오래도록 저장될 뇌의 서랍장이다. 애초에 모양도 없던 인식들이 지면에 옮겨 앉으면 유형이 된다. 그러나 부모님이 고향 집 벽지 위에 표시해둔 사 남매의 키를 잰 눈금줄은 다시 무형의 기억으로만 남았다. 질서장은 기억을 기록한다. 누구든 다이어리 장부나 수첩 안에 수많은 단어와 문장과 이야기를 품었다. 산고 끝에 어떤 이의 침 바른 손가락이 페이지를 넘기는 책으로 환생하면 좋으련만.

(「장롱 속의 질서장」,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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