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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간행도서

권영민 산문집, <수선화 꽃망울이 벌어졌네>

by 푸른사상 2023. 12. 11.

 

분류--문학(산문)

 

수선화 꽃망울이 벌어졌네

 

권영민 지음|푸른사상 산문선 53|150×210×18mm(하드커버)|248쪽

22,000원|ISBN 979-11-308-2120-7 03810 | 2023.12.10

 

 

■ 도서 소개

 

흘러가는 세월에 마음속 깊이 묻어둔 이야기들

 

문학평론가 권영민(서울대) 교수의 산문집 『수선화 꽃망울이 벌어졌네』가 <푸른사상 산문선 53>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유년 시절의 고향 생각과 그리운 사람들과의 추억 등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사연들을 담백하게 술회하고 있다. 저자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연한 보랏빛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바쁜 일상으로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 작가 소개

 

권영민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미국 하버드대학교 초빙교수, 일본 도쿄대학교 외국인 객원교수,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버클리대학교 명예교수, 중국 산동대학 석좌교수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현대문학사』(1, 2) 『한국계급문학운동연구』 『이상 연구』 등이 있으며, 평론집으로 『소설과 운명의 언어』 『문학사와 문학비평』 『분석과 해석』 등이 있다.

 

 

■ 목차

 

▪작가의 말

 

1부 꼬마 신랑

꽃소식 / 꼬마 신랑 / 어머니와 책방 / 선림사 가는 길 / 키 작은 책꽂이 / 봄밤 / 작별 인사

 

2부 섣달그믐날

할아버지와 감나무 / 천자문 / 구멍 난 병풍 / 수영 금지 / 그해 겨울 / 나의 할머니 / 섣달그믐날 밤

 

3부 고향 마을 무과수다방

봉숭아꽃 물들이던 여름밤 / 백범일지 / 책벌레 / 가지꽃 / 스무 살 때 / 고향 마을 무과수다방 / 이주(梨珠) / 신춘문예의 꿈 / 잊을 수 없는 선생님

 

4부 헌책의 향기

내 마음속의 큰 산 / 빼앗긴 책 / 어떤 만남 그리고 헤어짐 / 헌책의 향기 / 헐어진 우리 집 / 자라내[鰲川]

 

 

■ '작가의 말' 중에서

 

누구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을 겪는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잊어버린다. 사람은 잊어버리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 이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마다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있는 일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담겨진 사연들은 모두가 고향을 떠나면서 생겨났다. 고향 생각은 언제나 연한 보랏빛으로 내 어린 시절과 겹친다. 그리고 거기에는 다시 만나고 싶은 얼굴들이 옛 모습 그대로 가득하다. 그 시절의 얼굴들을 지금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나는 그리움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떠오르는 그 시절을 기억하는 순간마다 가슴 벅찬 행복을 느낀다. 그리움이란 내 마음의 거울이다. 문득 내 앞에 다가와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움이다.

이 책에 쓴 이야기는 모두가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그리움에 관한 것들이다. 나 혼자 그대로 마음속에 접어두었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이렇게 털어놓고 보니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부끄럽다. 하지만 어린 손녀들에게 이런 이야기라도 들려줄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 어린것들이 가끔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려두고는 ‘좋아요’를 누를 것을 내게 재촉한다. 내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할아버지 어렸을 때는 어땠는데요?’라고 묻는다. 나는 늘 대답이 궁했다. 이제 한글을 깨쳐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손녀들이 이 책을 읽은 후에 ‘좋아요’로 내게 박수를 보내온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 출판사 리뷰

 

문학평론가 권영민 교수가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흘러가는 세월 저편의 사연, 그리운 사람들과의 추억, 유년 시절을 가득 채웠던 고향 생각 들을 산문집 『수선화 꽃망울이 벌어졌네』에 담백하게 술회한다. 책갈피 갈피에 ‘그리움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떠오르는 그 시절을 기억하는 순간’들이 생생하다. 저자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연한 보랏빛 이야기를 마음에 담다 보면 저마다 잊고 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이다.

저자는 이 산문집에서 어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바느질 솜씨가 좋으셨던 어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옷을 입고 등교했다가 꼬마 신랑으로 불렸던 어린 시절의 삽화와, 방 안에 가득 쌓아둔 책들을 정리하기 위해 직접 마련해주신 책장을 결혼 후에도, 이사를 다니면서도 소중하게 간직했던 일들을 떠올린다. 섣달그믐날, 가족들이 모여 밤새 집 안에 불을 밝혀두고 잠을 자지 않으며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경건하게 맞이하던 추억도 생생하다. 어릴 적 마을 서당에서 천자문을 익힌 손자를 기특해하기도 하고 잘못했을 땐 따끔하게 혼을 내셨던 할아버지, 언제나 자상하시고 인자하셨던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도 배어 있다. 삼십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재회한 중학 시절의 선생님이 되찾아주신 어린 날의 기억, 마음속의 큰 산으로 자리한 백담사에서 만난 오현 스님 등 지나간 인연들도 되새겨본다. 청계천 고서점가를 둘러보며 헌책의 향기를 음미하던 일들도 눈에 선하다.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한 이 산문집을 읽다 보면, 어느 봄날 어머니가 전해주신 꽃소식처럼 담장 아래 화사하게 핀 노란 수선화가 우리 앞에 가득 피어 있을 것이다.

 

 

■ 작품 속으로

 

“글쎄, 아침에 나가보니 수선화가 두어 송이 벌어졌네.”

어머니가 전해주는 꽃소식이다. 노란 수선화가 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담장 아래로 여기저기 수북하게 돋아나던 이파리 가운데 꽃대궁이 올라왔는데 작년보다 좀 이르게 오늘 아침 꽃망울이 터졌다고 자랑이시다. 이른 봄날 아침 수선화꽃으로 어머니는 사뭇 즐거우신 모양이다. 어머니의 전화는 언제나 첫마디가 꽃소식이다. 하얀 목련이 꽃대궐을 이루었다고 전화하시면서, 건넛집 새댁이 딸애를 낳았는데 아기 울음소리만 들어도 너무 반갑고 고맙다는 말씀이다. 뜰 안 잔디밭 구석에 고개를 숙이고 피어난 할미꽃 이야기를 전하시던 어머니는 보름 전 세상을 떠난 솟재고개 너머 최씨댁 할머니 이야기로 이어간다. 아들이 보고 싶다는 말씀 대신에 모란꽃이 큰 잔치마당을 벌였는데 한번 내려오지 않겠느냐고 꽃으로 유혹하기도 한다. 담장으로 벋어 올라간 능소화꽃 이야기 끝에 선창가 장씨네 아주머니가 갑오징어 한 꾸러미를 보내왔다고 자랑이시다. (「꽃소식」, 11~12쪽)

 

섣달그믐날 밤새도록 집 안에 불을 밝혀두고 잠을 자지 않는 일을 요즘에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집 안에 불을 밝히고 잠을 자지 않아야 잡귀가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속설은 말할 것도 없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세어버린다는 이야기조차 기억하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촛불을 밝히며 섣달 그믐밤을 그렇게 조신하게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경건하게 맞아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리가 없는데, 이제는 제야를 밝히는 촛불조차 생각하기 어렵게 세상은 각박하다.

(「섣달그믐날 밤」, 114쪽)

 

헌책방에서 구한 낡은 책, 하지만 내가 꼭 가지고 싶었던 귀한 책을 책상 위에 펼쳐놓았을 때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헌책은 누군가에 의해 버려진 것이다. 처음에는 돈을 주고 사서 소중하게 읽은 후 소용이 없어지면 내다 버린다. 헌책에서 묻어나는 것은 흘러간 시간의 내음만이 아니다. 그것이 돌고 돌아오면서 묻혀온 사람과 장소의 향취도 짙게 풍긴다. 나는 이 독특한 책의 냄새가 그리 싫지 않다.

헌책은 언제나 그 책을 샀던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안고 온다. 책의 속표지에는 당연히 처음 책을 산 사람이 자기 이름을 써놓았다. 어떤 책은 책을 산 날짜와 책방 이름까지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책을 샀을 때의 자기 결심이나 심정 등을 짤막한 문구로 ‘새로운 각오로!’라든지, ‘나의 청춘을 위해!’라고 적어넣은 것도 있다. (「헌책의 향기」, 224~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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